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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영섭의 링사이드산책] 반세기를 복싱과 함께 살아온 농부 - 임영수 관장
필자는 한국 복싱의 원년을 1929년 9월 17일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날 충남 예산 출신의 성의경 씨가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 조선 권투 구락부가 설립했죠. 초창기 한국 권투가 이곳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조권’은 한국복싱에 희망이자 횃불이었습니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유명한 시를 남긴 월파 김상용 씨가 후원회 멤버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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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 못지 않은 뜨거운 열정을 가진 임영수 관장.


만화 같은 복싱 입문

오늘은 한 세기를 향해 달려가는 한국 복싱 역사에서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복싱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일생을 바쳐온 복싱인을 소개할까 합니다. 새해 칠순이 된 임영수(47년생, 현 부여 금성체육관 관장) 선생님입니다. 임 관장은 조상 대대로 충남 부여에 터를 잡고 살아온 전형적인 농군입니다. 복싱을 배우고 싶었지만 동네에 체육관이 없자 수소문하여 과거에 복싱을 잠깐 배웠다는 분을 찾아갔습니다. 부소산성 인근에 있는 삼충사 앞뜰에서 이 스승에게 스탭부터 배웠는데, 마침 그 분이 결혼을 앞둔 시기여서 스테인레스로 된 밥그릇과 수저를 회비 대신 지불하고 정확히 일주일을 수학했죠. 어느날 갑자기 그 스승은 행방불명됐고, 어린 임영수는 어쩔 수 없이 서점에서 정영수라는 분이 쓴 복싱 교본을 탐독하여 나름대로 복싱을 연구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만화 같은 복싱입문 스토리입니다.

1964년 5월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임영수는 학교 동료들과 선후배 10여 명을 모아 새벽 6시에, 자신이 처음으로 권투를 배웠던 바로 삼충사 앞에서 복싱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참 이른 나이에 지도자를 시작한 겁니다.

정식 체육관이 없기 때문에 삼층사는 물론, 빈집에서, 때로는 문화원 강당에서 비가 오는 날이면 처마 밑에서 임영수 '학생'은 책으로 공부한 복싱을 동료 선후배들과 어울리며 복싱을 가르쳤습니다. 더불어 경기에도 출전했습니다. 붕대는 애기 기저귀를 찢어서 대용으로 사용했고, 글러브는 인근 미군부대에서 버려진 것을 꿰메어서 다시 사용하는 등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열정과 의욕은 어느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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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수 관장이 체육관이 없어 그 대용으로 사용했던 삼충사. 성충 흥수 계백 세 분의 위폐를 모신 곳이다.


쏟아지는 후학들

1970년부터 3년 동안 백마부대 일원으로 월남에 파병된 임영수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쟁터에서도 복싱을 생각했습니다. “보병은 잽이고, 곡사포는 훅이고, 직사포는 스트레이트이고, 이런 식으로 복싱을 연상하면서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이 말을 직접 들을 때 살짝 머리털이 쭈볏 서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전율했습니다. 복싱에 미쳐도 대단히 미쳤구나라고 말이죠.

제대 후 임 관장은 농사를 지으면서도, 복싱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급기야 1987년 체육관을 짓고, 복싱 선수를 꾸준히 육성해왔습니다. 첫 수확은 씨앗을 뿌린 지 10년 만에 나온 이광운(74년생, 현 공주 금성체육관 관장)이었습니다. 라이트플라이급이었는데 1997년 제주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국제대회인 제11회 그린힐컵 대회(파키스탄)에서서도 준우승을 차지했죠.

처음이 어려워서 그렇지 물꼬가 터지자 회장배와 대통령배, 소년체전에서 한찬영, 박기표, 박승문, 한용대, 이천석, 김지완, 임성훈 등이 기다렸다는 듯이 금메달을 쏟아냈습니다. 인구 7만의 읍에서 이렇듯 대형 선수들이 출현한 것은 복싱 역사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입니다. 이중 임성훈(84년생, 부여 정보고-용인대)은 바로 임 관장의 4남매(3남 1녀) 중 막내인데 현재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위원회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와 영어에 능통하다고 합니다. 임 관장은 3형제를 모두 의무적으로 중학교 때까지 복싱을 가르쳤고 고등학교부터는 자유의사에 맡겼죠. 이중 막내 성훈 씨가 복싱으로 진로를 결정했고, 아버지는 기꺼이 받아들여 체계적으로 선수로 육성해 특기생으로 용인대에 진학시켰습니다.

1990년에는 김동회, 김춘식, 이천석, 임솔 등이 전국체전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고, 그 이듬해도 김동회, 김춘식, 임솔이 2연패를 달성하면서 2년 동안 전국체전 금메달만 무려 7개를 따는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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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회 전국체전(2009년)에 출전한 부여 금성체육관 식구들. 왼쪽부터 김동회 임솔 임영수 이천석 김춘식.


최고 연봉 김동회와 기대주 김택민


이중 김동회(88년생, 보령시청)는 지금도 주목할 만한 선수입니다. 전국체전 7연패를 달성한, 국내 최고 연봉(1억 2,000만 원)을 받는 복서이기 때문입니다. 국내 라이트헤비급에서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임 관장에 따르면 김동회는 앞으로 10년 정도 계속해서 금메달 사냥에 성공, ‘헤라클레스’ 김태현(역도)의 전국체전 16연패의 기록을 깨는 것을 목표로 한답니다. 이걸 지켜보기 위해 임 관장은 팔순까지 끊임없이 도전을 거듭하겠다고 의욕을 보였습니다. 어떠신가요? 이런 임 관장의 열정은 마치 프로야구의 김성근 감독을 연상시키지 않나요?

2015년 영주에서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부여중학교의 조경태가 80kg급 유소년대표로 뽑혔고, 81kg급의 김택민(부여정보고 1학년)은 청소년대표로 선발되는 등 임 관장은 화수분처럼 지금도 좋은 선수들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7년 동안 해당 체급에서 무패를 기록하고 있는 김동회를 꺾을 선수가 바로 김택민이라고 합니다. 둘을 키운 임 관장의 전망입니다.

임영수 관장을 보면 20세기 최고의 군사전략가인 베트남의 보 구엔 지압 사령관이 연상됩니다. 지압 장군은 20세기 중반 최강국인 미국, 프랑스, 중국의 침공을 격퇴하면서 ‘붉은 나폴레옹’이라는 별명이 붙은 베트남의 영웅입니다. 그런데 지압 장군은 단 한번도 군사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는, 평범한 교사 출신이었습니다. 스스로 알렉산더 대왕부터 손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병법을 통달했고, 이를 실전에 성공적으로 적용한 것입니다. 이 사람의 ‘3불 정책’은 아주 유명합니다. 첫째 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고, 둘째 적이 좋아하는 장소에서 싸우지 않고, 세째 적이 생각하는 방법으로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죠.

부여 금성체육관의 임영수 관장과 오버랩 되지 않나요? 작은 동네에서 독학으로 한국 최고의 선수들을 길러냈으니 말이죠. 순천 맹호체육관의 김상모 관장도 전직 이발사 출신으로 책으로 공부하여 수많은 명복서를 배출했던 전례가 있지만, 임 관장처럼 긴 세월 동안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지속적으로 선수를 만들어낸 사람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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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의 연봉을 받는 복서 김동회(오른쪽)와 그의 스승인 임영수 관장.


부여의 4대천왕

임영수 관장에게 필자가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8년 서울체고에 근무했을 때였습니다. 우연히 해질 무렵 봉고차 안에서 주무시는 임 관장을 목격했는데 그 장면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경비가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수들을 숙소에 재우고, 당신께서는 그렇게 살아오셨던 것이었습니다.

임 관장은 예전 부여군청에 실업팀 창단을 요청했지만 번번히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이자,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꿈은 고향인 부여에 실업팀은 만들어, 자신이 길러낸 선수들이 타지로 유출되지 않고 부여에서 키우는 것입니다. 꿈도 참 소박하죠.

임영수 관장은 제가 농담으로 ‘부여의 4대천왕’이라 평했습니다. 정치인 김종필, 과학자 황우석, 그리고 <칠갑산> <옥경이> <빈잔> 등의 명곡을 작사 작곡한 조운파 선생에 견준 것입니다. 과하다고 나무랄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그토록 어려운 환경에서 10여 명의 국가대표를 만들었으니 복싱인, 아니 체육인으로 부여를 대표할 만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임 관장의 선수 양성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입니다. 부여는 유일하게 우리 과거 역사에서 수도였던 도시가 아직까지도 읍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 곳이지요. 부여에서 임영수 관장은 오늘도 새벽 5시면 자전거를 탄 채 선수들을 진두지휘하면서 고란사가 있는 부소산성으로, 그리고 낙화암까지 달려갑니다. 속으로 이렇게 노래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꿈이 그립구나♬”라고.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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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F의 이상호 과장, 이인경 회장, 정선용 총장.


P.S. 얼마 전 화성에 있는 KBF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우연히 이인경 회장이 막강한 이사진들의 후원으로 4명의 선수가 안정적으로 훈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훈련비를 지급하는것을 확인했습니다. 지인진 체육관의 홍서연과 코리아 체육관의 김예준이 각각 150만 원씩, 청무관 체육관의 노사명과 정재광 체육관의 배요한이 각각 100만 원씩 지급받고 있더군요. 또 안성 제일 체육관의 여자복서 김단비와는 조율 중에 있다고 합니다. 복싱선배로서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성경의 말씀처럼 시작은 미비했지만 끝은 창대하길 바랍니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듯이 한국 복싱도 어둠이 걷히고 거대한 태양이 힘찬 용트림을 하면서 치솟길 바랍니다. 이인경 회장을 비롯해, 연맹 후견인 역할을 맡고 있는 오장섭 전 장관, 최승조 수석 부회장, 유명우 임재복 이경철 안상철 부회장단 등의 노고에 개인적으로 새해인사 겸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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