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불안장애,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이미지중앙

로이스 화이트.


#1. 그는 코트 안에서는 특유의 과감한 슛과 탄력 넘치는 리바운드 기술로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농구를 하는 동안에는 오직 농구만 생각한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면 돌변한다. 엄습하는 온갖 불안감에 사로잡혀 몸 둘 바를 몰라 한다. 다음 경기를 위해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갑자기 무서워진다. 운전을 할 때는 사고가 염려되어 끊임없이 좌우를 두리번거린다. 가슴에 약간의 통증을 느낄 때는 심장마비가 올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매사에 그저 긴장하고 걱정하는 정도이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거의 공황상태에 빠진다. 맥박이 빨라지면서 호흡이 가빠진다. 곧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 프로농구(NBA)에서 파워포워드로 활약하고 있는 로이스 화이트(Royce White)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미지중앙

찰리 벨잔.


#2. 그는 PGA투어 상금랭킹 139위로, 이듬해 투어카드 획득에 빨간 불이 켜졌다. 대회는 마지막 토너먼트. 그에게는 마지막 기회였다 긴장한 가운데 2라운드를 맞은 그에게 갑자기 엄청난 두려움이 찾아왔다. 목구멍이 조여오고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의료진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의 플레이를 지켜보았다. 18홀을 끝내자마자 그는 호흡곤란으로 인근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의료진은 더 이상의 라운딩은 치명적이 될 수 있다며 3라운드 출전을 극구 말렸다. 그러나 그는 막무가내였다. 3,4라운드에서도 롤러코스트와 같은 컨디션으로 의료진의 마음을 졸이게 했으나 이를 극복하고 끝내는 생애 처음으로 우승까지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미국 프로골퍼 찰리 벨잔(Charlie Beljan)에게 일어난 감동적이지만 위험천만한 일화이다.

화이트와 벨잔 두 선수의 공통점은, 둘 다 불안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하게 극단적으로 불안을 느끼는 현상으로, 심장박동수가 급속히 증가하고, 과도한 땀분비, 호흡곤란, 두통 등을 일으키는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최근 국내 인기 방송인 정형돈 씨도 이 같은 불안장애를 이유로 방송출연을 중단했다.

일반적으로, 위험하거나 긴장된 상황에서 적절한 불안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그것이 과도할 때는 화이트나 벤잘 같은 증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운동선수들처럼 하루하루 생활이 마치 전쟁과도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특히 조심해야 한다. 해외에서 투어생활을 하고 있는 골프선수들의 경우 매 주 혼자서 원거리를 이동해야 해야 하는 체력적인 부담 이외에, 가족과 멀리 떨어져서 지내야 하는 외로움과도 싸워야 한다. 주중에는 선수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그 같은 생활이 반복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고, 그것을 적절하게 풀어주지 않으면 불안장애에 시달릴 수 있다.

국내 프로스포츠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프로야구는 어느덧 10개 구단 시대가 열렸다. 프로축구 역시 과거에 비해 팀 수가 많아졌으며, 프로배구와 골프도 그 인기를 더 해가고 있다. 자연, 더 많은 선수들이 매일 승과 패의 갈림길에서 적지 않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정형돈 씨를 괴롭히고 있는 불안장애라는 정신질환이 누구에게나 찾아들 수 있다. 아니, 드러나지 않았을 뿐, 적지 않은 선수들이 불안장애로 고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안장애는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증상에 따라 약물 또는 심리치료를 받아야 한다. 화이트와 벨잔 역시 약물 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하여 지금은 많이 호전되었다고 한다. 이 외에 이들은 불안장애 예방을 위해 ‘심호흡법’을 권장하고 있다. 불안이 엄습할 때 심호흡을 통해 그 불안을 떨쳐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종교를 가지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불안장애는 아니지만, 차범근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은 종교의 힘으로 불안감을 해소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승리만을 바라는 팬들의 지나친 기대감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으나, 그 때마다 기도의 힘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인지 국내에는 적지 않은 축구 선수들이 종교를 갖고 있다.

이제 불안장애는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아무런 대처 없이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을 한다면 그 누구라도 화이트나 벨잔 처럼 불안장애 또는 공황장애로 고생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방법을 찾아 치료받아야 한다. seanluba@hanmail.net

*필자는 미주 한국일보와 <스포츠투데이>에서 기자, 체육부장 및 연예부장을 역임했고, 현재 스포테인먼트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