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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플러스] 돈에도 ‘책임’이 따른다…떠오르는 ESG
2006년 ‘사회책임투자원칙’(PRI) 발표 후 본격화
호주 산불·디젤게이트 등 비재무적 요소로 인한 기업 활동 영향 관심 커져
미국 ESG투자 급성장…밀레니얼세대는 투자시 ESG 적극 수용
ESG투자 성과 평가 기준 불분명…뚜렷한 성과 유불리 판단 아직 일러

[헤럴드경제=김우영 기자] 2018년 노벨경제학상이 윌리엄 노드하우스 예일대 교수에 돌아간 것은 환경과 경제성장이라는, 언뜻 동떨어져 있으며 심지어 서로 배치된 것으로 일반에게 여겨져온 두 분야를 이제부터 한 자리에 놓고 보자는 전 세계적인 선언이었다. 그는 1970년대부터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로 인한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제성장을 경계했으며 ‘탄소세’처럼 적극적인 정책수단을 주문했다.

각 나라들이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을 강화하고 청정에너지 비중을 높이려는 시도가 꼭 노드하우스 교수의 외침 때문은 아닐 것이다. 거리에 전기차가 하나 둘씩 늘어가고,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고를 때 동물복지나 친환경 원료를 쓴 제품에 먼저 손이 가는 것 역시 노드하우스 교수의 가르침에 따른 것일 순 없다.

다만 테슬라 시가총액이 제너럴모터스(GM)과 포드를 압도하고, 대형 투자은행들이 석탄회사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고, 노동자들은 ‘올바른’ 기업에서 일하고 싶다고 외치는 현상이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그만큼 환경과 경제가 하나의 굴레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후 그 굴레를 돌려온 투자의 세계에도 환경과 사회적 책임은 주요 고려요소로 자리잡았다.

루마니아 환경운동가가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주장하기 위해 옛 군용마스크를 쓴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EPA]

▶짧은 역사, 큰 투자 = 환경(Environment), 사회 (Social) 그리고 지배구조(Governance)가 우수한 기업에 투자하는 ESG투자의 역사는 2000년대 초반 나타나기 시작해 2006년 4월 기념비적 선언을 기점으로 자리매김에 성공했다. 당시 UN사무총장인 코피 아난과 글로벌 주요 연기금은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사회책임투자원칙(PRI)’를 발표했다.

이후 기관투자자의 책무로 책임투자의 개념이 도입됐고 재무적 요소뿐 아니라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 같은 비재무적 요소도 중요하게 고려해 지속가능하고 사회책임을 지는 투자를 하는 펀드들도 잇달아 들어섰다. 2012년 11조달러 규모였던 ESG투자 자산은 매년 30%가량 급증해 2018년 기준 30조7000억달러까지 성장했다.

이 흐름을 이끄는 지역은 단연 유럽이다. 유럽의 ESG투자 규모는 2016년 12조달러에서 2018년 14조달러로 늘었다. 특히 북유럽 국가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부펀드 운용에 ESG를 중시하면서 ESG투자를 퍼뜨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노르웨이다. 운용자산이 1조달러에 달하는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는 도박이나 무기, 담배 등 사회적 논란이 되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지난해 3월에는 원유나 가스 탐사와 개발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기로 했다. 노르웨이 최대 개인연금운용사인 KLP의 자넷 버간 책임투자부 대표는 앞서 지난해 본지와 서면인터뷰에서 화석연료 관련 매출이 5%이상인 기업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했다면서 “ESG원칙을 고수하는 건 기업의 윤리적 책임을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공포 영화 ‘그것’의 광대 ‘페니 와이즈’로 묘사한 풍자 인형과 그 앞에 노란 우비를 입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인형. 이들 인형은 오는 24일 독일 쾰른, 뒤셀도르프 등 독일의 ‘로즈먼데이’ 행사 퍼레이드에 등장할 예정이다.[EPA]

▶달라진 사람들, 실행하는 투자 = ‘글로벌 지속가능투자 연합’(GSIA)에 따르면 2012년만해도 ESG투자에서 개인투자자 비중은 10%남짓에 불과했지만 2018년에는 25%가지 확대됐다. 캘리포니아와 호주 산불, 그리고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 등을 지켜보면서 ESG가 기관투자자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하나의 투자 원칙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가장 뚜렷하게 변화가 감지되는 곳은 미국이다. 주주 자본주의를 선도해온 미국은 유럽에 비해 ESG투자가 늦게 출발했으며 규모 면에서도 아직은 작다. 하지만 2016년 8조7000억달러에서 2018년 12조달러로, 성장률 측면에서는 어느 지역보다 두드러진다. 2014년 단 3개에 불과하던 ESG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는 지난달 현재 58개로 늘었다.

이 같은 성장세는 중심 세대가 성장할 수록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자산운용사 레그메이슨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침묵세대’로 불리는 69세 이상 미국인 가운데 투자시 ESG를 감안한다고 답한 비율은 34%에 불과했지만 2000년을 전후해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그보다 조금 앞선 ‘X세대’의 경우 이 비율이 각각 66%, 65%로 올라간다. 모건스탠리 조사에서도 밀레니얼 세대의 75%가 자신들의 투자 행태가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해, 개인의 가치나 사회적 이익을 중시하는 성향을 투자 영역에서도 드러냈다.

자산운용사와 투자은행들은 발빠르게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블랙록은 화석연료 관련 매출이 전체의 25%를 넘는 기업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으며 ESG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현재 2배 수준인 150개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MSCI는 전세계적으로 ESG기준에 맞춰 자산배분 및 자산가격 재산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노동자들도 행동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투자자와 고객뿐 아니라 직원들도 기업들에게 기후 변화 대응에 동참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우수 인력 구하기 경쟁이 치열한 기술산업(IT)에서 이 같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더욱 적극적이다. 애플이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기로 한 것, 마이크로소프트(MS)가 2030년까지 완전 ‘탄소배출 네거티브’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것 모두 직원들의 요구 때문이라고 WSJ은 설명했다.

그런가하면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100억달러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기로 했다. CNBC방송은 베이조스의 선언에 대해 “(트럭과 화물선에 의존한) 아마존의 배송 업무가 글로벌 탄소배출을 늘리고 있다는 비판에 대응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앞서 아마존 직원들은 ‘기후 정의를 위한 아마존 직원들’이란 조직을 만들어 회사를 압박, 마침내 2030년까지 100% 재생 가능한 전기로만 사업을 운영한다는 ‘기후 서약’ 프로젝트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제이슨 윈가드 컬럼비아대 직업교육 단과대 학과장은 WSJ에 “어디서 돈만 잘 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며 “고용주에게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당신은 무엇을 지지하는가?’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시작돼 무려 6개월을 이어온 호주 산불이 최근 마침내 진화됐다. 이번 산불로 최소 33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야생동물도 10억 마리 이상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산불이 전 지구적 환경 재앙으로 떠오르면서 산불의 원인이 된 기후변화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EPA]

▶봉사, 희생 아닌 투자로서의 ESG…수익률이 관건 = ESG가 규범을 넘어 투자의 당위가 되기 위해선 수익률로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ESG투자가 기존 투자 방법론에 비해 더 우수한 수익률을 내는지, 적어도 시장 전체보다 뒤떨어진 수익률은 내지 않는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은 아직 없다. 짧은 ESG투자 역사 탓도 있지만 포괄적인 ESG투자 범주에서 구체적인 투자를 발라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16년 기준 ESG를 평가하는 기관은 125개나 된다. 이들 기관별로 ESG점수를 산출하는 기준도 다르고, ESG 관련 펀드가 기업을 골라내는 기준도 제각각이다. 군수산업이나 담배 회사 같은 특정 부문이나 기업을 투자 목록에서 아예 제외하는 방식도 있고 녹색기술, 청정에너지 관련 기술 기업을 찾아내 투자하기도 한다.

글로벌 펀드평가사 모닝스타는 ESG펀드의 65%가 각 유형별 수익률 상위 50% 안에 있다고 밝혔다. 모건스탠리는 ESG펀드가 경기하강기 일반 펀드보다 우수한 성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특히 2001년 엔론 사태, 2015년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 등 비재무적 리스크에 따른 개별 기업 주가의 폭락은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ESG의 중요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미국 대형 ESG펀드 중 9개의 수익률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 상승률을 크게 웃돌았다고 밝혔다. 브라운투자자문사를 운영하는 캐러나 펑크는 블룸버그에 “ESG로 투자해 수익을 희생시키는 것 아니냐는 질문은 더 이상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는 지난해 9월 ‘글로벌 투자지속성 보고서(GLOBAL FINANCIAL STABILITY REPORT)’에서 ESG펀드 성과가 그렇지 않은 다른 펀드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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