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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표일에도 출근하라? 사장님 미워요”
중기직장인 37%가 정상근무…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생계형 자영업자도 투표힘들다 하소연


#. 서울 종로구에서 노점상을 운영 중인 지모(40ㆍ여) 씨는 일찌감치 4ㆍ13 총선 투표를 포기했다. 분식류를 판매하는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입장에선 자리를 비우는 시간 만큼 그대로 매출 타격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지하철 통로에서 나오는 출근길 손님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새벽같이 포장마차를 연다는 지 씨는 오전 4시만 되면 일어나 그날 팔 음식 재료를 손질하고 식기 정리에 바쁘다. 지 씨는 “13일에 도저히 투표하러 갈 시간이 나질 않는다”며 “남들 보기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우리에겐 하루벌이가 소중하다”고 했다.

제20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4ㆍ13 총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며 사회 각계각층에서도 막판 투표 독려 운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청년들 사이에선 취업과 학업에
대한 압박, 정치권에 대한 불신 등으로 투표 거부라는 사뭇 대조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12일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제20대 총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생계 문제로 인해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특히 중소기업 근로자의 경우 투표를 통해 참정권을 누리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10명 중 4명 꼴인 37%가 투표일인 13일에 출근하는 것으로 나왔다.

대구지역 한 중소기업을 다닌다는 이모(29ㆍ여) 씨는 “지난주 사장님으로부터 투표일도 어김없이 출근해야한다는 말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공휴일인 만큼 손님을 받아 장사하는 업체 입장에선 대목이라 생각해 일을 더 많이한다”며 “투표 종료 시점인 오후 6시가 넘어서야 일이 끝나다보니 퇴근후 투표는 원래부터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금 사는 집과 직장 간의 거리가 꽤 되다보니 출근 전에 투표를 한다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 같은 참정권 제한을 방지하기 위한 관련 법도 마련돼 있지만 실효성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달린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공직선거법 개정에 따라 지난 2014년 지방선거 이후 투표 시간을 보장해주지 않는 고용주에겐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돼 있지만, 현재까지 실제 고용주에 과태료가 부과된 사례는 ‘0건’이다. 종업원이 고용주에게 투표시간 보장을 청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선관위에 신고하는 방식으로 절차가 돼 있다보니 실효성이 없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자영업자나 영세상공인들의 경우에도 하루하루 매출이나 실적이 결정적으로 생계를 결정할 수 있는 상황에서 생계를 잠시 중단한 채 따로 시간을 내 투표를 한다는 것은 사치라는 입장이다.

서울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백모(48) 씨는 “요즘같은 불경기에 사납금을 맞춰 내고 추가로 돈을 벌어 들어가기 위해서는 새벽같이 나와 해가 질때까지 쉬지않고 택시를 운행해야만 한다”며 “당장 하루벌이가 시급한 상황에서 투표를 하러 가기엔 힘들 것 같다. 그 시간에 투표장 앞에서 기다리다 나오는 손님을 태우는데 집중하겠다”고 했다.

전국 단위 국회의원 선거에서 첫 실시된 ‘사전투표제도’도 중소기업 직원들과 자영업자, 영세상공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말이나 휴일이 무의미한 이들에게 금요일과 토요일이던 지난 8~9일 실시된 사전투표는 그림의 떡이었다는 것이다.

경북지역 소규모 하청업체에서 근무 중인 신모(56) 씨는 “(사전투표는) 출퇴근 시간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어 자신의 일과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에게나 의미가 있지 (나 처럼) 근무 시간이 언제가 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무의미하고, 이는 다른 회사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동료들도 마찬가지”라며 “차라리 총선 당일에 모든 기업이 쉬고 유권자들이 투표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방안이 참정권을 높이는데는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 방안 중에는 투표장 수는 늘리거나 늦게 퇴근하는 사람들을 위해 투표 시간을 연장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며 “이 밖에도 기술의 발달에 따라 인터넷, 모바일 선거 등도 고려해볼 수 있는 대안”이라고 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투표복권이나 투표쿠폰 등의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자영업자나 알바생들과 같은 계층이 투표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동윤ㆍ이원율ㆍ고도예 기자/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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