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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겸의 MLB 클립] 메츠의 승부수, ‘리드오프’ 커티스 그랜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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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좌)와 그랜더슨(우) (사진=뉴욕 메츠 트위터)


현지시간 6일 워싱턴과 메츠의 개막전. 메츠의 콜린스 감독은 색다른 라인업을 들고 나왔다. 붙박이 3번 타자로 여겨진 데이비드 라이트를 2번 타순에 넣은 가운데, 1번 타자로 커티스 그랜더슨을 기용한 것이다.

물론 그랜더슨에게 1번 타순이 결코 낯선 자리는 아니다. 디트로이트 시절인 2006년부터 2009년까지 팀 내 부동의 1번 타자였으며, 지난 시즌에도 52경기에서 리드오프로 선발 출전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팀 내 새로운 1번 타자로 가능성을 확인했으며, 스프링캠프 내내 라인업의 맨 윗자리를 차지한 후안 라가레스가 시범 경기에서 .350의 고타율을 기록했음을 감안하면 의외의 선택임에 분명했다. 당초 예상된 라가레스-그랜더슨의 테이블세터와 라이트-두다-커다이어의 중심타선은 그랜더슨-라이트의 1,2번 타순과 두다-커다이어-머피의 클린업 트리오로 재편됐다.

그랜더슨이 개막전에서 1번 타자로 나선 것은 2009년 이후 6년 만이다. 하지만 당시와 지난해까지의 그랜더슨과 올 시즌의 그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까지 그랜더슨의 통산 타율과 출루율은 각각 .257와 .338이었다. 타율 대비 출루율은 준수했다. 하지만 2009년을 기점으로 늘어난 홈런 숫자 대신 수직 낙하한 타율로 인해 지난 6년간 .330 이상의 출루율을 기록한 것은 단 한 차례뿐이었다. 장타에 초점을 맞추며 홈런 숫자는 늘어났지만 덩달아 삼진 개수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아울러 볼넷으로 걸어 나가는 횟수도 늘어나며 아담 던 유형의 타자로 굳어져가는 것처럼 보였다. 메츠 팬들이 양키스타디움의 덕을 톡톡히 본 그와 4년 계약에 합의하자 앤더슨 단장을 맹비난 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일이었다.

올 시즌도 그랜더슨의 타율은 .146에 그치고 있다. 현재 메츠 타선에서 규정 타석을 채운 8명의 선수 중 가장 낮은 타율이다. 더군다나 6개의 안타 모두 단타로, 홈런은 물론 아직까지 단 하나의 장타도 신고하지 못하고 있다. 장타율 역시 .146인 셈이다. 현재까지의 결과대로라면, 정확도는 잃어버린 채 정확도를 포기하면서 건진 장타력마저 실종된 것이다. 하지만 메츠의 콜린스 감독은 그랜더슨의 타순 조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팀이 잘 나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차원의 이유가 아니다. 그랜더슨의 성적을 조금 더 뜯어보자.

메츠에서의 첫 해였던 지난해, 그랜더슨은 팀이 치른 첫 13경기에서 .170의 타율을 기록했다. 올 시즌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숫자다. 차이가 있다면 작년에는 주로 4번 타자로 나섰으나 올 시즌엔 1번 타자로 나서고 있다는 점, 그리고 같은 기간 .291의 출루율이 올 시즌 .340으로 높아졌다는 점이다. .340의 출루율은 1번 타자로서 썩 만족스런 수치는 아니다. 하지만 그랜더슨의 현재 타율이 .146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여지가 있다.

당연하게도, 그랜더슨이 본인의 타율보다 2할 가까이 높은 출루율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은 볼넷 덕분이다. 20일까지 12개의 볼넷을 얻어내며 바티스타와 하퍼를 제치고 메이저리그 전체 1위에 올라있다. 그랜더슨이 볼넷 개수가 적은 선수는 아니었으나 이 정도의 페이스를 보인 적은 없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의 삼진 개수다. 그랜더슨은 풀타임 시즌을 보낸 2006년부터 손 골절상으로 100경기 넘게 결장한 2013년을 제외하고 지난해까지 매년 100개 이상의 삼진을 당한 선수다. 아울러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9년간 6번째로 많은 삼진을 당하고 있는데, 앞선 5명은 던, 하워드, 레이놀즈, 어글라, 멜빈 업튼 주니어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공갈포 타자들이다.

하지만 올 시즌 그랜더슨은 12볼넷-8삼진을 기록 중이다. 시즌 초반이나 지난해까지 기록한 통산 595볼넷-1,308삼진의 비율과는 전혀 다른 결과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4.6타석 당 1삼진이 올 시즌 6.6타석 당 1삼진으로 삼진율을 21.6%에서 15.1%로 떨어뜨렸다.

그랜더슨의 타율 .143 역시 불운이 깃든 결과다. 그의 올 시즌 라인드라이브 타구 비율은 33.3%로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11번째로 높다(규정타석 189명 기준). 지난해의 18.9%에 비하면 두 배 가까이 뛰어 오른 수치다. 하지만 그의 라인드라이브 타율 .455는 메이저리그 전체 평균 .670보다 2할 이상 낮으며, 이에 그의 BABIP는 .182에 불과하다. 라인드라이브 타구의 비율과 BABIP가 반비례하는 것은 둘 중 하나다. 불운하거나 시프트에 막히고 있거나. 하지만 그랜더슨을 상대하는 상대 수비진은 극단적인 시프트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로 줄어들게 된다. 향후 그랜더슨의 타율이 상승할 수 있음을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셈이다.

여러 지표에서 그랜더슨이 지난해와 달라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개막전에서 콜린스 감독이 그랜더슨을 리드오프로 기용한 이유는 스프링캠프에서 감지된 변화 때문이었다. 개막전 후 메츠 코칭스태프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랜더슨이 스프링캠프 22경기 56타석에서 불과 두 번의 헛스윙만을 기록했다고 언급했다. 그랜더슨은 시범경기에서 5개의 삼진을 당했지만 두 배인 10개의 볼넷을 기록했으며, .442의 타율과 함께 .531의 출루율을 기록했다. 세밀한 집계가 이뤄지지 않는 시범경기인 탓에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으나, 56번의 타석에서 두 번의 헛스윙만을 기록했다는 것은 엄청난 컨택율이다.

정답은 타격 폼 변화에 있다. ESPN에 따르면 그랜더슨은 케빈 롱 타격 코치의 지도 아래 타격 메카닉에 수정을 가했다. 일단 오픈 스탠스로 열려 있던 오른 발을 최대한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예년에는 오픈 되어 있던 스탠스를 스트라이드시 안쪽으로 닫으면서 타격에 임했다면, 지금은 닫힌 상황 그대로 타격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스트라이드가 최소화되면 몸의 움직임도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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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좌)와 올 시즌(우)의 타격 폼 변화 (사진=MLB.COM 캡쳐)


배트를 든 팔의 위치에도 변화를 줬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몸과 다소 떨어진 곳에 배트를 쥐고 있던 손의 위치를 머리 뒤 쪽으로 바짝 갖다 붙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연스레 오른팔이 상체에 바짝 붙게 됨으로써 자신의 약점이던 몸 쪽 공에 대한 대처가 유연해졌으며, 보다 콤팩트한 스윙이 가능하게 됐다. 방망이의 위치가 변하면서 스윙 궤적의 크기에도 변화가 생겼는데, 그로 인해 그랜더슨은 예년에 비해 자신만의 스트라이크 존을 좁힘으로서 유인구에 배트가 따라 나가는 빈도를 줄이고 있다. 실제 올 시즌 그랜더슨은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는 공에 대해 방망이를 내는 비율이 13.7%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에 올라있다. 지난해의 경우 올 시즌보다 약 두 배 높은 26.2%였으며, 올 시즌 그랜더슨의 뒤를 잇는 2위는 14%의 조이 보토다. 이에 자연스레 스윙 스트라이크 비율도 낮아졌는데, 올 시즌 3.9%의 스윙 스트라이크율은 지난해의 9.6%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롱 타격 코치는 이 같은 일련의 변화를 ‘타격 메카닉을 단순화 시켰다’는 말로 정리했다.

바뀐 타격 폼에서는 예년만큼의 장타력을 기대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말은, 반대로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는 말이 된다. 즉 장타를 포기하는 대신 그랜더슨은 정교함을 선택한 것으로, 콜린스 감독의 그랜더슨 1번 기용이 단순히 감에 의한 운용이 아닌 철저히 계산된 의중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그랜더슨의 1번 기용 효과는 극대화되지 못하고 있다. 모든 스포츠가 그러하듯 야구도 불운이 관여한 과정을 배제하고 도출된 결과가 중요한 스포츠다. 하지만 그랜더슨이 예전과 달리 보다 전통적인 개념의 1번 타자에 가까워진 것은 분명하며, 불운이 곁든 과정을 지우고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149경기가 아직 남아있다.

메츠의 앤더슨 단장은 지난 겨울 ‘2016시즌 올인’을 선언했다. 올 시즌 팀이 가능성 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돌아오는 겨울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잭 휠러가 토미 존 수술을 받았지만 이미 선발 3승 투수를 세 명이나 보유할 만큼 메츠의 선발진은 안정적이며, 노아 신더가드라는 대체 자원이자 팀 내 최고 유망주도 연내 데뷔를 앞두고 있다. 불펜 역시 메히아가 약물 복용으로 80경기 징계라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으나, 파밀리아가 충분히 공백을 메워주는 가운데 다음 달 바비 파넬도 부상에서 복귀할 예정이다. 앤더슨 단장의 의구심은 역시 공격력이었다.

10승 3패. 메츠의 초반 질주는 신선하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든 전문가들이 워싱턴의 우승을 예측한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에 속해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하지만 메츠에게는 이미 고비가 엄습한 느낌이다. 지난주 초 라이트가 부상으로 이탈한 데 이어, 주말에는 좌완 불펜 블레빈스와 디키의 유산이자 올 시즌 공격에서 눈을 떠가는 듯 했던 트래비스 다노가 나란히 골절상을 입으며 장기간 그라운드를 떠나게 됐다. 특히 다노는 라이트의 부상 이후 2번 타순에 배치 된 이후에도 좋은 활약을 보였기에 메츠로서는 이만저만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랜더슨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팀 타율과 득점 모두에서 리그 4위에 오르며 기대 이상의 선전을 했던 메츠 타선이었지만, 3할 타자 두 명의 이탈은 다시금 그들의 타격에 대해 의심의 여지를 남기게 됐다. 두다와 커다이어의 새로운 3-4번 조합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시즌 초반, 그랜더슨이 라이트와 다노를 대신해 그들을 뒷받침 할 수 있느냐는 메츠 돌풍의 파괴력을 가늠 할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헤럴드스포츠 = 김중겸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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