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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외강내유’ 박영선?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국민 350만명의 서명도, 30여명 야당 의원들의 금식도 무용했다”

지난 7일 여야가 합의해 오는 13일 본회의에서 처리키로 한 세월호 특별법을 두고 정치권에서 나오는 얘기다. 유족들이 요구했던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진상조사위원회는 구성되지 않았다. 야당의 ‘배수진’이었던 ‘야당이 특검 추천권을 가진다’는 조항도 없던 것이 돼버렸다. 출석 증인은 ‘미정’의 영역으로 남았고 유족들을 ‘이기적 집단’으로 내몰았던 대합입학지원은 의결됐다. ‘성역 없는 조사’는 물건너갔다는 비판이 거세다.

7일 이완구ㆍ박영선 여야 원내대표 주례회동의 시작은 첨예했다. 카메라와 기자들이 꽉 들어찬 상태였다. 포문의 시작은 박 원내대표가 열었다. 그는 “듣기 언짢더라도 들어달라”고 말머리를 꺼냈다. 이어 그는 새누리당 측이 카카오톡을 통해 ‘유족들의 요구가 과하다’는 취지의 글을 새누리당 측이 조직적으로 유포했다고 주장했다. 이 원내대표는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장이다. 국회가 마비된다”고 맞받았다. 박 원내대표는 ‘협박하지 말라’고 주장했고, 이 원내대표는 ‘말씀 삼가라’고 했다.

양측 감정은 격해졌다. 이 원내대표는 급기야 ‘말 않으려다가 한다’며 박 대통령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청문회 김기춘 실장의 증인 출석을 약속했다는 박 원내대표의 말에 대해 “대통령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고, 박 원내대표는 “문장이 끊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격해진 상황을 바로 잡느라 새정치연합 김영록 원내수석부대표의 ‘비공개로 하자’는 제안에 대해 이 원내대표는 ‘원내 수석은 빠지라’고 감정을 섞어 대응했다. 이후 몇차례의 대화가 더 오간 뒤 회의는 비공개로 전환됐다.

공개 석상에서의 첨예한 대립 탓에 이날 합의는 무산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비공개 회의 후 1시간여만에 여야는 합의문을 들고 나왔다. 진상조사위 17명 중에 유족 추천인사 3명이 포함되는 것이 야당측 요구가 반영된 전부였다. 야당의 주장이었던 수사권과 기소권, 그리고 특검 추천권을 야당이 갖는다는 것도 없었다. 예상을 뒤집는 결과였다. 비공개 회의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공개 회의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회의가 진행됐음을 유추키는 어렵지 않다. 보다 어이없는 상황은 여야 원내대표의 합의문 발표 직전이었다. 이 원내대표는 박 원내대표에 악수를 청했지만, 박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다른 질문 없냐’고 받았다. 공개 석상에서 이 원내대표의 악수를 거부한 것이다.

이날 관전 포인트의 핵심은 박 원내대표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 5월 원내대표 선거 당시 모두 발언에서 세월호 사고를 언급하며 울먹여 좌중을 숙연케 했고, 선거 포스터도 유족들의 손을 잡는 흑백 포스터를 사용했다. 최근엔 세월호 특별법이 유병언법, 김영란 법 등 보다 우선한다며 새누리당을 압박해왔다. 그랬던 그가 ‘합의했다’고 꺼내 놓은 세월호 특별법은 기대에 한참 못미치는 것이었다.

상설특검법만 해도 그렇다. 박 원내대표는 ‘제가 법사위원장으로 있으면서 통과시켰던 균형잡힌 법안’이라 설명했지만, 상설특검법은 사실상 누더기 법안이다. 새정치연합이 최초 주장했던 ‘기구 특검’이 새누리당이 주장한 ‘제도 특검’으로 대체 된 것이 현행 상설특검법이다. 특검 발의 요건도 ‘과반’으로 정해 새누리당 안 그대로이다. 박 원내대표의 ‘균형’이 무엇인지 갸우뚱 해지는 대목이다.

이날 여야 합의에 대해 세월호 유족들은 “가족과 국민의 요구를 명백하게 거부한 합의”, “가족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 비판했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위는 “야합을 주도한 이완구 원내대표와 박영선 원내대표 퇴진”을 요구했다. 새정치연합 최민희 의원은 트위터에 “박근혜 대통령이 사라진 7시간을 어떻게 밝혀내나”고 비판했고 은수미 의원은 의원 내부 카톡방에 “아무것도 못 얻었네요”라고 남겼다.

거친 설전과 비공개 회의, 그리고 이 원내대표의 악수 제안을 거부하는 박 원내대표의 일련의 모습에 ‘외강내유’ 단어가 겹친다. 기자들과 카메라 앞에선 강하고, 비공개 회의에선 부드러운 것이 그의 모습 아니었을까. 유족측이 아무 것도 얻은 게 없기에 드는 생각이다.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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