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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화영의 골프장 人문학]남해 절경에 패션을 입힌 정재봉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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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블비치 7번 홀을 닮은 파3 14번 홀에서의 정재봉 사장.


남해 절경에 패션을 입히다

바닷가 언덕에 달이 휘영청 떠오른 지난 2013년 11월 1일 밤, 하늘이 뻥 뚫린 클럽하우스 중정(中庭)에 사람들이 모였다. 골프장 그랜드오픈 기념사를 읽어내리는 고희(古稀)를 넘긴 정재봉 한섬피앤디 사장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산과 바다가 어울린 이곳의 자연 환경을 보고는 마치 물속에 비친 달의 모습에 반해 그 물로 뛰어들었다는 이태백 시인의 심정으로 골프 리조트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골프장을 왜 만들었는지를 밝히는 그의 비유는 두 가지를 내포하고 있었다. 극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온몸을 바치는 예술가의 심미성, 그리고 목표를 위해 과감하게 투자한 자수성가한 사업가의 열정이었다. 클럽하우스를 짓는 데만 700억원, 골프장과 호텔 등 숙박시설을 합쳐 총 4000여 억 원의 사재를 털어 넣었다. 그는 이태백처럼 이 리조트에 올인한 것이다.

정 사장이 골프 라운드에 목매는 골프광이냐면 그건 아니다. 구력 30년에 보기 플레이어다. 골프 스코어를 줄이기보다는 자연과 어울린 좋은 풍경과 경치에 반하는 골프 애호가에 가깝다. 남해에 힐튼남해리조트가 생기자 마자 가장 먼저 리조트 회원권을 구입할 정도로 바다를 낀 리조트를 선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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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라이즈그늘집 전망대에서는 마치 영화 <타이타닉>에서와 같은 바다 조망이 가능하다. 정사장은 주말이면 코스 곳곳의 엣지있는 콘텐츠 요소를 찾아다니곤 한다.


예술가의 심미성 사업가의 열정

정 사장의 롤 모델은 뉴질랜드의 해안 절벽에 조성한 골프 리조트 케이프 키드내퍼스와 카우리클리프스를 세운 줄리앙 로버트슨(Julian Robertson)이다. 90년대 타이거펀드를 이끌며 세계 금융 시장의 큰손으로 군림하던 줄리앙은 특별한 연고도 없는 뉴질랜드의 하늘을 헬기로 누비며 천혜의 농장을 사들여 골프 리조트를 일궜다. 해안 절벽을 따라 조성된 이 두 코스는 영국의 골프장 정보 사이트인 ‘톱100골프코스(top100golfcourses.co.uk)’에 따르면 뉴질랜드에서는 1, 2위에 올라 있는 명 코스이고, 케이프 키드내퍼스는 세계 40위에 올라 있다.

정재봉 사장은 성공한 토종 패션기업인 한섬을 키운 주역이다. 타임(TIME), 시스템(SYSTEM), 마인 (MINE), 랑방(LANVIN), 발렌시아(BALENCIA) 등 숱한 ‘패션(Fashion)’ 브랜드를 키워냈다. 정 사장에게 남해 장천의 골프장 부지는 또 다른 ‘패션(Passion)’을 자극했다. “이 정도 자연 환경이면 세계적인 골프 리조트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줄리앙처럼) 나도 나이가 들어 경치 좋은 곳에 리조트를 만들어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

천혜의 입지에 공들여 만든 리조트의 지향을 정사장은 ‘궁극의 힐링(Ultimate Healing)’에 두었다. “다섯 가지 힐링이 가능하다. 첫째, 해안선을 끼고 도는 멋진 코스에서 10분 간격의 여유로운 골프로 힐링이 된다. 둘째는 정적인 힐링이다. 스파와 요가, 음악 감상실을 갖췄다. 골프 리조트에 음악 감상실을 갖춘 곳은 아마 세계 최초일 것이다. 셋째는 동적인 힐링이다. 13번 홀 밑으로 해수욕장이 있다. 요트와 낚시 프로그램도 만들 예정이다. 18번 홀 그린 밑으로 산책로를 만들었다. 3시간 거리의 ‘숨어있는 또 하나의 18홀’이다. 넷째는 심미적인 힐링이다. 건축물이 주는 예술적인 힐링이다. 빌라와 클럽하우스 건축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실내 인테리어 하나까지 세밀하게 공들였다. 사소한 소품까지 예술작품이다. 마지막으로는 음식 힐링이다. 이곳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물이 좋아 신선한 식재료와 해산물이 풍성하다. 건강음식이 힐링을 마무리한다.”

패션업계에 일생을 바쳐온 정 사장은 한섬 기업을 판 돈으로 최고의 자연이란 소재에 최고의 설계가와 건축가를 불러모으고, 온 정열을 쏟아 사우스케이프를 만들어냈다. 그는 주말이면 사우스케이프에 머무른다. 그러면서 이 코스를 어떻게 하면 페블비치와 같은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까 고민한다. 아마 이번 주말에도 그는 패셔너블한 카트를 몰고 코스를 누비면서 어떻게 이 자연을 더 엣지 있게 만들까 고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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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이 뻥 뚫려 있어 하늘과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클럽하우스.


세계에서 91번째로 좋은 코스
지난달 중순 톱100골프코스는 ‘2016년판 세계 100대 코스’를 발표했다. 그중 91위가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사우스케이프오너스가 들었다. 이 사이트의 한국 코너에는 15개의 코스가 소개되고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바로 이 코스였다.

‘한산도와 여수 인근 도서를 이었다’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은 바다와 육지의 풍광이 세계 어느 곳과 견주어도 될 바다 절경을 자랑한다. 얕은 갯벌이 길게 펼쳐진 서해나 바다로 조금만 나가도 심해와 만나는 동해와는 달리, 이곳은 다도해의 아기자기함이 공존한다.

서울에서 길을 나서면 대전-통영고속도로를 타고 4시간 반 정도면 남해에 도착한다. 사천공항을 지나 삼천포대교, 늑도대교와 창선삼천포대교 3개 다리를 지나는 길은 ‘한국의 드라이브 하기 좋은 길’로 첫손 꼽히는 명소다. 그 길을 지나 잔잔한 해안 도로를 따라 가다 도착하는 곳이 사우스케이프오너스클럽이다.

골프장에 들어서면 아이보리 빛깔의 그리스 신전같은 클럽하우스에서 일단 감탄사부터 터져나온다. 클럽하우스에만 700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최고인 황금사자상을 국내 최초로 수상한 건축가 조민석의 작품이다. 서초동에 부띠끄모나코, 청담동에 앤드뮐미스터 등의 실험적인 건축물을 연달아 내놓은 그는 생전 처음 골프장 클럽하우스를 만들면서 바다 언덕 위의 신전같은 몽환적인 건물을 탄생시켰다.

직선이라곤 하나 없이 곡선의 흐름이 하늘하늘 날린다. 천사의 날개옷이 펄럭이는 듯한 골프장 로고처럼 아이보리빛 클럽하우스는 하늘과 바다를 함께 담았다. 건물의 중정(中庭)인 앞마당에서 위를 쳐다보면 네모난 천정 위로 하늘이 뻥 뚫려 있고, 앞을 보면 바다가 눈 한 가득 들어와 초점이 자연스레 멀어진다.

코스 부지를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정했다고 한다. 사우스케이프라는 명칭이 ‘남해안의 곶’처럼 지형이 아름다운 곳을 찾아 코스를 앉히기로 했다. 한국에 첫 작품을 낸 코스 설계자 카일 필립스는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 인근에 만든 세계 100대코스 42위인 킹스반스(Kingsbarns)와 UAE 아부다비의 야스링크스(Yas Links) 설계자이자 링크스 코스의 대가로 꼽힌다.

정재봉 사장에게 낙점받은 카일은 각 홀마다 주어진 바다 환경을 가장 잘 이용한 걸작을 만들어냈다. 18홀 중에 바다가 조망되는 홀이 11개이고, 바다를 따라 흐르는 홀이 6개에, 바다를 건너 쳐야 하는 홀이 4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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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 코스의 하이라이트인 암반 옆의 5번 홀과, 파3인 6번 홀.


3막의 영웅 서사시로 구성된 코스
사우스케이프오너스는 3막을 가진 한 편의 영웅 서사시에 비유할 수 있다. 내해처럼 잔잔한 물이 찰랑대는 내리막 1번 홀부터 골퍼를 압도한다. 티잉 그라운드부터 감탄사가 나오고, 그린 뒤로 흐르는 수평선은 한 폭의 그림이다.

2번 홀로 들어서면 장면이 확 바뀐다. 마치 고요한 호수 속에 놓여있는 듯하다. 언제 바다가 있었나 싶게, 주위에선 끊임없이 새가 지저귀는 평온함을 느낀다. 서사시의 도입부는 이런 장엄함과 고요함의 혼재에서 시작된다. 그러다가 왼쪽으로 돌아가는 내리막 도그레그 파5홀인 5번 홀에서 다시 바다로 나아간다. 그린은 계곡 너머 바다를 배경으로 떠 있다. 그 옆으로 해질 무렵 홀 아웃하고 선셋(Sunset)이라 이름 붙여진 그늘집에 들어가면 낙조를 감상하라는 듯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다. 정서(正西)에 위치한 건물의 절묘한 네이밍이다. 이어지는 6번 홀은 긴 파3 홀로 바다를 가로질러야 하는 시험장이니 1막의 마무리로는 최고다.

서사시의 2막에 해당하는 7~11번 홀은 영웅이 되기 위한 수련기에 비유할 수 있겠다. 쉬워 보이지만 착시가 있어 슬라이스를 유혹하는 7번 홀, 절벽을 건너 치는 배짱과 힘을 요구하는 8번 홀, 전장이 길고 핸디캡이 가장 높은 9번 홀, 하늘과 잇닿은 듯 스카이라인이 과감한 그린 공략의 정확성을 시험하는 10번 홀, 짧지만 정교한 코스 매니지먼트를 발휘해야 하는 도그레그 11번 홀들은 골퍼의 기량과 실력을 다양하게 테스트한다.

12번부터 16번 홀까지 이어진 5개 홀의 서사시 3막은 이 코스의 클라이막스다. 남쪽 바다를 넋을 잃고 바라보며 자연이 주는 경외감에 빠지게 된다. 12번 홀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서면 너울 치듯 먼 바다를 향해 홀들이 뻗어나간다. 12번 홀은 호쾌한 내리막 홀이고, 13번 홀은 모상개해수욕장 옆으로 바다 절벽을 건너 치는 묘미가 있다.

14번 홀은 블랙티로는 129미터의 내리막 파3 홀인데 마치 미국의 페블비치 7번 홀처럼 바다를 향해서 내리막 샷을 하는 곳이다. 어쩌면 그린 주변만 볼록한 곶이 생겨났을까 싶을 정도다. 그린 옆으로 살짝만 벗어나도 30미터 아래 파도가 철썩대는 바다에 빠진다.

15번(파4) 홀은 직각으로 휘어지는 왼쪽 도그레그 홀로 티 샷의 부담이 만만찮다. 그린 뒤로는 세모 끝에 뾰족하게 솟아오른 그늘집 선라이즈(Sunrise)가 있다. 위도상으로 정동(正東)을 향하는 지점에 세모 끝을 조성했다. 골프장에서는 골퍼가 원하면 새벽 일출 때 여기서부터 라운드를 시작하도록 하는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해뜨는 지점에서 라운드를 시작한다는 건 색다른 아이디어다.

그리고 다음으로 마주하는 파3 16번 홀이 이 골프장의 백미다. 블랙 티에서 179미터인데 바다를 건너 반도형 그린을 공략하는 홀이다. 세계 1위의 코스로 선정된 미국 캘리포니아의 사이프러스포인트(Cypress Point)가 연상된다. 사방으로 희거나 회색빛의 암반이 있고 그 위에 덩그러니 그린만 놓여있다. 17홀에서 지나온 홀들의 여운을 추르리고 마지막 18번은 왼쪽 옆으로 대양을 조망하면서 라운드를 마무리하는 파5 홀이다. 대 서사시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하지만 17번 홀부터는 벌써 라운드가 끝난다는 마음에 금세 아쉬워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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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의 클라이막스인 15번과 선라이즈 그늘집 옆의 파3 16번 홀.


한국을 대표할 퍼블릭 명문
골프장 측은 티오프 간격을 10분으로 잡고 원웨이로만 운영한다고 한다. 잔디는 전부 서양 잔디다. 그린은 벤트그라스, 페어웨이는 캔터키블루그라스에 러프는 페스큐를 심고 법면으로는 금계국 등 야생화가 우거지며 군데군데 제주도산 팽나무를 심었다. 원래 있던 수목 8000그루를 자리를 옮겨 심었고, 외부에서 들여온 수목도 3500여 그루다. 특히 파3 홀은 코스의 경관을 차별화하기 위해 바다와 가장 잘 어울리는 제주산 팽나무를 위주로 식재했다.

클럽하우스 맞은편 계곡으로는 빌리지 공사가 한창이다. 클럽하우스에는 음악 DJ 황인용 씨의 음악당을 조성해 놓았고 조만간 수영장, 해안 트래킹 코스, 요트장과 낚시를 위한 공간도 추가로 조성할 예정이다. 13번 홀 밑 모상개 해변에는 200미터 남짓한 모래사장과 남해의 특징인 몽돌 백사장도 있다.

이 골프장은 언론에도 종종 오르내렸다. 그린피 등 가격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다. ‘퍼블릭 골프장 허가를 받아 각종 세금 인하 혜택을 봤으면서 너무 비싸다’는 게 요지였다. 주말에 1인 그린피 37만원이라는 것 때문이다. 그 정도면 국내 최대 가격이다.

하지만, 골퍼의 로망으로 여겨지는 미국 페블비치는 500달러를 받는 퍼블릭 코스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골퍼가 몰려들며, 몇 달 전부터 예약해야만 부킹이 가능하다. 손꼽힐 만한 빼어난 경관과 그 경관을 살린 레이아웃이 없었다면, 골퍼는 거들떠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린피는 그걸 경험하는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우스케이프의 그린피가 비싼 건 이유가 있다.

그래서 소수의 멤버들에게만 허용된 회원제 코스가 아니라 ‘퍼블릭’이라는 점이 오히려 다행이다. 퍼블릭 골프장으로서의 세제 혜택 이상의 돈을 들여 클럽하우스와 코스 곳곳에 쏟아부었다. 비싼 그린피만큼 코스 관리와 보존도 그만큼 철저해야 한다.

최고의 한류스타인 배용준이 신혼 여행을 이 골프장에서 보냈다. 저렴한 퍼블릭이었다면 그는 오지 않았을 것이고, 부킹조차 못했을 것이다. 아마 세계의 돈 많은 부자들이나 골프 애호가들이 이 코스를 찾아온다면 그 또한 한국 골프장의 우수함을 알리는 명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코스 설립자 정재봉 사장이 예술가적인 감성을 가미하고 사업가적인 투자를 과감하게 단한 성과는 지금보다는 먼 훗날을 지향하고 있다. [헤럴드스포츠=남화영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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