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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늘집에서] 흔들리는 전인지,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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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인지를 놓고 말들이 많다. KLPGA투어의 흥행을 책임질 선수가 이기적으로 움직인다는 게 입방아에 오르는 이유다. 전인지는 지난 주 에비앙 챔피언십에 출전하느라 2주간 국내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현지 적응을 이유로 한화금융 클래식을 건너 뛰었고 KLPGA챔피언십은 대회 기간이 겹쳐 불참할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전인지는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예선탈락했다. 그리고 KLPGA챔피언십은 최종라운드에 3,000여 명의 갤러리밖에 입장하지 않았다. 두 가지 일이 겹치면서 전인지 책임론이 대두됐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흥행에 실패한 대회의 실무자 입에서나 나올 푸념에 불과하다. 이는 나머지 선수들을 무시하는 지적이다. 대회장을 찾는 골프 팬들이 오로지 전인지의 경기만을 보기 위해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인지는 코스의 특성에 따라 경기력의 기복이 있는 선수다. 전인지는 올시즌 KLPGA투어에서 4승을 거두며 고른 성적을 냈지만 롯데마트여자오픈에선 공동 19위를,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에서는 공동 26위를 기록했다. 또 골프의 특성상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선수라도 모든 대회에서 우승 경쟁을 펼치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신지애의 예에서 보듯이 무리한 경기 출전으로 부상을 키울 수도 있다. 전인지는 부상 전력도 있다. 김효주와 신인왕 경쟁을 한 작년 목 부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선수의 경기 출전 여부는 외부에 알려진 것 이상의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결정하게 된다. 그게 정상이다.

물론 전인지에게도 최소한의 책무는 있다. 많은 것을 얻었으니 이에 걸맞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이것이 흥행을 주도하는 대형스타 다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출전 가능한 대회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컨디션 관리를 잘 해야 한다. 그건 국내 대회든 해외 대회든 마찬가지다. 그게 KLPGA투어에서 얻은 것을 되돌려 주는 방법인 동시에 자신을 선택해 준 하늘에 보답하는 길이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좋은 사례다. PGA투어는 우즈의 출현 이후 놀라운 성장을 했다. 그로 인해 대형 스폰서들이 가세했고 방송 중계권료는 물론 상금 규모도 천문학적으로 늘었다. 우즈의 인기로 투어가 발전했기에 동료들은 그를 고마워 한다. 올 해 형편없는 경기를 해도 그의 실력을 얕잡아 보는 동료는 없다. 이는 비단 선수들 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디어는 물론 골프관련 산업 전체가 그의 덕을 봤다. 그래서 그런지 우즈가 왜 PGA투어 경기에 자주 나오지 않느냐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전성기 때 우즈는 연간 20개 안팎의 경기를 소화했으며 성적을 잘 내는 코스 위주로 출전했다. 그래서 한 대회에서 8번이나 우승하기도 했다. 우즈는 96년 PGA투어 데뷔후 97년과 99년, 2005년 세 차례만 연간 최다인 21개 대회에 나갔다. 그리고 나머지 시즌은 모두 20개 미만의 대회에 나갔다. 이는 분명 이유가 있다. 오랜 시간 최상의 경기력과 인기를 유지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었다. ‘촌놈 마라톤 뛰듯’ 오버 페이스 했다가는 이듬 해 영락없이 후유증이 찾아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바둑에도 좋은 사례가 있다. '돌부처' 이창호(40)는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바둑의 신(神)으로 추앙 받았다. '반집의 미학'으로 현대 바둑사를 새롭게 쓴 이창호는 축구의 공한증(恐韓症) 처럼 공이증(恐李症)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의 전성기 때 이런 얘기가 나왔다. "한국 바둑이 낳은 세계 최강자의 대회 출전 횟수를 줄여야 한다"고. 그래야 최고의 바둑을 더 오래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상금이 많이 걸린 메이저 대회나, 국제 대회에 주력해야지 모든 대회에 출전했다가는 수명이 짧아진다는 논리였다. 우량아 선발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체력이 좋았던 이창호도 결국 나이가 들고, 수많은 대국에 시달리면서 생각보다 일찍, 그리고 갑자기 전성기를 마감해야 했다.

프로세계에서 나갈 대회를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선수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그 선수의 경기를 보기 위해 대회장을 찾는 갤러리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경기력이다. 프로가 해야 할 일은 여기 저기 불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프로다운 경기를 하는 것이다. 그게 선수를 위하고 투어를 살찌우는 길이다.

소모적인 논쟁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인지는 오래 전 일본여자오픈에 출전하기로 약속을 해 놓은 상태다. 최근 일부 비판론에 휩싸여 경기 출전을 망설였다고 한다. 같은 기간 열리는 KLPGA투어 대회에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갈등 때문이었다. 이런 일로 흔들린다면 전인지의 경기력엔 악영향이 있을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떠밀리듯 경기에 나가야 한다는 마음의 불편함은 멘탈 경기인 골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위한다. 우리 속담에 ‘남의 말 사흘 안 간다’는 말도 있다. 전인지는 작년 ‘일인천하’를 구축했던 김효주가 지난 1월 JTBC 파운더스컵 우승후 이렇다 할 성적이 없는 것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지금 전인지에게 필요한 것은 꾸밈없는 진실을 말하며, 용맹정진하며,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가는 것이다. [헤럴드스포츠=이강래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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