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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노란 신호등’ 차오름 “남자 홍진영? 과분하지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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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케이스타스포츠엔터테인먼트 제공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곽민구 기자] “숨을 쉬며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트로트계에 또 한 명의 스타가 탄생했다. 데뷔 6개월여 만에 차트코리아 성인가요 차트에서 3위에 랭크되고, 신인 트로트 가수라면 누구라도 출연을 희망하는 ‘가요플러스’, ‘전국탑텐가요쇼’을 데뷔 무대로 삼았다. 또 방송가와 행사 섭외가 줄을 이으며 ‘차세대 행사의 신’으로도 주목 받고 있다. 데뷔곡 ‘노란 신호등’으로 가요계 도전장을 내민 가수 차오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행사 섭외 앱인 ‘행사의 신’ 관계자는 “차오름의 행사 섭외가 줄을 잇고 있다”며 마치 ‘사랑의 배터리’로 큰 사랑을 받았던 홍진영의 데뷔 때와 비슷한 추이임을 놀라워했다. 이에 ‘트로트 아이돌’, ‘남자 홍진영’이라는 수식어를 얻고 있는 소감을 묻자, 그는 “과분하고 감사하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잘 나가는 프로 골퍼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던 그가 성인가요계에 도전장을 내밀기까지, 드라마 같은 삶을 살고 있는 트로트 가수 차오름에게 노래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데뷔 6개월 만에 큰 사랑을 받고 있는데 소감이 어떤가요?

“우선 정말 감사하죠. 예쁘게 봐주는 것 같아 행복하네요. 노래를 마친 제게 악수를 청하며 ‘팬이다’, ‘보고 싶었다’, ‘실물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 ‘차오름씨 보러 왔다’고 말해주시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고맙더라고요.”

▲ 데뷔 6개월 밖에 안됐는데 이런 놀라운 인기를 얻게 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행사 섭외도 줄을 잇고, 섭외 요청을 하지 않는 방송국에서 먼저 출연 제의를 해주시기도 하고,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면 조회 수 상승이 놀라울 정도라고 하더라. 그 이유를 저도 생각해봤는데 노래를 하며,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때문이지 않을까 싶네요. 전국 어디라도 섭외를 받으면 찾아가 단 1곡을 부르더라도 열심히 부르려고 노력하는데 그 모습을 기특하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제가 죽다 살아난 걸 아시는 분들은 제 2의 인생을 살아가는 차오름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동정, 격려,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는 것 같아요.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좀 더 노력해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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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케이스타스포츠엔터테인먼트 제공


▲사고에 대한 언급을 하셨는데, 가수의 길을 걷게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요?

“사실 아버지가 국악을 하셔서 어릴 때부터 저도 국악을 했었어요. 그래서 예전부터 가수가 되고 싶었는데 우연히 운동을 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고, 착실히 운동을 하다 프로 골퍼로까지 활동을 하게 됐죠. 그러다보니 가수를 못했던 거예요. 그래도 운동 틈틈이 혼자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하곤 했어요. 그러던 중 바이크를 타고 가다가 번개를 맞고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의 고비를 넘겼고, 이후 기적적으로 몸을 회복한 후 마지막으로 평생의 한으로 맺혀있던 노래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됐고 본격 가수로 데뷔를 하게 됐죠.”

▲ 가수의 삶을 선택하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제가 제2의 삶으로 가수를 선택하게 된 배경을 보면 주변 지인들의 응원이 가장 큰 영향을 줬어요. 지인들 중 ‘제발 노래 좀 해라’, ‘네 노래를 들으면 너무 흥겹고 좋다’는 이야기 많이 해주셨죠. 이 나이에 가수 데뷔를 해도 될까라는 고민을 한동안 했는데 이제 백세 인생에 접어들었는데 아직 30~40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결정을 하게 됐죠.”

▲ 트로트 가수로서의 데뷔, 가장 힘이 되준 지인은 누구였나요?

“내게는 소중한 지인이고 은인이자 선배님인 김민수 회장님의 말이 큰 힘이 됐어요. 평소에도 ‘너 노래해라’는 말을 자주 하셨어요. 사실 가수를 해보려고 마음을 먹으니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함이 생기더라고요. 그때 ‘너만큼 대한민국에서 트로트 잘하는 사람 본 적 없다’며 응원을 해주셨죠. 그 말에 용기를 얻고 하게 됐어요. 그리고 존경하는 송대관, 태진아 선생님, 친하게 지내던 박상철 형님의 존재가 큰 힘이 됐어요. 트로트계를 이끌어 온 그분들이 걸어간 길의 바통을 잇는 트로트 가수가 되자고 마음을 먹었죠.”

▲ 가수로 살아보니 어떤가요. 후회가 되진 않나요?

“처음에는 신인이다 보니 절 알아봐 주는 사람도 거의 없고, 노래에 대한 반응도 별로 없었어요. 하지만 무대에서 노래를 시작해 1절이 끝나고 2절이 되면 박수를 쳐주는 분들이 생기고, 노래를 마치면 ‘노래 잘한다’는 칭찬과 함께 앙코르를 외치는 분들이 생겨나더라고요. 그리고 점점 방송과 행사가 계속될수록 플래카드를 들고 응원을 해주는 분, 함성을 질러주는 분들을 보면서 정말 가수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며 잠시라도 내가 행복을 줬구나‘라는 성취감이 들어 뿌듯하고 행복해요. 그래서 아직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 첫 무대에 섰을 때의 심정은 어땠나요?

“노래를 발표하고 방송 프로그램인 ‘가요플러스’와 ‘전국 탑텐가요쇼’를 비슷한 시기에 올랐어요. 이제 가수로서 첫발을 내딛는다는 생각에 대기실에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내 노래로 시청자 앞에 선다는 설렘과 기대감이 들었고 동시에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중압감이 상당하더라. 프로골퍼로서 수많은 경기를 뛰었는데 그 때보다 긴장감이 더 컸던 것 같아요. 하지만 첫 무대는 제가 정말 무한한 감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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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케이스타스포츠엔터테인먼트 제공


▲ ‘트로트 아이돌’, ‘남자 홍진영’이라는 수식어로 불리는 것에 대해 어떤가요?

“방송이나 행사에서 MC 분이 절 ‘트로트 아이돌’로 소개하시는데 제가 10~20대도 아니다 보니 좀 부끄럽긴 해요. 제가 노래하는 스타일이나, 행사장에 유독 어머님 팬들이 많으셔서 그런 별명을 붙여주신 것 같은데 감사하면서도 좀 쑥스럽고 그러네요. 그리고 ‘남자 홍진영’이라는 수식어에 대해서 우선 홍진영 선배님에게 일단 죄송한 것 같아요. 과분한 이야기이고 정말 감사한 이야기인데 단순 말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대한민국 최고 트로트 스타가 될 수 있도록 더 노래해야 겠네요. 정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할 겁니다.”

▲ 기억에 남는 공연이나 팬이 있나요?

“얼마 전 일본 방송 촬영 차 일본에 간적이 있어요. 공연을 하러 가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일본 측에서 말한 한국 팬 정원이 100명이었어요. 처음에는 일본 공연에 따라와 줄 팬이 얼마나 되겠나 싶었는데 신청자가 500명이 넘었다는 말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네요. 그분들 중 100명을 뽑아 3박5일 동안 일본에서 공연을 하고 왔다는 게 정말 놀랍고 감사한 경험이었어요. 사비를 들여 일본까지 절 응원하러 와준 분들에게 정말 이 자리를 빌어서 또 한 번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그분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노래하고 싶어요.”

▲ 앞으로 서고 싶은 무대 또는 꿈꾸는 공연이 있나요?

“서고 싶은 무대는 정말 많죠. 그 중에서 꼽으라 하시면 ‘열린 음악회’ 같은 큰 무대도 서보고 싶고, 송대관 선배님이나 유명 트로트 선배 가수들이 연말 디너쇼를 하시는데 저도 연말에 나만의 이름을 건 디너쇼를 하는 가수가 되는 게 꿈이예요.”

▲ 어떤 가수가 되고 싶나요?

“전 정말 정통 트로트를 좋아합니다. 한이 서리고 한국 문화가 깃든 전통 트로트를 좋아하다보니 앞으로도 그 길을 쭉 걸으며 위안과 위로를 주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 끝으로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후 욕심을 버리게 됐어요. 그 전까지는 내가 모든 걸 움켜쥐려 했고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베풀 줄 몰랐죠. 그런데 제 2의 삶이 시작된 후 주변 사람들이 나와 더불어 잘 살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죽을 때까지 봉사와 기부를 하며 살고 싶어요.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하니 욕심이 없어지더라고요. 굳이 소망을 말해야 한다면 함께 봉사하며 살아갈 반려자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싶네요.(웃음)”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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