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김중겸의 MLB 클립] 토니 라루사와 애리조나의 승부수
이미지중앙

토니 라루사 (사진=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트위터)


2014년 5월. 애리조나의 켄 켄드릭 구단주는 전 세인트루이스 감독인 토니 라루사(71)를 구단 운영 부문 사장 자리에 앉혔다. 그 해 첫 40경기에서 팀이 15승에 그치고 지구 선두와 10경기 이상 벌어지자, 거물급 인사 영입을 통해 일찌감치 팀의 미래를 위한 개혁에 나선 것이다. 애리조나는 라루사 영입을 위해 전에 없던 ‘구단 운영 부문 사장’자리를 만들면서까지 팀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라루사에겐 2011년 감독으로써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은퇴를 선언한 이후 약 2년 반 만의 현장 복귀였다.

라루사는 말이 필요 없는 역대 최고의 감독 중 하나였다. 1979년 시즌 도중 해임된 돈 케싱어의 뒤를 이어 불과 34세의 나이로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첫 감독직을 수행한 그는 오클랜드와 세인트루이스를 거치는 동안 총 33번의 시즌에서 한 팀의 수장 역할을 해왔다. 세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과 네 차례 올해의 감독상을 차지했으며, 그가 기록 중인 통산 2,728승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은 승수다.

그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기도 했다. 오클랜드 시절 데니스 에커슬리에게 1이닝 마무리를 맡기며 마무리 전문 투수를 탄생시켰으며, 원 포인트 릴리프를 처음 시도하는 등 현대 야구의 체계화 된 불펜 야구를 만든 창시자였다. 최근 조 매든(시카고 컵스) 감독이 주로 사용 중인 8번 타순에 타자가 아닌 투수를 기용하는 방식 또한 그가 주로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라루사의 사장 취임이 곧바로 팀의 반등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되레 팀의 조직 구조가 흔들리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애리조나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야 했다. 라루사의 취임과 동시에 입지가 흔들린 인물은 케빈 타워스 전 단장이었다. 타워스는 샌디에이고에서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는 인물. 하지만 애리조나 입성 이후 유망주를 내주며 단행한 트레이드가 거푸 실패로 돌아가면서 지역 언론과 팬들의 뭇매를 맞던 상황이었다.

최근 메이저리그는 프런트 진이 강화되는 가운데, 거물급 인사들의 사장 취임이 일반화되고 있다. 테오 엡스타인(시카고 컵스), 앤드류 프리드먼(LA 다저스)에 이어 올해 마크 샤피로(토론토), 데이브 돔브로스키(보스턴)등 단장 출신의 익숙한 이름들이 사장 자리에 오르고 있다.

단장 보다 직책이 높은 사장 자리. 더군다나 묵직한 네임 밸류를 지닌 인물이 사장 자리에 앉게 될 경우 단장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새로운 사장의 임명은 단장 교체로도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올해 보스턴의 셰링턴 단장은 해임된 경우에 속하나 토론토의 앤소폴로스 단장은 클리블랜드에서 건너 온 샤피로가 사장에 부임 하자 본인 스스로 단장직을 내려놓았다. 올해 트레이드 데드라인에서 과감한 트레이드로 팀을 22년 만의 포스트시즌으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재계약을 제안 받았지만, 스스로 샤피로의 바지 사장이 되기를 거부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라루사의 구단 운영 부문 사장 취임은 사실상 구단 운영의 실세가 그가 됐음을 의미했다. 게다가 라루사는 세인트루이스 감독 시절부터 자신에게 전권을 부여해주길 요구하는 성향을 지닌 인물이었다. 일례로 최근 세인트루이스의 화수분 야구를 만들고 있는 존 모젤리악 세인트루이스 단장에게도 라루사 감독은 통제 밖의 인물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애리조나 프런트 구성의 향후 행보는 충분히 예측이 가능했다. 더군다나 ‘구단 운영 부문 사장’이라는 전에 없던 보직을 만들면서까지 이뤄진 라루사의 애리조나행은 연이은 트레이드 실패로 좌불안석이었던 타워스에게는 사실상 이별 통보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타워스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 9월 단장직 경질이 이뤄지고 본인 스스로를 ‘가짜 구단주(Pseudo-GM)’였다고 자칭했다. 라루사의 부임 이후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팀에서는 그에게 스카우트 분과의 다른 직책을 제안했지만, 사실상 좌천의 의미였던 제안을 타워스가 받아들일 리 없었다.

지난해 애리조나는 주축 선수들의 줄 부상과 조직 개편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메이저리그 전체 최하위로 추락했다. 라루사는 재빨리 팀 재편 작업에 나섰다. 시즌 막바지인 9월 초 타워스를 경질했으며, 3주 뒤인 9월 말 데이브 스튜어트를 단장 자리에 앉혔다. 스튜어트는 라루사 감독의 오클랜드 시절 팀의 에이스로 활약한 바 있는 투수 출신으로, 1989년 감독과 선수로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함께 일구기도 했다. 세인트루이스 시절 함께 한 데이브 던컨 전 투수코치는 이미 단장 특별 보좌역으로 애리조나에 몸담고 있던 터로, 라루사는 옛 동료들과 애리조나에서 다시 해후했다. 스튜어트 선임 다음날 곧바로 커크 깁슨 감독을 해임하는 민첩한 일처리를 선보인 라루사는 10월 중순 감독 경력이 전무했던 칩 헤일을 사령탑에 앉히며 본격적인 다음 시즌 준비에 돌입하게 된다.

세인트루이스 시절 라루사는 유망주보다 베테랑을 선호하는 감독이었다. 하지만 감독과 사장의 역할과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애리조나는 팀의 전체적인 틀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라루사는 사장 취임 이후 젊은 선수들을 살피는데 보다 많은 공을 들였다.

취임 이후 팀 내 산하 마이너리그 팀들을 돌아보는 것으로 첫 주요 업무를 시작한 라루사는, 오프시즌 FA 영입은 쿠바 출신의 야스마니 토마스(25) 한 명으로 최소화 했으며, 미구엘 몬테로(32)를 컵스로 보내고 두 명의 유망주를 받아왔다(잭 고들리, 제퍼슨 메히아). 올 시즌 선발진에서 두각을 드러낸 루비 데 라 로사(26)와 로비 레이(24) 모두 지난해 오프시즌 영입한 젊은 투수들이다.

특히 6월 수비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이던 트럼보(29)의 시애틀행 이후 결성된 외야 3인방인 페랄타(28)-폴락(28)-인시아테(25)의 20대 트리오는 비약적인 발전을 선보였는데, 수비의 견고함은 물론 나란히 3할 타율을 기록하며 팀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첫 풀타임 시즌을 보낸 닉 아메드(25)와 제이크 램(25)의 3유간 라인은 수비에서 만큼은 확실한 모습을 선보였으며, 지난해를 기점으로 노쇠화가 뚜렷해진 애런 힐(33)의 자리는 크리스 오윙스(24)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패트릭 코빈(26)이 1년이 넘는 재활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고 팀 내 넘버원 유망주 아치 브래들리(23)도 빅 리그 데뷔를 이루면서, 애리조나의 리빌딩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애리조나의 올 시즌 성적은 79승 83패로 지구 3위. 지난해보다 15승이나 더 많은 승수를 쌓았다. 겉으로 드러난 성적보다 더 고무적인 것은 주전 라인업과 선발 로테이션의 대부분을 20대의 젊은 선수들로 구성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큰 기복 없이 강한 수비를 바탕으로 한 짜임새 있는 야구를 펼쳐냈고, 애리조나는 지난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역동성을 갖춰나갔다. 포스트시즌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주목도는 높지 않았지만, 지난해 캔자스시티와 올해 휴스턴의 뒤를 이어 ‘젊음’이라는 무기로 무장한 신데렐라 팀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이미지중앙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게 된 잭 그레인키


라루사는 사장 취임 이후 1년 5개월 만에 애리조나의 분위기와 팀 색깔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리고 지난주. 팀의 명운을 건 승부수를 던졌다. 다저스에서 옵트 아웃을 선언한 잭 그레인키와 6년간 2억 650만 달러의 FA 계약을 맺은 것이다. 연 평균 금액은 역대 최고인 약 3,442만 달러로, 1선발의 경우 한 시즌 33-34경기 정도 등판함을 감안하면 그는 경기 당 약 1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11억 8천만원 이상의 거액을 받게 되는 셈이다(이 또한 6년 내내 건강하다는 가정 하에서다). 애리조나는 내년 시즌 대권을 노리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지적된 에이스 투수 영입에 성공했으며, 더욱이 그레인키 영입전에서 앞서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같은 지구의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의 허를 찔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9일(한국시간)에는 그레인키 깜짝 영입만큼이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애틀랜타에서 셸비 밀러(25)를 데려오기 위해 인시아테(25)와 마이너리그 유망주 스완슨(21)과 블레어(23)를 내주는 2:3 트레이드를 단행한 것이다(애틀랜타에서 데려 온 나머지 한 명은 마이너리거인 게이브 스파이어로, 2013년 드래프트 19라운드 563순위 지명자다). 인시아테는 올해 3할 타율을 기록하며 외야의 한 축을 담당했던 선수였으며, 블레어는 올 시즌을 앞두고 발표된 BA 평가 팀 내 유망주 3위이자 향후 3-4선발을 맡아 줄 것으로 기대됐던 선수다. 무엇보다 유격수 유망주 스완슨은 올해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자였다.

밀러는 올해 6승 17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3.02의 평균자책점에서 알 수 있듯이 지독한 불운에 의한 것이었을 뿐, 경기 내용에서는 데뷔 이후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한 해였다. 특히 패스트볼-커브의 투 피치 투수에서 올 시즌 비중을 급격히 높인 커터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롱런의 기반을 마련하는 터닝 포인트를 맞이했다.

일단 분위기는 애틀랜타의 완승이라는 평가다. 밀러가 올해 고무적인 활약을 한 것임에는 분명하나 애리조나가 내준 대가가 너무 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미 빅 리그 검증을 마친 전도유망한 20대 중반의 외야수와 미래의 미들 로테이션 선발 자원 그리고 650만 달러의 입단 보너스를 쥐어 준 전체 1순위 선수를 드래프트 이후 반년도 되지 않아 포기할 만큼 밀러의 가치가 높은 지에 대해서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밀러는 1년 전 애틀랜타가 FA까지 1년 밖에 남지 않은 헤이워드를 세인트루이스에 내주고 데려왔던 선수. 결과적으로 애틀랜타는 엄청나게 남는 장사를 한 셈이 됐으며, 더욱이 유망주 수집에 나선 최근의 기조와도 맞아떨어진 완벽한 트레이드가 됐다.

애리조나의 노선은 명확하다. 그레인키에게 6년간 2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한 상황에서 팀 전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유망주 출혈이라는 기회비용은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덕분에 애리조나는 일주일 새 원투펀치 영입에 성공하며 그레인키-밀러-코빈-레이-데라로사 혹은 브래들리라는 상당히 탄탄한 로테이션을 구축하게 됐다. FA 시장에서 추가 선수 영입 가능성도 남아 있는 가운데, 애리조나는 단숨에 내년 시즌 지구 우승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라루사는 지난해 취임 직후 이런 말을 남겼다. “팀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나는 ‘인내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팬들 또한 ‘인내심’이라는 말 보단 ‘우리 팀은 강해질 것이다’라는 말을 듣길 원 할 것이다.”고 말하며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팀을 정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인내심을 거부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팀 전력을 정비했으며, 예상보다 훨씬 과감한 움직임으로 팀을 세간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결과는 훗날 가려지겠으나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의 위험 요소를 안고 가야하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라루사 감독’의 승부사적 기질은 ‘라루사 사장’이 되어서도 계속될 수 있을까. 랜디 존슨 이후 애리조나 최고의 에이스가 된 잭 그레인키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데려 온 셸비 밀러. 라루사와 애리조나는 승부수를 던졌다.

[헤럴드스포츠 = 김중겸 기자]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