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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이 없는 조각으로 식민지배 풍자…”
‘흑인 디아스포라’잉카 쇼니바레
英출신 나이지리아계 장애인 예술가
대구미술관서 첫 아시아展

아프리카 전통천 더치왁스 소재
빅토리아풍 왕실 의상 입혀
제국주의·자본과잉 비판 풍자



‘흑인 디아스포라(Diaspora)’를 대표하는 작가 잉카 쇼니바레(53·사진)의 국내 최초, 최대 규모 개인전이 대구미술관에서 5월 30일 개막했다.

대구미술관(관장 김선희)이 매해 1명의 주요한 해외 미술가를 소개하는 ‘해외 특별전’이다. 이번 전시에는 매체를 가리지 않고 작업하는 쇼니바레의 조각, 평면, 설치, 영상 작품 87점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대구미술관은 일본의 쿠사마 야요이(2013), 중국의 장 샤오강(2014)을 해외 특별전을 통해 소개하며 흥행에 성공한 바 있다. 쇼니바레에 이어 2016년 해외 특별전 작가로 안드레아스 거스키, 2017년 나라 요시토모를 확정해 놓은 상태다.

쇼니바레의 예술 세계는 그의 인생역정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196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쇼니바레의 부모님은 나이지리아계 이민자였다. 변호사로 큰 성공을 거둔 아버지는 가족을 이끌고 고향인 나이지리아 라고스로 돌아갔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쇼니바레는 라고스에서 영국식 교육을 받았다. 이후 1978년 영국 유명 사립기숙학교로 유학을 떠난 후 열여덟살이 되던 1980년에 횡단척수염이라는 희귀병으로 불치의 반신불수가 됐다.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쇼니바레는 런던의 바이암셔 미술학교와 골드스미스 미술대학교 졸업, 미술가로서의 길을 걷는다.

영국 현대미술 1세대로 불리는 영브리티시아티스트(Young British Artists) 작가들과 함께 활발한 전시활동을 펼쳤던 쇼니바레는 2002년 ‘카셀 도쿠멘타’를 통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쇼니바레는 ‘더치 왁스(Dutch Wax)’라고 불리는 아프리카 천을 거의 모든 작품에서 주재료로 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 전통 직물로 인식하고 있는 더치 왁스는 실은 인도네시아 전통 면직물인 바틱(Batik)에서 유래한 것으로, 19세기 네덜란드 등 서구 열강에 의해 중서부 아프리카로 옮겨가게 됐다. 

아시아에 뿌리를 뒀지만, 서구인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아프리카 대륙으로 흘러 들어간 더치 왁스에서 작가는 ‘제국주의’ 코드를 읽어냈고, 이를 작품에 쓰기 시작했다. 더치 왁스는 나이지리안이면서 영국에 문화적 뿌리를 둔 쇼니바레의 문화적 이중성, 이중의 정체성과 중첩되는 소재이기도 하다.

목이 절단된 신체 조형물에 무늬와 색채가 화려한 더치 왁스 소재의 빅토리아풍 왕실 의상을 입혀 귀족을 형상화한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제국주의와 식민지배, 그리고 자본의 과잉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에 풍자와 유머를 더했다.

지난 1일 대구미술관에서 만난 쇼니바레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불편한 몸으로도 시종일관 부드럽고 느린 말투로 논리정연하게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철학을 전공한 미술가다웠다.

쇼니바레는 “내 작품은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영국이 아프리카를 식민지 삼아 어떠한 일들을 벌였는지,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어떠한 개인적 영향을 끼쳤는지 작품을 통해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식민지배의 아픈 경험을 갖고 있는 한국인들 역시 내 작품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당신의 작품은 매우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이 때로 작품의 메시지를 압도하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예술이다. 예술은 무엇보다도 아름다움을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건 구조물(Structure)과는 다르다. 오히려 시(Poem)와 더 비슷하다.

▶영국의 식민지배로 인해 작가 개인이 받은 영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나는 영어와 요루바(나이지리아 종족)어 두 개 언어를 쓴다. 나는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인생의 대부분을 영국에서 살았다. 나는 두 개의 문화 속에서 공존해왔다.

▶신체적 장애가 작품에 미치는 영향도 있나.

-큰 그림을 그릴 수 없어 작게 나누어 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시스턴트들을 두고 작업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일이 현대미술에서 놀라운 것은 아니다. 많은 작가들이 어시스턴트를 둔다. 건축가라고 해서 본인이 다하는 건 아니듯이 말이다.

▶제국주의, 자본주의와 같은 주제 말고 다른 주제의 작품을 할 계획이 있나.

-이미 사랑이나 평화를 주제로 하는 긍정적인 작품들도 많다. 향후 내가 무슨 작품을 하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세상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는 앞으로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관심을 갖고 있을 뿐이다. 전시는 10월 18일까지.

대구=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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