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멕시코판 승부조작 사건 - 이준석의 킥 더 무비<루도와 쿠르시>

루도와 쿠르시(Rudo y Cursi)


2011년 충격적인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습니다. 많은 선수들과 브로커들이 구속되었고, 팬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죠.

승부조작 사건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닙니다. 1919년, 미국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시카고 화이트 삭스가 신시내티를 상대로 고의로 져주기 게임을 한 블랙 삭스 스캔들(Black Sox Scandal)은 이미 승부조작의 고전이 되었죠. 1970년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니시테츠 라이온스를 필두로 한 대형 승부조작 스캔들이 터졌습니다. 해외 축구에서도 이탈리아나 중국 등에서 승부조작 사건이 터져 많은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각국의 승부조작 스캔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폭력배의 검은 돈과 도박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사건들은 자기 팀을 위해 열과 성을 다했던 팬들을 실망시킵니다.

그렇다면 축구에 죽고 산다는 중남미 국가는 어떨까요? 축구 열기와 범죄 등을 감안해 본다면 유럽이나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심하지는 않을 겁니다. 마침 이런 시점에 북중미 축구의 맹주라 일컬어지는 멕시코에서 이를 소재로 다룬 영화가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루도와 쿠르시(Rudo y Cursi)>입니다.
이미지중앙

멕시칸 드림(?)을 꿈꾸던 형제, 승부조작을 시도하다

멕시코의 어느 바나나 농장. 이곳에는 가난한 소작농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바나나를 따서 입에 풀칠을 하는 루도(Rudo)와 쿠르시(Cursi)는 일이 없을 때 동네 흙바닥에서 축구를 하는 게 유일한 낙이죠. 성격이 거친 루도는 골키퍼를 보고, 노래를 잘하는 쿠르시는 스트라이커입니다. 루도는 아내와 아이들을 먹여 살릴 걱정이 크고, 쿠르시는 노래 실력을 살려 미국 텍사스로 가서 가수로 성공하는 게 꿈입니다.

어느 날 마을에 부유해 보이는 축구 스카우트가 방문합니다. 고장난 차를 고치기 위해 잠시 머무르던 스카우트는 루도와 쿠르시의 재능을 알아봅니다. 그들에게 멕시코시티의 프로축구팀 입단 테스트를 권유하는 스카우트. 하지만 이적 시한에 걸려 둘 중 단 한 명만 데려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루도와 쿠르시는 페널티킥으로 누가 멕시코시티에 갈지 결정하기로 합니다. 가족이 딸린 루도는 꼭 프로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쿠르시에게 공을 자신의 우측으로 차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쿠르시는 본인의 우측으로 공을 차고, 루도는 자기 우측으로 몸을 날립니다. 이런 사소한 오해로 쿠르시가 멕시코시티로 가서 아마란토(Deportivo Amaranto)라는 팀에 입단을 합니다.

기회를 뺏겨 속상한 루도. 하지만 루도에게도 입단 제의가 옵니다. 1부 리그로 승격하는 노팔레로스(Deportivo Nopaleros)에서 골키퍼를 찾고 있었던 거죠. 결국 루도 역시 프로선수가 됩니다. 시골에서 바나나나 따던 루도와 쿠르시는 졸지에 출세합니다. 멋진 모델과 사귀며 비싼 차를 몰고 다니는 쿠르시. 루도 역시 넘쳐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고 카지노에 빠져듭니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 루도와 쿠르시에게 시련이 닥칩니다. 가수의 꿈을 버리지 못한 쿠르시는 음반을 내고 가수로 활동을 하면서 축구 실력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결국 주전 선수에서 후보로 떨어진 루도. 설상가상으로 모델 여자친구마저 다른 선수에게로 떠납니다. 아마란토 구단은 쿠르시가 다음 번 노팔레로스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지 못할 경우 2부 리그 팀으로 그를 팔아버리겠다고 최종 통보를 합니다.

한편, 루도는 도박으로 수많은 빚을 지고 마피아에게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마피아들은 루도가 다음 번 아마란토와의 경기 때 일부러 한 골을 먹고 져주면 도박 빚을 탕감해 주겠다고 협박합니다.

마침내 형제가 한 그라운드에 서게 되는 경기, 아마란토와 노팔레로스의 경기가 열립니다. 치열한 축구 경기의 현장에서 루도와 쿠르시 형제는 검은 타협을 하게 됩니다. 쿠르시가 쏜 슛을 루도가 일부러 먹어주면 두 형제는 윈-윈(win-win)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마침내 종료 직전, 쿠르시는 페널티킥을 얻어냅니다. 이번에는 확실히 오른쪽으로 차라고 사인을 보내는 루도. 과연 쿠르시와 루도와 승부조작은 성공할까요? 쿠르시는 골을 넣고 주전선수로 잔류할 수 있을까요? 루도는 경기를 일부러 져준 대신 도박 빚을 변제받을 수 있을까요?
이미지중앙

중남미의 열정만큼이나 큰 부작용

멕시코는 물론이고 남미는 축구 열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들입니다. 어릴 적 ‘천사들의 합창’이라는 멕시코 드라마를 보면 아이들의 입속에서 ‘축구’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옛날에는 외국 드라마라면 무조건 미국 것인 줄 알았기에 미국 사람들이 저렇게 축구를 좋아했었나 하고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처럼 축구에 대한 열정이 크다보니 많은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예전에 아르헨티나에 보카 주니어스 경기를 직접 보러 갔던 후배 말에 따르면, 그야말로 축구 보러 갔다가 ‘죽을 뻔’ 했다고 하더군요.

사방에 보안 카메라가 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범죄자들의 폭력이 사방에 넘쳐났다고 합니다. 예전에 수원에서 뛰었던 용병 나드손(Nadson)은 자기가 브라질에 있을 때, 경기에 지면 성난 관중들 때문에 몇 시간이고 집에 못 가고 경기장에 갇혀 있곤 했다고 말했죠.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자살골을 넣었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콜롬비아의 에스코바르(Escobar) 선수처럼 안타까운 사례도 있습니다. 치안 상태가 불안정하고 마피아들의 부패와 폭력이 극에 달한 남미에서 축구장 폭력의 강도는 상상을 뛰어넘죠.

이 영화에서도 그런 남미 축구의 안타까운 모습을 시사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경기를 앞둔 쿠르시에게 다가온 팬들은 사인을 해 달라고 하면서 만일 경기에 질 경우 쿠르시와 가족들을 가만 두지 않겠다며 협박합니다. 스카우트는 마피아와 선수, 구단 간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승부조작을 주도합니다. 사실 멕시코를 범죄의 온상으로 묘사하는 할리우드 영화들을 보면서, 그래도 저건 미국의 편견이 개입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멕시코 현지의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나올 정도면 축구를 둘러싼 폭력과 범죄, 승부조작이 심각하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고 멕시코 축구팬들의 열정까지 깎아내리고 싶진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승부조작 여부를 전혀 모른 채 축구에 열광하는 멕시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경기가 열리는 날 스타디움은 물론이고 시장과 술집, 거리에서 멕시코 인들은 TV에 얼굴을 붙이고 자기 팀의 승리만을 바랍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승부조작에 대한 실망감이 깊어지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승부조작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선수가 FIFA 규정을 이용해 해외로 이적하자 분노는 극에 달했죠. 물론 핑계 없는 무덤이 없고 자식을 둔 가장의 입장을 이해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래도 경기 결과 하나에 울고 웃는 팬들을 생각한다면 과연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영화 속에 나오는 대사를 적으며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마치고자 합니다.

Ever since football became a business, everything rides on results.
No more joy in the game, only fear remains.
(축구가 사업이 되면서, 결과만이 중요해졌다.
경기의 기쁨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두려움만이 남겨졌다.)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