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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눈썹 떨림까지...관객이 느끼는게 신기해요”
팬데믹도 잊은 ‘다작아이콘’ 뮤지컬 배우 김려원
검증된 노래실력·탄탄한 연기력·끊임없는 노력
‘베르나르다 알바’ ‘헤드윅’ 등 올해 벌써 네 작품
화장실을 가는 시간 제외하면 오로지 ‘연습’
진정성 있는 캐릭터는 철저한 고민·연구의 산물
“암투병 후 돌아온 무대...소중함 더 커졌죠”
뮤지컬 배우 김려원은 팬데믹도 비껴간 다작의 아이콘이다. 올해에만 벌써 네 작품. 뮤지컬 ‘헤드윅’으로 관객과 만나는 중에도 가수로서 한 달에 한 번 ‘연작 시리즈’인 싱글 앨범을 내고 있다. [스튜디오 더존 제공]

‘가수들의 코러스’처럼 무대 한켠에 섰다. 가죽 재킷에 더벅하게 자란 수염, 로커처럼 길게 늘어뜨린 머리.... ‘인종 청소’의 비극에서 살아남은 ‘헤드윅’ 속 드랙퀸 이츠학. 단정한 눈매엔 인내와 분노가 담겨 또다시 낯선 얼굴이 된다.

“‘헤드윅’만 보기에도 정신없는 작품에서 이 역할이 왜 필요한지 고민했어요. 이츠학을 ‘헤드윅의 거울’이라고 생각했어요. 너무나 밝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헤드윅의 어둡고 무거운 이면이었던 거죠.”

무대 위의 김려원은 가면무도회의 주인공이다. 가면 뒤의 얼굴을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매순간 다른 사람이 된다. 때론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 ‘헤드윅’ 이츠학)였고, 거칠지만 마음은 따뜻한 선장( ‘해적’ 잭)이었다가 승부욕 넘치는 검투사( ‘해적’ 메리)가 됐다. 가난하지만 용기와 정의( ‘관부연락선’ 홍석주)를 품었고, 다가올 불행을 부정하며 썩은 동아줄을 붙든 채 정해진 운명( ‘베르나르다 알바’ 앙구스티아스)을 받아들였다. 한 해가 가기도 전에 벌써 네 편째. 팬데믹도 비껴간 ‘다작의 아이콘’이다. “놀러가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더 좋다”는 그는 “3일 이상은 못 쉬는 것 같다”며 웃었다. 뮤지컬 ‘헤드윅’으로 관객과 만나는 중에도 가수로서 한 달에 한 번 ‘연작 시리즈’인 싱글 앨범을 내며 바쁜 날들을 이어가고 있는 김려원을 만났다.

뮤지컬 배우로의 데뷔가 이른 편은 아니었다. “가수를 준비하다 어그러지고”, 뒤늦게 무대에서 날개를 폈다. 2014년 ‘셜록홈즈’가 데뷔 무대. 그 무렵 가수로서도 첫 앨범(2013년 ‘사랑’)을 냈다. 게으름을 부릴 줄 몰라 쉼 없이 달리니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됐다. 스스로는 “늘 열심히 했는데 작년부터 주목받는 작품을 많이 하게 됐다”고 말한다. 지난 한 해만 해도 ‘미스트’를 시작으로 ‘리지’ ‘난설’ ‘머더 발라드’ ‘호프’까지 다섯 작품. 검증된 노래 실력, 탄탄한 드라마를 풀어낼 연기력을 갖춰야만 설 수 있는 작품에 연이어 올랐다.

“사실 전,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슬럼프가 와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과 캐릭터는 높은데, 연습이 안 돼 있어 거기까지 닿지 않으니까요. 그 때마다 못해내면 어떻게 하지, 안 될 것 같은데 괜찮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연습을 많이 해요.”

김려원은 자타공인 ‘연습벌레’다. 동료 배우들은 우스갯소리로 “짜증난다”고 할 정도다. 개막 전 8주간 짜여진 연습은 기본. 매일 공연 전엔 처음부터 끝까지 대사를 다시 해본다. 쉬는 시간도 없다. 화장실을 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오로지 연습이다. 만족하지 못해 끊임없이 채찍질을 한다. 스스로는 스트레스의 크기만큼 성장했다고 믿는다. “때론 두려울 때가 있어요. 무대에서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고 깜깜해지는 거예요. 그런 순간에도 입에서 대사와 노래가 튀어나올 때까지 하는 거예요.”

혀를 내두를 만큼의 연습이 쌓인 캐릭터는 철저한 ‘고민의 산물’이다. “늘 고민을 많이 하고, 깊이 연구하려고 해요. 어떤 캐릭터를 만났을 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이해하는 과정이에요. 한 인물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진정성을 가질 수 있으려면 저부터 이해해야 하니까요.”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되묻는다. “제 자신을 대입해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게 돼요. 낯선 캐릭터도 제가 가진 모습의 일부를 증폭시키는 거니까요. 누군가를 흉내 내선 절대로 두 시간을 속일 수는 없으니까요.”

작고 사소한 행동 하나, 말투와 표정까지 연구를 거듭한다. “어떻게 해야 진짜처럼 보일까,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보일까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감정이 오고갈 때 드러나는 속눈썹의 떨림, 무대 위에서 헤매기 마련인 손끝조차 김려원에겐 훌륭한 도구다. 관객들도 무대를 통해 그 감정을 오롯이 전달 받는다. “피드백이 많이 오더라고요. 공연이 끝나면 ‘이 장면에서 혹시 이런 걸 표현하고 싶었던 거냐’고 물어보기도 하시고요. 제가 표현했던 대로 느껴 주시는게 너무 신기해요. 역시 해이해지면 안 되는 거구나 싶어요. 누군가 한 분은 반드시 보고 계시니까요.”

모든 무대가 소중하고 귀하다는 마음은 2019년 암 투병을 하면서 더 커졌다. 그 해 11월 말, 수술을 받은 뒤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며 무대에 올랐다. “아침에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돌아와 연습하고, 공연하는 생활을 이어갔어요. 그때는 아프다는 말을 못했어요.” 김려원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무대에 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다들 걱정하기도 했고, 아프다고 하면 써주지 않을까봐 불안하기도 했어요. 이렇게 공연을 못 하는 건가 싶어 마음이 힘들더라고요. 그 시기를 지나며 내가 이 일을 너무 집착적으로 좋아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비가 내린 만큼 김려원이 딛고 선 땅은 더 단단해졌다. 건강을 찾고 다시 무대에 오르며 자신의 이야기를 더 많이 꺼낼 수 있게 됐다. 그가 바라는 것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 “언제든 마음껏 추천할 수 있는 배우”를 꿈 꾼다. 씩씩하고 치열한 시간들을 보내온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밝게 빛나던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그렇게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음, 제가 만약 저라는 사람의 친구라면, ‘최선을 다했고 충분히 잘 하고 있어. 넌 대단해.’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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