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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토벤은 알면 알수록 자유로워져요”‘60년 내공’ 루돌프 부흐빈더가 왔다
예술의전당서 19~20일 내한공연
비창·월광 등 인기 소나타 5곡
디아벨리 변주곡 2020버전 무대에
현존하는 최고의 ‘베토벤 스페셜리스트’인 루돌프 부흐빈더가 2년 만에 한국을 찾아 네 번의 연주회로 한국 관객과 만난다. [빈체로 제공]

베토벤과 처음 만난 것은 유년 시절이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체코. 전쟁의 상흔이 도처에 남아있던 그 시절 루돌프 부흐빈더는 가난했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집에는 작은 피아노와 라디오, 베토벤의 악보가 있었어요. 검은색과 흰색 건반의 악기가 자석처럼 저를 끌어당겼죠. 덕분에 다섯 살 때 빈 국립음대에 입학할 수 있었어요.” 일흔을 넘긴 거장 피아니스트의 깊은 눈이 잠시 여행을 떠나더니 이윽고 그를 피아노 앞으로 이끌었다. “그때는 이런 곡을 연주했어요.” 맑고 영롱한 소리는 부흐빈더의 유년기로 시계를 되돌렸다. 그의 눈은 다시 아이처럼 장난기가 가득했다. 지금도 깨지지 않는 역대 최연소 빈 국립음대의 입학. ‘천재’ 피아니스트의 삶에 베토벤은 운명이고, 숙명이었다.

“열한 살에 처음 베토벤을 연주한 이후 베토벤은 제 인생의 중심이었어요. 한평생 연주해도 질리거나 싫증 나지 않았어요. 베토벤의 음악에선 항상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요.”

현존하는 최고의 ‘베토벤 스페셜리스트’인 거장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75)가 다시 베토벤으로 찾아왔다. 60년이 넘는 활동기간 동안 베토벤 소나타 32곡 전곡을 수차례 녹음했고, 베토벤 소나타로 50회 이상 연주회를 선보여왔다. 부흐빈더는 2년 만에 찾은 한국에서 모두 네 번의 연주회(19,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21일 대전예술의전당, 24일 대구콘서트하우스)를 갖는다. 이번 연주회는 당초 지난해 예정됐으나, 코로나19로 미뤄졌다. ‘지한파’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한 그는 최근 서울 서초동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문화적으로 발전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이런 특별한 관객은 만나기 어렵다”며 연주회를 앞둔 기대감을 전했다.

누구보다 이른 대학 생활을 시작한 부흐빈더는 학구적인 연주자였다. 그는 “어렸을 땐 생각의 폭이 좁았다”며 “유연하지도 않았고, 참을성도 없었고, 한 분야만 추구하는게 익숙했다”고 말했다.

“처음 베토벤의 곡을 연주할 땐 의미 없이 연습을 시작했어요. 사실 베토벤의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에요. 기본기가 쌓인 후에야 변주를 할 수 있죠. 그 시절엔 군인이나 학자처럼 모든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려 했어요. 변주를 하기까진 40년의 시간이 걸렸어요.”

60년 넘게 베토벤과 함께 해온 음악의 삶에서 거장이 발견한 것은 ‘자유로움’이었다. 그는 “베토벤의 음악은 로맨틱하면서도 혁명적”이고, “작품 안에서 속도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작곡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의 음악은 피아노 연주자에게 자유를 선사한다. 이것이 베토벤 연주자가 배워야 할 점”이라고 말했다.

“베토벤은 32개의 소나타를 통해 사랑, 분노, 슬픔 등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녹여냈어요. 각 소나타에 담긴 온갖 감정을 통해 당시 베토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어요.”

이번 내한 무대에서 그는 8번 ‘비창’, 14번 ‘월광’, 21번 ‘발트슈타인’ 등 한국인이 좋아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5곡과 디아벨리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디아벨리 프로젝트는 부흐빈더가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DG)에 합류한 뒤, 지난해 3월 선보인 앨범이다. 앨범에는 세계적인 작곡가 11명이 참여, 베토벤 디아벨리 변주곡을 2020년 버전으로 선보였다. “1973년 열세 살의 나이에 50여명의 연주자와 함께 연주하며 다른 스타일을 배운” 그는 “그 때부터 호기심을 가지고 고민과 연구를 거듭해 지금의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사람들이 저의 베토벤 연주에 대해 자유로워졌다고 표현해요. 저도 동의하고요. 나이가 들수록, 베토벤에 대해 더욱 연구하고 알아갈수록 제가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껴요. 바로 그 감정이 제 해석에 변화를 주기도 하고요. 베토벤이라는 한 예술가는 제게 음악뿐 아니라 인생의 여유와 자유를 선물처럼 안겨준 것 같습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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