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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자”…‘윤공희 대주교 주교성성 60주년’
천주교광주대교구가 20일 광주대교구청 성당에서 ‘윤공희 대주교 주교성성 60주년 축하미사’를 열고 있다.[천주교광주대교구 제공]

[헤럴드경제(광주)=황성철 기자] 천주교광주대교구는 20일 광주대교구청 성당에서 ‘윤공희 대주교 주교성성 60주년 축하미사’를 봉헌했다.

‘주교성성 60주년 축하미사’는 한국 천주교 주교 가운데 처음이며, 전 세계 가톨릭교회에서 현존하는 주교 가운데 두번째이다.

미사에는 교구장인 옥현진 대주교를 비롯해 전임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와 사제, 수도자, 신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미사 도중 열린 축하식에서는 광주대교구청 공동체가 윤 대주교의 주교성성 60주년을 축하하는 꽃다발을 전달했고, 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와 여성위원회가 예물을 전달했다.

또, 성바오로딸수도회 소속 수녀들이 축가를 부르며 윤 대주교의 주교성성 60주년을 축하했다.

김희중 대주교는 축사에서 “윤 대주교는 언제나 사제들에게 아주 자상하고 정감있게 대해주신 분이다”며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편안한 나날을 보내길 바라고 기도드린다”고 밝혔다.

윤 대주교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예수님 말씀처럼 하느님을 믿고 서로 사랑하면 좋을 것 같다”면서 “하느님의 뜻대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언제나 기쁜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가자”고 말했다.

1924년 11월 8일 평안남도 진남포시 용정리에서 4남 1녀 가운데 셋째 아들로 태어난 윤공희 대주교는 1946년 3월 함경남도 덕원신학교에서 철학과와 신학과를 마치고 부제가 됐다.

이후 1950년, 초대 원주교구장을 지낸 자신의 신학교 동기이자 세 살 위였던 고(故) 지학순 주교와 함께 월남했다.

서울 가톨릭대학교 전신인 성신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故 노기남 대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아 서울 명동성당에서 보좌신부로 사목했다.

6·25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부산으로 잠시 내려온 윤 대주교는 부산 UN포로수용소에서 종군신부를 맡았고 전쟁이 끝난 1954년에는 부산 가톨릭도서관 부관장을 거쳐 서울 성신중·고등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

이후 1956년 9월 로마 유학길에 올랐던 윤공희 대주교는 로마 울바노대학에서 신학석사학위를,1960년 로마 그레고리안대학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윤 대주교는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총무를 맡았고, 3년 뒤인 1963년 10월 7일 교황청으로부터 수원교구장에 임명된 데 이어, 같은 해 10월 20일 주교품을 받았다.

이후 윤 대주교는 지난 1973년 10월 25일 대주교로 승품됨과 동시에 광주대교구장으로 착좌했으며, 교구장으로 재임할 당시 대외적으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장, 성직주교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한국 천주교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윤 대주교는 광주민중항쟁이 끝난 뒤 당시 서울수도경비사령부에 있던 군종신부의 주선으로 1980년 7월 하순쯤 국보위 위원장이던 전두환씨를 만나 당시 구속됐던 사람들을 모두 사면해 줄 것을 요청했다.

아울러 김 추기경과 사면에 대한 논의 결과 자신이 직접 건의하겠다며 1981년 4월 1일 대통령이 된 전두환을 만나 사형수에 대한 사면을 촉구했다.

윤 대주교는 1981년 5월 10일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광주대교구 사제단이 공동으로 주례한 가운데 광주학살의 진상을 알리는 미사를 봉헌하는 등, 5월 항쟁이 끝난 뒤에도 광주의 아픔과 진실을 알리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후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 방문을 이끌어 냈고, 광주대교구장에 취임한지 27년만인 지난 2000년 11월 30일 교구장에서 물러났으며 올해로 주교성성 60주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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