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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파사가 요즘도 있어?” 가전제품 고쳐쓰면 벌어지는 놀라운 일 [지구, 뭐래?]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전파사. 주소현 기자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요즘 전자제품 고치려면 어디로 가야되지?”

고치고 아껴 쓰기보다는 ‘신상’을 사 쓰는 시대. 새 전자제품에 자리를 내주고 밀려난 헌 전자제품과 함께 전파사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렇게 쉽게 버리는 전자제품들이 모아두면 1년 만에 만리장성의 크기를 넘어선다. 쏟아지는 전자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수리다.

이에 소비자들이 저렴하고 손쉬운 경로로 수리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사업 모델도 등장했다. 소셜벤처 인라이튼이다.

2018년 전자제품 수리 공간 '리페어카페'에서 선풍기를 고치는 모습. [인라이튼 제공]

23일 서울환경연합의 ‘수리할 권리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신기용 인라이튼 대표는 “전파사를 현대화하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며 “기존의 장인 한 분 한 분들을 섭외해 수리 공정을 양산화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이전보다 전파사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고,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장인들이 있다는 데 착안했다. 이들의 기술력을 발굴하고 현대화된 체계를 더해 믿고 맡길 수 있는 수리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게 신기용 대표의 포부다.

인라이튼의 전자제품 전문 수리 서비스는 비대면으로 진행된다. 소비자는 편의성을 높이고 인라이튼은 수익성을 높이면서 전국 단위로 확장하기 위해서다.

소비자는 고치려는 전자제품의 모델명을 등록하고 이용료를 결제하면 완충재가 든 상자를 받게 된다. 망가진 전자제품을 보내고 수리된 제품을 받으면 끝이다.

23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서울환경연합이 주최로 열린 ‘수리할 권리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신기용 인라이튼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주소현 기자

전자제품 수리의 생명은 신뢰라는 게 신기용 대표의 지론이다. 신기용 대표는 “전자제품 등은 대부분 고가 제품이니 수리를 해서 쓰시려는 건데 분실과 파손부터 부품을 갈아끼우지 않는지 걱정하시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인라이튼은 전자제품이 든 상자를 열고 다시 보내기까지 과정을 영상으로도 제공한다.

이외에 인라이튼은 일상 속에서 수리 편의를 높이는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시와 함꼐 개발한 ‘리페어맵’(수리지도)이 있다. 서울 시내 2600여개의 수리점을 가전제품부터 컴퓨터 잡화까지 제품군 별로 정리했다.

또 유럽의 ‘리페어카페’를 본따 수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원래는 수리할 수 있는 공구들을 구비해놓는 공공 커뮤니티인데, 인라이튼은 장인들이 현장에서 직접 수리하고 이를 지켜볼 수 있도록 했다. 현재까지 참가 인원은 149명, 제품 수리 성공률은 68%다.

인라이튼이 2017년부터 수리한 전자제품은 10만5000여개로, 서울 전체 가로수의 약 3배(103만2800여 그루)를 심은 것과 같은 효과를 거뒀다고 설명한다. 이는 고장난 청소기 한 대를 버리지 않고 고쳐 쓰면 소나무 9.8그루만큼 이산화탄소(6.6㎏)를 줄였다고 계산한 수치다.

금속 더미와 오래된 전자제품 쓰레기들 [블룸버그]

이처럼 전자제품을 수리해서 써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새로 사서 쓰기 쉬운 탓에 버려지는 전자제품이 너무 많다. 전세계 전자제품의 80% 이상은 버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세계 전자 폐기물 보고서에 따르면 해마다 버려지는 전자 쓰레기는 5740만t으로 만리장성보다 많다. 보고서는 2030년까지 전자 쓰레기가 7700만t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은 그 중에서도 전자 쓰레기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다. 연간 전자쓰레기가 81.8만t 나온다. 이를 나눠보면 1인당 한 해 15.8㎏를 버리는 셈인데 이는 세계 평균(7.3㎏)의 2배 이상이다.

재활용 되는 전자제품은 17.4%에 그친다. 이렇게 버려진 전자 쓰레기들은 무역을 통해 전세계 곳곳을 떠돌고 있는 실정이다.

23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서울환경연합이 주최로 열린 ‘수리할 권리 활성화 방안 토론회’. 주소현 기자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지소영 변호사는 “수리권은 일부러 성능을 낮추는 제조사들의 ‘계획적 진부화’에 대항하는 소비자 주권 운동의 일환으로 미국, 유럽 등에서 법으로 보장하는 추세”라며 “전자 폐기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전자 폐기물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유해 물질들로 인한 건강 상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도 “추상적인 수리권 개념을 구체화할 때 공공성과 기업 주도 서비스의 접점이 생길 수 있다”며 “인라이튼은 전파사가 어떻게 현대적으로 작동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덧붙였다.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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