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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늘집에서]야인시대의 시라소니 같은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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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을 보면 야인시대의 ‘시라소니’ 같다.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인 시라소니(이성순)는 일제 식민지 시대에 천부적인 싸움기술을 바탕으로 약자의 편에서 한 세대를 풍미한 협객이다. 시라소니는 조직없이 혼자 움직이며 싸움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최고의 주먹이었다.

얼굴에 쓸쓸함이 묻어나는 박성현은 골프를 독학하듯 혼자 익혔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이었다. 축구 명문 경신고에서 선수생활을 한 부친이 경제적으로 뒷받침을 못해 남에게 의지할 형편이 안 됐다. 박성현은 레슨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 스스로 연습하면서 깨우치는 방식으로 오늘날의 훌륭한 스윙을 만들어냈다. 박성현이 골프백에 ‘남달라’라는, 세상을 향한 외침을 새겨 놓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박성현은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본인의 노력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구미 현일고 1학년 때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오로지 타고난 재능과 본인의 노력으로 이룬 성과였다. 박성현을 주니어 때부터 지켜본 관계자들은 그를 ‘가공하지 않은 원석’이라고 평가한다. 박성현은 그러나 드라이버 입스(yips)가 찾아와 이듬 해 국가대표에서 탈락했다. 입스를 극복하기 위해 2~3년간 힘든 시간을 보냈고 2부 투어를 거쳐 지난 해 KLPGA투어에 입성했으며 올시즌 큰 성공을 거뒀다. 얼굴의 쓸쓸함은 이런 이력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박성현의 트레이드 마크인 장타력은 좋은 타이밍과 밸런스에서 나온다. 헤드 스피드가 빠르다고 모두 거리가 나는 것은 아니다. 박성현의 헤드 스피드는 장하나와 김세영, 이정민, 조윤지, 김민선5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들은 평균 96마일 이상의 헤드 스피드를 낸다. 하지만 박성현이 이들보다 15~20야드 이상 거리를 더 보낸다. 파워 전달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는 어택 앵글이 좋다는 뜻인데 박성현의 드라이버샷은 어퍼 블로우로 맞는다. 김효주가 플러스 5도 정도, 박성현이 플러스 3~5도 정도다. 김효주는 헤드 스피드가 90마일 초반대 이나 어택 앵글이 좋아 헤드 스피드 대비 100% 이상의 거리를 낸다. 박성현의 스윙은 의도됐다기 보다는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여 만들어내는 스윙이다.

현대차 중국여자오픈 최종라운드는 2015시즌을 장식할 명승부중 하나다. 타이틀 방어에 나선 김효주는 역전우승을 위해 마지막날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박성현을 밀어내고 선두에 나서는 등 경기 중반까지 흐름도 좋았다. 그러나 12번홀에서 결정적인 티샷 실수로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김효주는 경기후 지난 3월 JTBC 파운더스컵을 떠올렸을 듯 하다. 당시 강호 스테이시 루이스의 집요한 추격을 더 강한 골프로 물리쳤는데 9개월 뒤 중국에선 자신이 루이스의 역할을 해야 했다. 김효주와 박성현 모두 100% 기량을 발휘했으며 한번의 실수로 승패가 갈렸다.

김효주를 상대로 한 승리는 앞으로 박성현 골프에 결정적인 힘이 될 것이다. 최근 한달 사이 매치플레이 경기에서 박인비나 우에다 모코코 같은 대선수들을 물리친 것은 물론 스트로크 플레이에서 당대 최고의 선수들인 김효주와 전인지의 추격을 뿌리쳤다는 것은 소중한 자산이다. 박인비와 모모코를 큰 홀차로 누른 자신감이 김효주와 전인지의 도전을 뿌리친 강한 멘털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내년 KLPGA투어는 박성현을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우려가 되는 것은 부상과 슬럼프다. 하지만 박성현은 타고난 몸이 튼튼하다. 유연성도 좋고 스윙도 자신에게 맞게 특화되어 있어 부상 위험성은 상대적으로 낮아 보인다. 하반기 들어 허리를 주로 쓰던 스윙도 상체와 하체를 같이 쓰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거리가 줄 수도 있고 원하는 구질이 안 나올 수도 있으나 컨트롤 능력은 좋아진다. 타이밍이 흐트러질 경우 이로 인한 슬럼프가 우려되지만 이를 잘 극복하면 세계 정상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과제는 쇼트게임이다. 상황에 따른 대처능력을 키운다면 앞으로 우승 트로피 숫자는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박성현은 곧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작년처럼 팀에 섞이지 않고 혼자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훈련할 계획이며 쇼트게임 레슨도 받을 계획이다. 그리고 내년 봄 ANA 인스퍼레이션과 KIA 클래식 등 LPGA투어 경기에 나가 성과를 점검할 예정이다. 올해 골프인생을 180도 바꾼 박성현이 내년 얼마나 더 ‘남다른’ 성과를 낼지 흥미롭다. [헤럴드스포츠=이강래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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