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라 하루가 동료들의 축하를 받는 사이, 배선우(왼쪽)가 이를 지켜보며 그린을 빠져 나오고 있다. 태안=채승훈 기자
# 전날인 5일 3라운드를 4타차 선두로 끝낸 배선우는 “가슴에 한이 많이 맺혔다. 4라운드는 독기를 품고 하겠다. 퍼트할 때 (홀컵의)뒷벽을 보고 자신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각오가 다부졌다. 올해만 이미 두 번이나 마지막 날 챔피언조로 플레이하면서 우승을 눈앞에 뒀다가 아쉽게 놓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2위 노무라는 “우승은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플레이에 주력하겠다. 어려운 코스인 까닭에 상대가 부진하고, 운이 따른다면 우승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린 나이지만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어린시절)-한국(초중고)-다시 일본(프로)-그리고 미국(프로), 이어 한국기업 후원(2015년부터) 등을 거친 인생의 내공이 녹록치 않은 듯했다.
# 6일 오전 대회장인 골든베이골프앤리조트에는 챔피언조의 출발을 앞두고 ‘선우시대’라는 글귀가 새겨진 파란 모자를 쓴 수십 명이 무리를 지어다녔다. 대부분 삼천리 직원들로 구성된 배선우 응원단이었다. 배선우를 아끼는 삼천리 이만득 회장이 전날 현장 응원을 했는데, 마지막 날 배선우가 주최 측의 선수 두 명(노무라, 김인경)과 한 조로 플레이하게 되자 힘을 실어주기 위해 회사 차원에서 움직인 것이다. 공교롭게도 한화는 주홍색, 삼천리는 파란색이 상징이라 대조를 이뤘다.
우승이 확정된 직후 노무라 하루(가운데)가 '팀 한화'의 김상균 감독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태안=채승훈 기자
# 연장을 앞두고 ‘팀 한화’ 선수들이 18번 홀 그린 옆에 앉아 노무라를 응원했다. 2009년 US여자오픈에서 2타차 역전우승을 거둔 지은희(29)에게 전망을 물었다. “같은 팀이라서가 아니라 이런 경우는 무조건 하루가 유리해요. 아마 첫 번째 홀에서 끝날 겁니다.” 배선우의 세컨드샷이 러프에 들어가자 지은희 프로는 “끝났네요. 서드샷은 아마 그린을 오버해 어려운 위치에 갈 확률이 높아요. 그럼 파 세이브가 힘들어져요”라고 말했다. 결과는 그렇게 나왔다.
# 꼴등이 있어야, 1등이 있듯이 짜릿한 역전 우승에는 쓰라린 패배가 존재해야만 한다.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와 역사에 남을 연장승부를 펼쳤던 제니 추아시리폰(태국)은 승자가 ‘골프여왕’이 되는 사이 일찌감치 은퇴하고 간호사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사실 골프에서 퍼팅 하나로 운명이 바뀌는 잔인함은 흔한 일이다. 이날 명승부에 조연으로 출연한 김인경도 2012년 메이저 대회인 나비스코챔피언십 마지막 18홀에서 30cm 파 퍼트를 놓친 후 지금까지도 전성기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남은 일은 노무라가 우승자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배선우가 이날 울음을 딛고 더 큰 선수로 거듭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에 대한 ‘전조’는 나쁘지 않다. 실컷 운 후 시상식에 참석한 배선우는 노무라의 우승 소감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끝까지 팬들에게 사인과 사진 촬영을 해준 후 자리를 떴다. 울음을 꾹 참으며 말이다. [태안=헤럴드스포츠 유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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