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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임 경영 하라더니…” 총수 지분투자 막혔다 [비즈360]
[연합]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2일 최태원 SK 회장의 2017년 SK실트론(구 LG실트론) 지분취득이 SK가 최 회장에 대한 사업기회를 제공한 행위에 해당된다며 16억원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이는 공정위가 지배주주의 지분투자에 처음으로 제재를 가한 것으로 ‘합리적 사유’ 전제시 허용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의 기준이 모호해 향후 총수들이 책임경영 일환으로 벌여왔던 투자참여 관행이 사실상 사라질 것이란 관측이다.

이번 실트론 논란의 핵심 쟁점은 지배주주의 소수지분투자를 공정거래법상 금지하고 있는 사업기회 제공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공정거래법(제23조)은 특수관계인에 ‘회사가 직접 또는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회사를 통하여 수행할 경우 회사에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그동안 공정위는 총수가 계열사 설립으로 일감 몰아주기를 하는 행위 등을 사업기회 제공으로 문제 삼아왔다.

그러나 이번엔 SK가 실트론 인수 당시 잔여 지분(29.4%)까지 모두 인수하지 않았고, 이를 최 회장이 매입했는데 이 과정을 사업기회 제공으로 해석할 수 있는 지가 관건이었다. 공정위는 지배주주가 소수 지분을 취득할 수 있으나 SK가 이에 대해 이사회 등 적법 절차를 밟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사업기회를 제공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공정위의 근거 법령은 상법 397조 2항(회사의 기회 및 자산의 유용 금지)이다. 여기에는 이사가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거나 회사의 정보를 이용한 사업기회 또는 회사가 수행하고 있거나 수행할 사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업기회 등을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선 안된다고 명시돼 있다. 단, 이사 3분의 2 이상의 승인이 이뤄진 경우 허용하도록 했다. 따라서 공정위는 SK가 회사·이사 간 이익충돌 사안임에도 상법상 요건을 준수하지 않는 절차적 흠결을 나타내 결과적으로 합리성을 결여했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SK는 앞서 추가 지분(19.6%) 인수시 KTB사모펀드 측과 맺은 계약상 최 회장 매입 지분은 원천적으로 취득이 불가했기 때문에 애초 이익충돌 사안이 될 수 없었단 입장이다. SK는 KTB와의 양해각서상 거래 종결 전 지분 추가 매수가 금지돼 있으며, 위반시 매매대금의 40%인 676억원의 가량의 위약금을 물어야 했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자동으로 이사회 개최 의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지분 미인수과 같이 회사 이익에 중대 영향을 줄 수 있는 부작위(不作爲) 결정도 결정권자가 의결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를 확대 적용할 경우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온 매물과 관련된 모든 회사들이 미인수 결정을 위한 이사회를 개최해야 할 수도 있다.

공정위는 이번 결론으로 대주주나 경영진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인수 참여에 대한 합리적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사회와 같은 적법한 기관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은 상황에서 이사들이 충실의무에 기초, 합리적 판단을 내릴 경우에 특수관계인의 참여가 합리적 경영판단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보의 충분성, 이사 의무의 충실성, 판단의 합리성 등에 대한 기준이 구체적이지 않아 그동안 ▷책임경영 실현 ▷외부 투자유치 ▷우호지분 확보 ▷경영난 극복 등의 목적으로 총수가 참여해왔던 지분투자 관행이 자취를 감출 수 있단 우려가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지배주주 투자 참여에 대한 공정위의 가이드라인이 나온 상태에서 법률자문시 확실하게 공정위 제재를 빗겨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려 총수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직접 투자에 나설 일은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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