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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네;필] '나라타주', 풋사랑 속 '흑역사'의 달콤한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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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라타주' 스틸컷 (사진=팝엔터테인먼트)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김동민 기자] 로맨스가 아름다울 수 있는 건 그 안에 자리한 불안전성 때문이기도 하다. 누구나 살면서 많은 사랑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랑은 끝내 응답받지 못한 채 공허한 메아리로 남고 만다. 하지만 한 사람의 가슴 속에 불을 지핀 사랑은 당사자조차 알 수 없는 마음으로 커져만 가고 걷잡을 수 없이 파국으로 치닫기 일쑤다. 결국 연인 관계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제어 불가능한 관계인지도 모릅니다. 영화 ‘나라타주’에 등장하는 세 남녀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나라타주’는 제목대로 쿠도 이즈미란 여성의 ‘나레이션’과 ‘몽타주’로 점철된 작품이다. 커리어우먼 이즈미가 창 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회상하는 과거의 첫사랑이자 풋사랑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고등학교 시절 연극 동아리 담당교사 하야마를 짝사랑했던 이즈미가 성인이 된 뒤 그와 재회하고, 여기에 남자 동창생 오노가 이즈미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벌어지는 서사가 영화의 큰 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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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라타주' 스틸컷 (사진=팝엔터테인먼트)



‘나라타주’는 이미 사라져 어렴풋한 잔향만이 남은 이즈미의 과거를 다룬다. 그렇지만 그 잔향은 너무나도 강렬해 스크린 너머에까지 줄곧 묵직한 울림을 만들어 낸다. 기댈 곳 없던 전학생 이즈미, 그리고 아내와의 이별을 겪은 하야마가 서로의 깊은 고독을 어루만지는 지점은 특히 인상적이다. 각자의 상처에 매몰되어 어둠 속을 헤매 온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 위안을 얻는 전개는 일본 특유의 로맨스 감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며 은근한 열기를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영화의 분위기는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연출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고’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오늘의 사건 사고’ 등 꾸준히 청춘과 사랑을 그려 온 감독은 비주얼과 미장셴에 있어 자신의 지금껏 구축해 낸 세계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영화 중간중간 하염없이 내리는 비와 잿빛 톤의 영상, 고요한 가운데 날카롭게 부딪치는 인물 간의 다툼까지.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영화가 이야기하는 아름답고도 지리멸렬한 로맨스를 뼈아프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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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라타주' 스틸컷 (사진=팝엔터테인먼트)



이러한 영화 특유의 로맨스 화법은 ‘사랑’의 불확실성을 강렬하게 부각함과 동시에 사랑에 휩싸인 주체의 무책임한 폭력성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내 이즈미에게 친절하기만 한 하야마와 이런 그를 오매불망 바라보는 이즈미의 관계에는 기대와 희열, 실망감이 겹겹이 중첩된 혼란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어딘가 어중간한 태도로 이즈미를 대하는 하야마, 그리고 이런 하야마를 잊지 못해 오노와 사귀면서도 불안감을 유발하는 이즈미까지. 의도치 않게 피해자가 되고 때론 가해자가 되는 인물들은 결코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결국 ‘나라타주’는 로맨스에 대해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솔직한 고백을 전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환희 뒤에 숨은 고통을 굳이 끄집어 드러내고, ‘위로’라는 미명 하에 숨은 폭력을 고발한다. 그렇게 ‘사랑’이란 이름의 진심은 원하는 것을 어떻게든 얻어내고 또한 지키려는 누군가의 이기심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이기적인 인물들을 무턱대고 비난할 수 없는 건, 아마 우리 역시 언젠가 누군가에게 별다를 것 없는 이기적 사랑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부끄럽고 아프게 남은 과거의 풋사랑이라 해도, 그 잔향만큼은 언제나 달콤한 법이다. 3월 8일 개봉.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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