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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DT캡스챔피언십]오지현이 클럽하우스 스코어의 함정에 빠지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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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이 확정된 순간 19세 동갑내기인 박지영(오른쪽), 지한솔 등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는 오지현(가운데).<사진=채승훈 기자>


# 상황1. 지난 9월 5일 한화금융클래식 최종 4라운드. 1~3라운드에서 모두 선두를 달리며 4타차 선두로 출발한 배선우(21 삼천리)는 마지막 18번홀 더블보기 등 이날만 무려 7타를 잃으며 노무라 하루(일본)에게 동타를 허용했고, 연장전에서 패했다. 손안으로 쏙 들어왔던 첫 승이 연기처럼 날아간 것이다. 승부가 그런 것이라지만 충분히 잔인했다. 배선우는 뚝뚝 눈물을 흘렸다. 이날 시즌 3번째 준우승을 기록한 배선우는 이후 5개 대회에서 20위권 전후로 여전히 선전을 펼치고 있지만 빼어난 기량에 비해 아직도 우승을 일구지 못하고 있다.

# 상황2.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지난 6월 21일 기아자동차 제29회 한국여자오픈 최종 4라운드가 열린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GC. 경기 중반 4타차 선두를 달리던 박성현(22 넵스)은 배선우처럼 ‘클럽하우스 스코어의 함정’에 빠졌다. 첫 승에 대한 압박감에 그 좋던 샷감이 갑자기 흔들린 것이다. 12~17번 홀에서 볼을 해저드에 빠뜨리는 등 5개홀에서 무려 6타 잃었다. 마침 추격자는 2주 전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에서 자신의 우승컵을 낚아채간 이정민. 골프장이 술렁거렸다. 결과는 마지막 18번 홀에서 파로 위기를 극복한 박성현의 신데렐라 탄생. 이후 박성현은 2승을 더하며 투어 최장타로 한국여자골프의 새로운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3승째는 어렸웠던 상황을 딛고 역전우승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 8일 ADT캡스챔피언십이 열린 부산 해운대비치 골프&리조트에서는 또 한 번 첫 승을 노리는 신예가 클럽하우스 스코어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됐다. 전날 1타차 단독 2위에 오른 오지현(19 KB금융그룹)은 올시즌 3승 등 통산 4승의 고진영(20 넵스)를 상대했는데, 전반이 끝났을 때 3타차 선두로 나섰다. 또래지만 우승경험이 없었기에 후반 들어 오지현이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가 된 것이다. 오지현은 마지막날 챔피언조 경험 자체가 없었고, 전날 인터뷰 때 목소리가 떨리고, 스스로 "많이 떨린다"고 토로하는 등 제법 긴장을 탔다. 상황1의 눈물일까? 상황2의 스타탄생일까?

# 마침 고진영에게도 사연이 있어 이날 승부는 더욱 특별했다. 그는 8월초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세계를 놀라게 하는 선전을 펼치다 마지막날 우승을 놓친 ‘클럽하우스 스코어의 피해자 경력’을 갖고 있다. 슬럼프에 빠졌다가 이번 대회에서 눈부신 플레이로 화려하게 부활하고자 했다. 2라운드에서 선두로 나서면 모두 우승했다는 통계까지 그에 대한 믿음을 더해줬다. 고진영에게는 잔인한 추억의 극복이냐, 실패냐가 걸려 있었던 것이다.

# 승부는 생각보다 싱거웠다. 오지현이 7~10번 홀에서 4연 속 버디를 잡으며 기세를 올리자 되레 겸험에서 앞서 고진영이 무너지고 말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동반자 조건. 오지현은 “많이 떨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긴장이 안 됐다. 어렸을 적부터 많이 쳤던 언니들과 한 조로 플레이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날씨. 오지현은 ‘빗속의 여인’으로 불릴 만큼 유난히 우천 플레이에 강하다. 이날도 “솔직히 비가 오길 바랐다”고 말했다. 라운드 내내 하늘을 적신 빗줄기가 오지현의 긴장을 닦아준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기 내용. 7, 8번 홀 버디 때 오지현은 더 먼 거리에서 세컨드샷을 해 고진영보다 더 긴 퍼트를 남겨놨다. 그런데 먼저 퍼트를 해 보란 듯이 넣었고, 반대로 고진영은 거푸 실패했다. 주말골퍼라도 이럴 때 기분을 알 것이다. 긴장이 찾아올 겨를이 없다.

# ‘클럽하우스 스코어의 함정’이란 경기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도중에 경기결과를 미리 예측하는 것을 말한다. 그 결과 마음속으로 미리 축배를 들어올리면 전혀 다른 사람처럼 플레이하게 되는 것이다. 첫 승이나, 메이저대회 같은 큰 타이틀에 도전하는 경우 선두를 달리던 선수들에게 종종 발생한다. 1999년 브리티시오픈의 장 방 드 벨드(프랑스), 2008년 에비앙마스터스의 최나연 등 그 사례는 부지기수다. 부담감을 떨쳐내고 첫 승을 달성한 오지현이 박성현처럼 승승장구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고진영도, 배선우도 하루빨리 아픈 추억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해운대비치골프&리조트(부산)=유병철 기자 @ilnamham]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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