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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용버들로 생각해보는 ‘투기’의 기준[촉!]
용버들, 꽃꽂이·사방용으로 사용되는 나무
전문가들 “나무 식재 보상금 낮아” vs “이식비 기준 높아질수도 있어”
상품성 없는 용버들, 보상 시 가격 상승 노리고 심었다면 투기라 생각
용버들. 김지헌 기자/raw@heraldcorp.com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용버들을 관상수(보는 즐거움을 위해 키우는 나무)로 거래해 본 적이 없어요. 꽃꽂이용 소재로 활용하기 위해 매매하거나, 흙이 떠밀려 내려오는 걸 막기 위해 대량으로 심는 것은 봤죠. 그러나 그걸 ‘보는 즐거움’을 위해 키우는 경우는 못 봤죠.”

경기도에서 원예사업을 크게 하는 다섯 분에게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의혹을 받는 토지에 심어진 나무 사진을 지난주 금요일이었던 지난 5일 보여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들이 “토지에 심어진 것은 용버들”이라며 “관상수로서 가치가 떨어지는 나무”는 생각하지도 못한 답변을 하셨죠.

저렴한 꽃꽂이 소재로 꾸준히 사용되거나 흙이 떠밀려 내려올 때 대량으로 심는 나무라 ‘희귀한 수종’이라고 표현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냥 “관상수로는 거래가 잘 안 되는 수종”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하셨죠.

처음에는 무척 당혹스러웠습니다. 용버들의 가치가 없다고 해 버리면 왠지 이 땅을 매입한 LH 직원들의 ‘투기성’을 입증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괜히 애먼 사람들을 투기꾼이라며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들었죠. ‘토지 투기를 하는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함인데, 그러면 돈 주고 심은 나무도 비싸게 팔 수 있는 수종이어야 돈을 버는 것 아닐까’라고 초기에는 생각했습니다.

쉽게 말해 ‘나무의 가치가 높을수록 토지 보상비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사태를 바라보려 했던 것이죠.

그런데 ‘나무의 가치가 높을수록 토지 보상비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을 전제로 생각하면 할수록, LH 직원의 토지 매입이 ‘투기’라고 결론 내리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혹 토지 중 절반가량에 용버들이 심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작정 부동산 전문 변호사·감정평가사·행정사 분들에게 전화를 돌렸습니다. “상품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나무를 심는 것이 혹시 토지 보상에 유리한 점이 있느냐”는 것이 제 질문이었고, 사실 대부분의 변호사와 감정평가사 분은 딱히 유리한 부분이 없다는 설명을 내놨습니다.

그분들은 모두 “우리는 토지 보상 규정과 원칙대로 업무를 진행한다. 나무의 ‘(취득)가격’과 ‘이식비(나무를 파서 운반해서 다시 심는 비용)’, 이 둘을 비교해 낮은 가격으로 보상한다”는 말씀을 반복했습니다. ‘심은 나무’를 따지지 말고 ‘땅의 크기’를 보라고 조언하는 분도 있었죠.

“뭘 심었는지는 따지지 말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땅의 가격에 비해 나무의 가격이나 이식비는 매우 작은 규모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의구심은 남았습니다. 현장을 둘러보면 투기 의혹이 제기된 직원들이 치밀한 계획 하에 나무를 심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용버들 한 수종만을, 그렇게 넓은 영역에 30㎝가 채 안 되는 간격으로 빼곡히 일관되게 심어 놓을 이유가 과연 있을까요. 그게 돈이 안 된다면 말입니다.

그러다 문득 토지 수용 업무를 주로 하는 행정사 몇 분과 대화를 하게 됐습니다. 그분들로부터 규정과 다른 실무상 관행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엄청나게 큰 나무들은 이식비가 너무 많이 들어 오히려 그보다는 저렴한 나무 가격으로 보상하지만, 가정 내 작은 미루나무 한 그루는 주민 협의를 통해 이식비 수준으로 보상해 주기도 한다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죠. 용버들 역시 가치가 낮아 협의 과정에서 이식비 수준으로 보상이 진행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물론 어떤 토지 보상 관행이 ‘진짜’인지는 아직으로는 명확히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토지 보상은 규정대로 이뤄진다”고 말씀하시는 분들과 “보상 관행이 따로 있다”고 하시는 분들로 갈리기 때문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번 논란을 계기로 신도시 토지 보상 규정과 관련 실무에 어떤 빈틈이 있었는지 되짚어 보는 계기로 만드는 것이겠죠.

저는 “상품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용버들이 정말로 이식비 수준으로 보상될 수 있다는 것”을 LH 직원들이 알고 있었다면, 이는 ‘투기’로 볼 여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투기란 무엇이냐’, 이 질문은 저 같은 비전문가에게는 참 어렵게 다가오는데요. 저는 보통의 ‘투자 원론 책’에 나오는 말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어떤 한 자산이 창출하는 ‘본래 가치’보다 매우 높은 ‘거래 가치’를 기대하고 시세차익을 노린다면 투기라고 볼 수 있단 얘기죠.

비트코인 매입이 투기라고 하는 분들 중 상당수는 비트코인에 내재된 가치가 무엇인지를 물으며 가격이 너무 높다고 합니다. 코스닥 기업 투자가 투기라고 하는 분들은 기업의 본래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영업이익보다 거래 가격이 너무 높다는 점을 근거로 들죠.

이런 논리가 용버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상수 상품 시장에선 낮은 가격으로 매매되는 용버들이 토지 보상이라는 세계로 넘어오니 마법처럼 가격이 높아져 차익을 소유주에게 안긴다면 이건 투기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죠.

그저 다만 투기와 관련해 한국의 용버들이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일은 없길 바라봅니다.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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