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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크리스티 커에게 직접 물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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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LPGA 하나·외환 챔피언십'에 출전한 크리스티 커의 경기 장면.

“They are machines. They practice 10 hours a day.”

얼마 전 한바탕 우리나라 대부분의 언론과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던 미국 베테랑 프로골퍼 크리스티 커의 한국 선수들에 대한 ‘문제의’ 발언이다. 세계랭킹 1위인 박인비가 맞받아쳐 이 발언은 더욱 화제가 됐다. 시기심의 발로에서 나온 ‘비아냥’투였다는 게 우리 언론과 누리꾼들의 ‘평결’이었다. 때문에 커는 이제 한국에 더 이상 올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온다면, 그는 보통 강심장의 소유자가 아닐 것이다. 그의 발언이 진실로 그런 의도였다면.

그런데 말이다. 명색이 미국을 대표하는 선수인데, 어떻게 그렇게 대놓고 비아냥댈 수 있었을까? 그리고 우리 언론과 누리꾼들은 어떤 근거로 커를 ‘질투의 화신’으로 낙인 찍었을까? 뭔가 사정이 있지 않을까? 하여 확인해 보았다.

우선, 커의 발언을 맨 처음 인용해 보도한 것으로 보이는 AP 기사를 살펴보았다.


Park said she needed to produce her best display of putting in two years to overhaul Ko, who is the latest on a conveyor belt of talent coming from the South Korean tour.
Ko was bidding to become the third first-time major winner from South Korea in the last five majors, after Hyo-Joo Kim at the Evian last year and In-Gee Chun at the U.S. Women's Open last month.
"They are machines," American player Cristie Kerr said of South Korean golfers. "They practice 10 hours a day."
The 27-year-old Park is the second-youngest player to win the four traditional majors. Webb was 26 when she completed the haul in 2001.


지난 8월2일에 작성된 이 기사의 앞 뒤 맥락을 보면, 커는 한국 선수들이 왜 그렇게 좋은 성적을 내는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그렇게 답한 것으로 보인다. “기계처럼 매일 10시간씩 연습을 하니 잘 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비아냥’ 투인 것 같기도 하고, 한국 선수들의 엄청난 연습량에 감탄하는 투인 것 같기도 하다. 헷갈린다. 글을 쓴 기자가 연습량을 높이 평가하고자 했다면 커의 발언은 ‘칭찬’이다. 반대로 비판하고자 했다면, ‘비아냥’이다.

커의 말을 인용한 기사는 또 있었다. 8월4일 골프채널이 보도한 내용이다.
...
Sixteen of the top 30 players in the Rolex world rankings are Korean born. Count four South Korean LPGA rookies among that top 30. Chun will join the LPGA as a rookie next year, and Jin-Young Ko says she hopes to join in the near future.
“They’re so talented,” American Cristie Kerr said. “They’re machines. They practice 10 hours a day.”
For a few years there, some of South Korea’s best young talent was staying home to play the KLPGA and Japan LPGA tours. Why this new push to the American-based LPGA?
“I joined the LPGA in hopes of making the Olympics team,” Sei Young Kim told GolfChannel.com.
Kim isn’t alone making the move. With golf returning to the Olympics next year, the LPGA offers the best avenue to qualify. The Rolex Women’s World Rankings is used to determine who qualifies, and the LPGA offers more world-rankings points than any other women’s tour in the world.

역시 앞 뒤 문맥상 한국 선수들의 눈부신 활약상의 이유를 커의 발언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한 것 같다. 그런데, 이 기사에는 AP 기사에 없는 커의 말이 하나 더 있다. “They’re so talented.” 한국 선수들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커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한국 선수들이 그렇게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재능이 있는데다 연습량도 많아서 기계처럼 잘 치기 때문이다가 아닐까? 저 문장이 ‘결정타’로 보인다. 이런! ‘비아냥’이 아니라 ‘칭찬’처럼 들린다.

우리나라 언론사들의 기사를 찾아보았다. 대부분 비슷했다. ‘비아냥’이라고. 그 중연합뉴스 영문기사를 골랐다.


Overall, South Koreans have combined to claim 12 out of 20 tournaments. It’s not counting two wins by South Korean-born Lydia Ko, and one victory by Minjee Lee, who was born in Australia to Korean parents.
Park said she thinks some American players may feel “jealous” of South Koreans’ dominance.
“I think if six or seven out of the 10 best players on the Korean tour were from overseas, we’d feel the same,” she added. “But I think the players should be thankful for the competition, and the real professionals are the ones who beat their rivals.”
At the Women’s British Open, another South Korean, Ko Jin-young, finished alone in second, while Ryu So-yeon, former Rookie of the Year and world No. 4, tied for third.
An American veteran, Cristie Kerr, was compelled to say of South Koreans: “They are machines. They practice 10 hours a day.”
Park responded, “Then they should build better machines.”

지난 8월6일 커의 발언에 대한 박인비 선수의 언급을 전한 기사이다. 박인비는 ‘시기심’에 대한 상황적 의견을 개진한 뒤 커의 발언에 대해 한 마디 한다. 마지막 ‘일갈’이 압권이다. ‘그럼 그들은 더 나은 기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박 선수는 커의 발언을 한국 선수들에 대한 비아냥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이 기사 문맥상 커의 발언은 ‘비아냥’투이다. 이 기사에 누리꾼들이 환호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런! 이 번엔 ‘비아냥’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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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갈리다 못해 이젠 짜증이 난다. 같은 말이 어떤 기사에서는 ‘칭찬’이 되고, 어떤 기사에서는 ‘비야냥’이 되니 말이다.

커의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가 또 있다. 그가 한국 선수들을 ‘기계’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언어의 ‘중의적 표현’이다. 어떤 단어 또는 문장이 2가지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영자는 장미다”라는 말은, ‘영자는 예쁘다’, ‘영자의 별명은 장미다’, ‘영자의 성격은 까다롭다’로 해석될 수 있다. ‘영자는 장미다’라는 말만 가지고서는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다. 앞 뒤 문맥 파악이 필수다. 영자의 얼굴 생김새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 뒤 그런 말을 했다면, ‘영자는 예쁘다’라고 해석해야 한다. 생김새에 대한 설명이 뒤에 나와도 관계없겠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기계로 비유했을 때, 이는 기계처럼 잘 한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될 수 있고, 다른 것은 하지도 않고 생각이나 행동이 판에 박은 듯 하거나 자기 뜻이 아닌 남의 뜻에 따라 행동한다는 부정적인 뜻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앞 뒤 문맥을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제 아무리 앞 뒤 문맥을 잘 살핀다 해도 글 쓰는 이가 어떤 의도로 어떤 이의 말을 인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는 데 있다. 커의 발언을 인용한 기사가 좋은 예이다.

역부족이다. 기사만 가지고서는 커의 진의를 알 수 없다. 중의적 표현을 사용한데다가 기사마다 그 의미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커를 직접 만나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열리는 LPGA 대회에 커가 참가한다면 한 번 물어봐야겠다. “왜 그렇게 말했나?” Sean1961@naver.com

*필자는 미주 한국일보와 <스포츠투데이>에서 기자, 체육부장 및 연예부장을 역임했고, 현재 스포테인먼트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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