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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겸재의 산수화를 보노라니 누워서 금강을 유람한 듯 하네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꿈 속에서 금강산 생각 삼십년, 오늘에야 와유(臥遊)로 흡족함을 얻어냈구나.” (동포 김시민ㆍ1681-1747)

“다섯 번 봉래산을 밟고 나니 다리가 피곤하여 쇠약한 몸은 금강산의 신령과 이별하려 하네. 화가의 삼매에 신령이 녹아 들어 있으니 무명 버선 푸른 신 다시 신어 무엇 하랴.” (심연 김창흡ㆍ1653-1722)

겸재 정선의 청풍계. 청풍계는 인왕산 동쪽 기슭의 북쪽에 해당하는 종로구 청운동 52번지 일대의 골짜기를 일컫는 이름이다. 겸재 64세인 1739년 작품이다. 
(견본담채, 133.0×58.8㎝)

18세기 조선의 화선(畵仙) 겸재 정선(1676-1759)이 가을의 금강산 내금강 전경을 한 화폭에 담은 그림을 두고 그의 제자와 스승은 ‘그 곳’을 가지 않아도 간 듯하다며 극찬했다. 이른바 ‘와유(누워서 유람)’의 즐거움이다.

겸재의 ‘풍악내산총람(楓岳內山總覽ㆍ풍악내산을 총괄해 살펴보다)’은 강하면서도 섬세한 필선으로 금강산 암봉들을 마치 수정처럼 묘사한 걸작이다. 산과 계곡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봉우리와 명승 고적에는 이름까지 써놓았다.

 
28세이던 능호관 이인상이 1737~8년경 금강산을 여행한 뒤 외금강의 절경으로 일컬어지는 옥류동을 그린 그림. (지본담채, 34.0×58.5㎝)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에 지명을 표기하면 산수화를 지도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에 당시 화단에서는 기피했다는 것이 미술 관계자의 설명. 그러나 상세한 지명이 표기된 겸재의 ‘대담한’ 풍악내산총람은 금강산 일만이천봉이 한 손바닥에서 펼쳐 보이는 듯 와유의 감흥과 흥취를 물씬 전해준다.

간송(澗松)의 보물들이 대중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이번엔 ‘진경산수화’다.

일제시대 우리문화 지킴이였던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의 문화재급 컬렉션이 ‘간송문화전’이라는 타이틀로 패션ㆍ디자인의 메카이자 서울에서 가장 ‘힙’한 랜드마크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대거 소개되고 있다. 76년동안 성북동 간송미술관 고택 속에 꽁꽁 숨겨뒀던 간송 컬렉션이 지난 3월 대중적인 장소로 바깥나들이를 시작한 이래 대중과의 친밀감을 더욱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 

28세이던 능호관 이인상이 1737~8년경 금강산을 여행한 뒤 외금강의 절경으로 일컬어지는 옥류동을 그린 그림. (지본담채, 34.0×58.5㎝)

1부 ‘간송 전형필’ (3월 21일~6월 15일), 2부 ‘보화각’(7월 2일~9월 28일)에 이은 세번째 간송문화전 주제는 진경산수화다. 14일 개막한 3부 전시는 2015년 5월 10일까지 장장 5개월에 걸쳐 관람객들을 맞이할 예정이다.

양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조선 고유의 진경문화를 이루어 낸 진경시대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간송이 여는 전시라 규모는 방대하고 내용은 조선후기 미술사 교과서를 들여다보는 듯 알차다. 

 
안중식의 탑원도소회지도. 1912년 정월 초하루 밤에 위창 오세창의 탑원에 모여 도소라는 술을 마시며 사악한 기운을 ㅁ물리치고 장수를 기원하던 문인 묵객들의 모임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지본담채, 23.4×35.4㎝)

진경산수화는 국토의 실경을 소재로 그린 조선후기 산수화를 일컫는다. 그 기저엔 조선성리학의 이념적 토대가 자리하고 있다. 인조반정(1623) 이후 문인화가 창강 조속(滄江 趙涑ㆍ1595-1668)에 의해 그 서막이 열렸다.

전시에서는 영조 재위(1724~1776) 진경시대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던 1세대 겸재 정선의 작품을 중심으로 사대부 화가 중심의 2세대 현재 심사정, 이인상, 그리고 화원 화가들이 주축이 된 3세대 단원 김홍도, 고송유수관 이인문 등 시대별 진경산수화의 변천사를 꼼꼼히 톺아볼 수 있다.

특히 울창한 해송(海松) 숲이 먹구름처럼 짙푸르게 묘사된 가운데 고즈넉한 월송정(경북 울진군 월송리 동해변), 비구름 휘감은 오신산(五申山) 수태사(강원도 금화 소재의 절) 골짜기의 삼나무 숲, 광활한 동해바다 한 가운데 관동팔경을 품은 총석정까지, 진경산수를 따라가다 보면 팔도를 유람하는 듯한 흥취에 절로 빠져들게 된다. 

이인문의 총석정. 통천에서 동해변을 따라 동북쪽으로 7㎞ 정도 올라가면 총석정이 있다. 기이한 돌기둥과 창활한 동해바다가 어우러져 관동팔경 중에서도 경치가 빼어나다. (지본담채, 28.2×34.0㎝)

진경산수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백인산 간송미술문화재단 연구실장은 “산수의 경치, 곧 자연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젠가는 귀의해야 할 ‘힐링’의 공간이다. 특히 동양의 산수화는 이미 4세기부터 그 개념을 정립하고 주요 미술 장르로써 자리를 잡아 왔다. 17세기에 들어서나 정착됐던 서양의 풍경화보다 몇세기가 앞서 있는 셈이다. 게다가 한국인들에게는 산수와 풍경에 대한 동경심이 특별하며 그 문화적 유전자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간송재단 측 집계에 따르면 지난 1부와 2부 전시 관람객 수는 25만명이었다. 대관 전시로써는 엄청난 흥행이다. 기간을 대폭 늘린 이번 3부 전시 또한 그 흥행을 이어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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