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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바운드 1위’, 부산 kt에 불고 있는 새바람
몇 년간 쌓아온 팀 컬러에 다른 색을 입히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부산 kt는 악바리 근성을 바탕으로 수비와 스피드를 강조해왔던 팀이다. 자연스레 ‘빠른 농구’를 추구하는 이미지가 생겼다. 팀 이름도 ‘소닉붐’이니 말 다 했다. 그러나 ‘빠름’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이 있다. 턱 없이 부족한 빅맨 자원으로는 높이에 대한 욕심을 낼 수 없었다. 그런데 올 시즌 kt의 높이는 사뭇 다르다. 고질병처럼 여겨졌던 높이가 팀을 대표하는 옵션으로 자리 잡을 정도로 힘이 생겼다.

바닥에서 천장으로

kt는 지난 시즌 까지만 해도 리그에서 높이가 가장 낮은 축에 속했다. 지난 4시즌 동안 평균 리바운드 부문에서 차례대로 9위(31.9개)-10위(29.9개)-10위(30.4개)-8위(34.4개)로 꾸준히 하위권을 맴돌았다. ‘낮은 팀’이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부족한 높이를 근성으로 메웠으나, 분명한 한계가 따랐다. 두꺼운 빅맨 라인업을 보유한 팀을 만나면 미스매치가 일어나기 십상이었고, 외국인선수에 대한 의존도 역시 높았다. 그나마 지난 시즌 ‘파수꾼’으로 자리를 잡았던 센터 김승원 마저 군에 입대하면서 kt의 높이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 보였다.

올 시즌 바닥이었던 높이가 제대로 치솟았다. 팀 당 22~25경기를 치른 26일까지, kt는 보란 듯이 리바운드 1위(평균 38.3개)를 달리고 있다. 특히 지난 22일 리그 정상급 높이를 갖춘 서울 SK를 상대로 올 시즌 팀 최다 리바운드(52개)를 갈아치우며 울산 모비스의 기록(47개)을 뛰어넘었다. 이날 kt는 SK(25개)보다 2배가 넘는 리바운드를 생산했고 공격 리바운드는 무려 24개를 걷어내면서 SK의 골밑을 유린했다. 이렇게 kt는 높이의 정점을 찍으면서 프로농구단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법한 ‘낮은 팀’이라는 굴욕을 말끔히 씻어냈다. 리바운드에서 압도한 kt는 잠실학생체육관에서 1,379일 만에 승리하며 SK와 껄끄러운 관계도 청산했다. 빨랐던 kt에 높이가 더해지니 시너지가 제법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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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니 심스(왼쪽)와 마커스 블레이클리(오른쪽).


‘찰떡 호흡’ 외인 듀오, 박철호의 눈부신 성장

kt가 높이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이유가 있다. 먼저, 높이의 핵인 두 외국인 선수의 호흡이 눈부시다. 코트니 심스는 2012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지명될 만큼 검증된 자원. 여기에 ‘미스터 에브리딩(Mr. Everyting)’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전방위에서 탁월한 능력을 갖춘 블레이클리가 함께 골밑에서 중심을 잡아준다.

특히 두 선수가 같이 뛰는 3쿼터가 압권이다. 이때 블레이클리는 포인트가드 못지않은 패스 능력을 자랑한다. 골밑의 좁은 공간에서 심스의 높이를 등에 업고 공간을 창출하면서 수비가 몰리는 정도에 따라 직접 득점을 올리거나 심스에게 볼을 건넨다. 손쉬운 득점은 물론, 득점에 실패했을 경우까지 대비한다. kt의 대표적인 공격 옵션이다. 두 선수의 손발이 이렇게 까지 잘 맞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심스와 블레이클리는 2010-2011시즌 NBA D-리그 아이오와 에너지에서 함께 뛴 경력이 있다. 당시 두 선수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을 키웠다. 한국으로 무대를 옮긴 두 선수는 여전히 환상의 호흡을 이어가고 있다.

박철호의 눈부신 성장 역시 높이의 뼈대를 세우는데 큰 힘이 됐다. 박철호는 지난 시즌 25경기 출전해 평균 2.5점 2리바운드 0.5도움을 올렸다. 그랬던 박철호가 올 시즌에는 평균 9.3점 4.8리바운드 2.6도움을 녹여내고 있다. 강력한 MIP(기량발전상) 후보로 떠오를 만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다. 국내 빅맨 자원이 탄탄하지 못한 kt로서는 박철호의 가세가 반갑기만 하다. 박철호가 성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조동현 감독의 혹독한 조련이 있다. 조감독은 비 시즌 내내 박철호를 입에 달고 살았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조 감독의 특별관리(?)는 박철호에게 적극성과 자신감을 심었고, 이는 팀의 자산이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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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현 감독 특유의 지도 스타일이 kt에 잘 녹아들고 있다.


리바운드 잡게 만드는 초보 감독


조 감독은 선수 시절을 떠올릴 때면 자신을 ‘수비수’라 당당히 말한다. 실제로 조 감독은 현역 시절 화려한 공격보다 ‘악바리 수비’로 이름을 날렸다. 감독이 된 지금도 수비 지론은 변함이 없다. 조 감독에게 수비 개념은 조금은 특별하다. 강한 근성이 곁들여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 감독은 지난 달 10일, kt가 창원 LG에 1점 차 짜릿한 역전승(92-91)을 거두고도 어두운 낯빛을 지우지 못했다. 국내선수 중 단 한 명도 공격 리바운드를 따내지 못한 것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근성이 실종된 선수들의 모습에 크게 실망한 모양새였다. 비록 팀은 승리했지만 조 감독은 되레 “국내 선수들 모두 반성해야 한다”며 일갈했다. 조 감독이 근성을 얼마나 중요시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3라운드 24순위로 뽑힌 ‘신인’ 강호연을 식스맨으로 중용하는 까닭 역시 ‘수비’에 있다. 깔끔한 슈팅 밸런스와 빠른 슛 타이밍을 갖춘 강호연은 신인답지 않은 과감한 3점포로 팀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하지만 강호연을 투입하는 진짜 이유는 결코 득점을 위한 것이 아니다. 조 감독은 강호연에 대해 “수비를 하려고 하는 선수”라 딱 잘라 말한다. 실제로 조 감독은 강호연이 슈팅을 실패했을 때 보다 수비에 대한 집중력이 무너지는 시점에서 더욱 냉정해진다.

조 감독이 그토록 근성 있는 수비를 강조하는 이유는 팀 사정에 기반을 둔다. 조 감독은 “팀이 매번 90점 이상 득점할 수 있는 공격력을 갖췄다면 수비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확률이 지배하는 공격의 한계를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꾸준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수비에 사활을 거는 것이다.

kt는 25일 인천 전자랜드를 꺾고 조 감독이 말한 3라운드 목표 승률(5할)에 단 1승만을 남겨두고 있다. 지금과 같은 골밑장악력을 보인다면 5할 승률은 물론 그 이상까지 바라 볼 수 있다. 특히 외국인 선수 동시 출전 시간이 2,3쿼터로 늘어나는 4라운드부터는 본격적인 순위 싸움을 노려볼 만하다.

조 감독이 불어넣고 있는 근성이 ‘높이’가 되어 나타났다. 어찌됐건 감독 부임 첫 해에 새로운 팀 컬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조 감독은 “kt에 높이가 약하다는 편견이 있다. 몇 년 동안 수비와 스피드를 부각했기 때문에 잔존하는 이미지가 강하다. 국내선수의 신장은 낮은 편이지만, kt는 분명 낮은 팀이 아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아직 리그는 반환점도 채 돌지 않았다. kt의 남은 시즌이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헤럴드스포츠=정성운 기자 @tjddns4504]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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