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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인 디아스포라’ 잉카 쇼니바레, 분단국가 한반도에 묻다
  [헤럴드경제(대구)=김아미 기자] “나는 요루바(Yorubaㆍ나이지리아 주요 종족) 음악을 들었고, 요루바 드라마를 보았고, 하와이 파이브-오와 같이 미국에서 제작된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보았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코카콜라를 마셨습니다. 아버지는 집에서 내셔널지오그래피, 이코노미스트, 그리고 타임지를 읽으셨습니다. 그것은 모던한 아프리카인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저는 성장했습니다. 제 성장과정에서 전통적인 아프리카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김석모 대구미술관 큐레이터 ‘잉카 쇼니바레 MBE : 문화적 이중성에 대한 우의’ 中>

브리티시 나이지리안(British nigerian) 작가 잉카 쇼니바레 MBE(53)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한 말이다. 흑인 디아스포라(Diaspora)를 대표하는 작가의 문화적 이중성, 이중의 정체성을 함축한 말이기도 하다.

잉카 쇼니바레의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개인전이 대구미술관에서 5월 30일 개막했다. 대구미술관(관장 김선희)이 매해 1명의 주요한 해외 미술가를 소개하는 ‘해외 특별전’에 올해에는 잉카 쇼니바레가 선정됐다. 대구미술관은 일본의 쿠사마 야요이(2013), 중국의 장 샤오강(2014)을 해외 특별전을 통해 소개하며 블록버스터급 흥행에 성공했다.

쇼니바레의 작품은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의 ‘아프리카 나우’전 등 국내에서는 두 차례 그룹전에서 소개된 바 있다. 그러나 이처럼 개인전 형태로 한꺼번의 그의 작품을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국내 뿐만 아니라 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개인전이기도 하다.

매체를 가리지 않고 작업하는 작가의 조각, 평면, 설치, 영상 작품 87점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베를린, 런던, 뉴욕, 홍콩 등에서 그의 작품을 실은 100여개의 크레이트(Crate)가 대구미술관으로 왔다. 런던과 중국에서는 각각 2명의 설치 기술자들이 동원됐다. 대구미술관 설치팀도 12명이나 투입됐다. 


사진= ‘케이크맨(Cake man)’ 시리즈 설치 전경. [사진제공=대구미술관]
사진=설치 전경. [사진제공=대구미술관]

김선희 대구미술관 관장은 “현대 미술사에서 의미있는 중요한 작가들을 런던, 뉴욕, 심지어 서울을 가지 않아도 지방인 대구에서도 볼 수 있도록 좋은 전시를 개최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미술관은 쇼니바레에 이어 2016년 해외 특별전 작가로 안드레아스 거스키, 2017년 나라 요시토모를 확정해 놓은 상태다. 



쇼니바레의 작품은 작가의 인생역정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196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쇼니바레의 부모님은 나이지리아계 이민자로, 1960년 나이지리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자 런던으로 이주했다. 변호사로 큰 성공을 거둔 아버지는 다시 가족을 이끌고 고향인 나이지리아 라고스로 떠났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쇼니바레는 영어로만 이뤄진 영국식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1978년 영국 유명 사립기숙학교로 유학을 떠난 후 열여덟살이 되던 1980년, 횡단척수염이라는 희귀병으로 불치의 반신불수가 된다. 신체적 장애를 정신적으로 딛고 일어선 쇼니바레는 런던의 바이암셔 미술학교와 골드스미스 미술대학교 졸업, 미술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골드스미스를 졸업한 쇼니바레는 영국 현대미술 1세대로 불리는 영브리티시아티스트(Young British Artists) 작가들과 함께 활발한 전시활동을 펼쳐 나갔다. 그런 작가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건 2002년 세계적인 현대미술 전시회인 ‘카셀 도쿠멘타’에서였다. 총감독 오쿠이 엔위저는 쇼니바레에게 대규모 공간을 할애했고, 그의 커미션으로 제작한 ‘용맹과 범죄적 대화’는 세계 미술인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사진=‘하이 티(High tea)’ 설치 전경. [사진제공=대구미술관]
사진= 잉카 쇼니바레 작가. [사진제공=대구미술관]

쇼니바레는 ‘더치 왁스(Dutch Wax)’라고 불리는 아프리카 천을 거의 모든 작품에서 주재료로 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 전통 직물로 인식하고 있는 더치 왁스는 실은 인도네시아 전통 면직물인 바틱(Batik)에서 유래한 것으로, 19세기 네덜란드 등 서구 열강에 의해 중서부 아프리카로 옮겨가게 됐다.

아시아에 뿌리를 두었지만, 서구인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아프리카 대륙으로 흘러 들어간 더치 왁스에서 작가는 ‘제국주의’ 코드를 읽어냈고, 이를 작품에 쓰기 시작했다. 더치 왁스는 나이지리안이면서 영국에 문화적 뿌리를 둔, 흑인 디아스포라 작가 쇼니바레의 정체성과 중첩되는 소재이기도 하다.

목이 절단된 신체 조형물에 무늬와 색채가 화려한 더치 왁스 소재의 빅토리아풍 왕실 의상을 입혀 귀족을 형상화 한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제국주의와 식민지배, 그리고 자본의 과잉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에 풍자와 유머를 더했다.

특히 영국의 아프리카 식민지배를 꼬집은 쇼니바레에게 영국 왕실은 2004년 대영제국의 훈장인 ‘MBE(Member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를 수여하기도 했다.

전시를 기획한 김석모 대구미술관 전시2팀장은 “쇼니바레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한국이라는 정치 사회적 컨텍스트(Context) 안에서도 사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작가라는 확신이 들었다. 전시를 통해 한국 관람객들이 외국 작가의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볼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1일 오후 3시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쇼니바레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불편한 몸으로도 시종일관 부드럽고 느린 말투로 논리정연하게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철학을 전공한 미술가는 여유로운 웃음도 잃지 않았다.

쇼니바레는 “내 작품은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영국이 아프리카를 식민지 삼아 어떠한 일들을 벌였는지,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어떠한 개인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작품을 통해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식민지배의 아픈 경험을 갖고 있는 한국인들 역시 내 작품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당신의 작품은 의미 이전에 매우 아릅답다. 그 아름다움이 때로 작품의 메시지를 압도하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예술이다. 아무리 그 안에 진지한 메시지가 있다고 해도 아름다움을 즐기고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가 예술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이건 구조물(Structure)과는 다르다. 오히려 시(Poem)와 더 비슷하다. 시를 읽거나 들었을 때 받는 이해도나 영감은 사람마다 다르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다 다르게 이해하는 것이 맞다.

영국의 식민지배로 인해 작가 개인이 받은 영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나는 현재 두가지 언어를 쓰고 있다. 영어와 요루바어다. 나는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인생의 대부분을 영국에서 살았다. 두 개의 문화 속에서 공존해왔다. 내 안에 두 개 나라의 문화가 있는 셈이다.

▶신체적 장애가 작품에 미치는 영향도 있나.

-신체적 장애를 갖고 있으니 작품을 만드는 방법이 바뀌었다. 큰 그림을 그릴 수 없어 작게 나누어 그리기 시작했다. 따라서 많은 어시스턴트를 두고 작업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의 도움 없이는 작품을 하기 힘들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일이 현대미술에서 놀라운 것은 아니다. 대형 전시관에 많은 양의 작품을 출품해야 하는 많은 작가들이 어시스턴트를 둔다. 건축가라고 해서 본인이 다하는 건 아니다.

▶식민주의, 자본주의와 같은 주제 말고 다른 주제의 작품을 할 계획이 있나.

-내 작품들이 항상 어둡지만은 않다. 이미 사랑이나 평화를 주제로 하는 긍정적인 작품들도 많다. 향후 내가 무슨 작품을 하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세상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만 나는 앞으로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관심을 갖고 있을 뿐이다.

전시는 10월 18일까지.

amigo@heraldcorp.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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