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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고등학생 복싱체육관장의 사연
고등학생 체육관장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관악고 2학년에 재학 중인 박기영 군(17, 1998년생).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4가에 위치한 한 작은 ‘복싱’ 체육관의 주인이다. 대학진학을 목표로 둔 학생이지만 엄연히 이곳의 주인이다. 학교가 없는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 저녁도 이곳에서 운동을 하고 관원을 가르친다.

관원은 단 3명. 다른 체육관에 비해 비싼 회비를 내고도 ‘이마에 피도 안 마른’ 고등학생에게 배우고 있는 것이다. 3명 모두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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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신분으로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는 박기영 관장. 사진=원동민 기자

이쯤이면 이상하다. 박기영 관장이 ‘천재’ 등의 수식어 붙는 스타플레이어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178cm 70kg의 평범한(?) 체형으로 대한복싱협회에 등록된 선수지만 서울시대회에 한 차례 나가 2승1패를 기록한 것이 고작이다.

이 정신 나간 상황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죽어라 배워도 시원찮을 나이인데 누구를 가르치다니. 성인제자 3명은 무슨 생각으로 고등학생에게 복싱을 배우고, 17살짜리에게 관장을 시키는 부모는 누구인가?

그렇다. 정답은 아버지에 있다. 박기영 관장의 아버지는 실전권도의 창시자로 ‘피닉스(불사조)’라는 닉네임으로 널리 알려진 박현성 씨다. 그리고 체육관의 정식명칭은 (사)대한권도협회 연수본관이다.

지난해 박 씨가 갑작스레 별세하면서 6개월간 한 관원이 위탁운영했지만 지난 2월 ‘도저히 안 되겠다’며 손을 털고 나갔다. 폐관의 위기. 이때 아버지로부터 권도를 비롯해, 복싱(타격술), 종합격투기 등 ‘싸움의 기술’을 전수받은 박기영 ‘군’이 “아버지의 최대 유산을 그냥 사장시킬 수는 없다”며 관장을 맡겠다고 나섰다. 이에 후원회가 결성되면서 체육관은 4월 다시 문을 열었고, 3개월째 흑자운영을 하고 있다. 미성년자인 까닭에 각종 법적 명의는 어머니 이름으로 돼 있지만 관원지도는 물론, 회비와 후원회비를 바탕으로 철저하게 혼자 운영하는 관장이다.

“싸움 잘 하냐고요? 전 싸우지 않아요. 관장이 싸우면 되겠어요?(웃음) 또래들은 저를 건들지 않고, 가끔 못된 선배들이나 저를 모르는 애들이 시비를 걸어오지만 간단히 제압하는 정도에요. 고민은 남들하고 똑같아요. 대학 가야죠. 그동안 진학준비를 소홀히 했는데, 공부와 운동 모두 열심히 해서 체대에 들어가는 게 목표입니다.”

어느새 선친의 키를 훌쩍 넘어선 그의 굵은 목소리는 아버지의 것과 닮았다. 남들이 뭐라 하든 자기 하고픈 대로,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기질까지 물려받은 것일까? 박기영 관장은 “대학에 가면 일단 복싱을 할 거에요. 그리고 무에타이, 그래플링을 배우고 최종적으로는 종합격투기에 도전할 겁니다. 아버지가 만든 권도를 내가 완성하고 싶은 거죠”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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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걸린 아버지 고 박현성 관장의 사진과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아들 박기영 관장. 사진=원동민 기자

아버지 박현성 씨는 아들의 지금 나이에 이미 아마추어 전국구 스타였다. 소년체전 우승을 거쳐 84, 88년 올림픽 대표 선발전 2위를 차지했고, 86년 킹스컵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건 ‘천재복서’였다. 편파판정으로 88올림픽 출전이 좌절되자 폭력조직에 가담했고, 조직의 보스가 됐다. 그러나 반대파의 기습에 아킬레스건이 잘리자 분신자살을 시도해 전신 1도의 화상을 입었다. 이후 눈물의 재활 끝에 1997년 지도자로 다시 복싱계에 들어서 서철 등을 가르치며 메달제조로 이름을 날렸고, 2003년에는 직접 종합격투기 선수로 출전해 스피릿MC 4강에 드는 등 인상적인 경기를 선보였다. 통증을 느끼지 않아 암바에도 탭을 치지 않는 장면을 연출하며 ‘피닉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각종 방송에 출연하고, 영화의 모티프가 되며 이름이 알려진 박현성 씨는 일반인이 15개월 만에 국가대표가 된 ‘한국판 밀리언달러 베이비’ 민현미 등 여자복서를 양성했다. 그의 삶을 직접 다룬 영화 <링>이 나오기도 했다. 죽음을 예견했던 것일까, 2012년부터 아들 박기영 관장에서 권도 등 격투기기술을 전수했다.

“아버지가 그랬어요. 싸움이 100이라면 90이 기술이고, 10은 경험이라고요. 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삶을 지켜보고 자란 까닭에 저 역시 격투가의 피가 흐르는 것 같아요. 권도를 이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제가 관장을 맡고 있지만 저 역시 성장하고 있는 미래의 파이터입니다. 아버지와 저, 그리고 권도를 아는 분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상황이 꼭 그렇다. 그러고 보니 오는 24일이 고 박현성 관장의 1주기 기일이다. [헤럴드스포츠=유병철 편집장 @ilnamhan]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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