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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콩ㆍ소금 · 물…유기농 장에는 세가지만 있다
[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지난 2004년 국내 최초로 장류부문에서 유기농 인증을 받은 가을향기농장의 된장은 지난 5월 12일 부로 일시 품절됐다. 유기농된장을 맛보려면 새 된장이 출고되는 오는 10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박애경 가을향기농장 사장은 대기업의 납품 제안도 거절하고, 1년에 유기농 메주콩 5톤만 사용해 된장을 만들고 있다.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품절 사태가 벌어지고 있지만 생산량을 더 늘리지 않고 있다. 원재료는 유기농콩, 장을 빚는 것은 전통 방식의 수작업만 고집하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찾아간 경기도 양평군 용천리의 가을향기농장에는 200개가 넘는 장독에서 된장이 익어가며 고소한 향기가 퍼지고 있었다.

■콩ㆍ물ㆍ소금…오직 세가지 재료로 만들어

가을향기농장에서는 매년 정월에 장을 담가 한여름 자연 발효를 거쳐 10월께 시중에 판매한다.

박 사장은 “색소, 보존제 등을 첨가하는 시판 제품과 달리 콩, 물, 소금 딱 세가지로만 된장과 간장을 만들고 있다”며 “기계화하면 대량 생산할 수도 있겠지만 생산량 확대는 배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재료로는 경북 봉화에 있는 배나들농원에서 유기 재배한 메주콩을 매년 5톤 사용한다. 유기농 쥐눈이콩도 매년 1톤가량 사용해 쌈장을 만들고 있다.

2004년 가을향기농장이 처음 유기농 인증을 받을 때 일반콩은 ㎏당 2500원, 유기농콩은 8000원이었다. 된장의 원재료값이 세배가 넘게 차이가 났다. 차츰 유기농콩 생산이 늘면서 일반콩과 유기농콩의 가격 차가 좁혀지고 있지만, 여전히 비싸고 공급량도 많지 않다.

장을 담글 때 사용하는 볏집도 유기농이다. 유기농 볏집 생산을 위해 박 사장이 직접 유기농 인증을 받은 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이처럼 깐깐한 고집으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유기농 인증을 받은 것은 물론 2009년에는 미국 유기인증과 유럽연합 유기인증도 받았다.

과거 스위스의 한 업체로부터 수출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유통 시 보관 등의 어려움으로 국내에서만 판매하고 있다. 생산된 제품은 두레생협과 초록마을을 통해 80%가량 팔려나간다. 온라인과 개별 판매 비중이 20% 정도다. 신세계의 프리미엄 식품관 SSG푸드마켓에서도 소량 판매되고 있다.

고추장도 만들고 있지만 유기농 고춧가루, 유기농 엿기름을 구하기 어려워 생산량이 많지는 않다.

소비자들의 수요는 늘고 있지만 이처럼 소량 생산하다보니 매출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진 않았다. 매출액은 2008년 2억6000만원에서 지난해 3억1000만원으로 20% 가량 증가했다.

억지로 외형을 키우는데 욕심을 내지 않는 박 사장이 한가지 아쉬워하는 것은 정부의 규제다.

“생산량이 정해져있다보니 매출이 더 늘어나기는 어려울 거예요. 대안은 저희가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직접 판매하는 것이죠. 소비자들이 가을향기농장에 와서 장 만드는 것을 체험하고, 장으로 만든 음식을 먹어보고, 제품을 사가면 좋은데 농지법에 묶여 있어 상행위를 할 수 없어요”

지금도 가을향기농장에서 전통 장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지만, 장으로 만든 음식은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

“멀리 해남이나 괴산에서 장 만들기를 체험하러 오는 분들도 계세요. 전통 장을 사용해 음식을 만들려는 요리사들도 오시죠.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갈망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유식에 직접 만든 장을 사용하려는 젊은 엄마 등을 대상으로 한 체험프로그램도 구상 중입니다”

박애경 가을향기농장 사장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양평 유기농 마을의 시초

안정적인 직장인 은행에 다녔던 박 사장은 지난 1997년 남편과 함께 귀농했다. 농약을 치지 않고 직접 호미질해 키운 콩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장을 담근 것이 가을향기농장의 시작이 됐다.

“초창기에는 수중에 단돈 백만원도 없었어요. 비어있는 낡은 농가를 수리해서 네식구가 살았죠. 처음에 고생했던 것은 말로 다 못해요”

유기농이 지금처럼 알려지지 않을 때라 마을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했다.

“벼에 농약을 안 친다고 하니까 ‘정신 빠진 사람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어요. 제초제를 사다주시는 분도 있었죠. 하지만 당시 쌀 가격이 한 가마에 16만원 정도 했는데 저희 남편이 24만원에 파는 걸 보시고는 마을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었죠. 그러다 마을 전체가 유기농사를 지으면서 유기농마을이 조성됐습니다”

당시 박 사장 부부는 마을 사람들이 농사지은 쌀을 친환경 방앗간에 싣고 가 도정하고, 생활협동조합에 대신 팔아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대가로 기름값 한 푼 받지 못해도 보람을 느끼며 살았다.

“경제 논리로만 보면 유기농된장을 만들 이유가 전혀 없어요. 돈 버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겠죠. 남한테 떳떳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하고 있는 일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요”

이처럼 바른 먹거리 만들기에 힘쓰는 박 사장을 보고 미국에서 공부했던 젊은 셰프 임순영씨가 가을향기농장에 입사하기도 했다. 박 사장의 아들도 군대 제대 후 가업을 잇고 있다.

박 사장 부부와 아들은 한국벤처농업대학 선후배 사이기도 하다. 귀농 이후 10년간 세상 밖에 나가지 않고 농사짓기만 몰두했던 부부는 2007년 벤처농업대에 입학했고, 아들은 2011년에 벤처농업대에서 공부했다.

박 사장은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벤처농업대에 입학했는데 큰 변환점이 됐다”며 “다른 농민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100년 숙성 유기농 장 만드는 것이 꿈

지금은 고인이 된 남편 김영환 대표와 박 사장의 꿈은 100년 숙성된 유기농 장을 만드는 것이다. 후대에 100년 묵은 된장을 남겨놓으면, 한국이 명실상부한 된장 종주국이라고 내세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은 오래 묵을수록 좋다”는 말이 있지만 간장의 경우 오랜 시간이 지나면 소금 결정체만 남는다. 실제 모두 휘발된 간장을 보면 주사위 모양의 수정처럼 생겼다. 오래된 간장에는 새로 만든 햇 간장을 더해 보관해야 한다.

박 사장은 “얼마전 유럽에 출장을 가서 유기농업 현장을 둘러보고 왔는데, 한 발사믹 식초 농장에서는 40년된 발사믹 식초 100㎖를 수십만원에 팔고 있었다”며 “오래된 간장을 프리미엄 제품으로 파는 것도 시도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옛날 사람들은 농사를 짓다가 땀을 너무 많이 흘리면 된장이나 간장을 물에 타서 먹었다. 몸 안에서 빠져나간 염분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나트륨 과다 섭취의 주범으로 된장, 간장, 고추장을 꼽으며 멀리 하려고 한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간장은 단맛이 첨가되지 않기 때문에 시판 간장보다 더 짜게 느껴질 수 있어요. 싱겁게 드시고 싶으면 음식에 넣는 양을 조절하면 됩니다. 소비자들이 전통 장을 나트륨 덩어리가 아니라 발효 식품으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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