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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틀대는 고미술 시장…도난품 관리ㆍ감정부실이 ‘찬물’ 끼얹는다
주로 근대 이전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전시와 경매 등 국내 고미술 시장이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도난품이나 진위 논란 등 적지 않은 문제점도 드러내 모처럼 맞은 고미술 시장의 성장 기회를 국내 미술계 스스로 놓쳐 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막을 내린 ‘간송문화전’ 1부 전시는 고미술에 대해 높아진 대중적 관심을 보여줬다. ‘문화재 독립운동가’ 간송 전형필(1906~1962년)의 컬렉션인 ‘훈민정음 해례본‘ 등 국보 8점이 DDP에 전시되면서 성인은 물론 대학생들과 중ㆍ고등학생 단체 손님들까지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간송 측에 따르면 하루 입장객 절반 이상이 10~20대 젊은 층으로 채워졌다. ‘보화각’이라는 주제로 오는 7월 2일부터 시작되는 2부 전시에도 ‘금동산존불감’ 등 국보급 고미술품이 나올 예정이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고미술에 대한 관심은 경매 시장에서 더 뜨겁다. 국내 최대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이 최근 평창동 본사에서 진행한 미술품 경매에서는 불화(佛畵) 4점을 포함한 고미술 작품들을 두고 열띤 경합이 펼쳐졌다. 낙찰총액 42억여원을 기록한 이번 경매에서는 고화, 서예, 불교 미술품 등이 뜨거운 인기를 누렸다. 특히 19세기 조선 후기에 그려진 작자 미상의 ‘곽분양행락도’는 추정가의 3배가 넘는 1억9000만원에 낙찰됐고, 역시 작자 미상의 고화 ‘표도’는 시작가의 8배가 넘는 4200만원에 팔렸다.

고미술 경매전문회사 마이아트옥션에 따르면 올 상반기 경매 낙찰액(30억8000만원)은 이미 지난 한해 총 낙찰액(29억7000만원)을 넘어섰다.

▶고미술 컬렉터들의 세대교체…‘그들만의 리그’에서 ‘우리들의 리그’로=국내 미술계가 최근 고미술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이유는 전시 관람객이나 컬렉터 모두 젊은층들이 부쩍 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특히 고미술 경매 시장을 움직이는 컬렉터들의 연령대가 확 낮아졌다.

최윤석 서울옥션 이사는 “예전에는 60~70대 위주의 오래된 컬렉터들이 고미술품의 주 고객층이었다면 이제는 금융권에 종사하는 40~50대 고객들이 주요 고객층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경매에서 고미술품을 놓고 열띤 경합을 벌인 것도 바로 이러한 고객층이었다는 것이다.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는 “고미술 시장이 활기를 띄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현대미술에 비해 고미술은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 오래된 컬렉터들을 옥션 측과 연결해서 고미술품 거래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32회 서울옥션 경매에서 고미술 가운데 최고가에 낙찰된 작자미상의 ‘곽분양행락도(438.6×176.2㎝)’. 추정가 6000~9000만원에 출품 돼 열띤 경합 끝에 1억9000만원에 낙찰됐다. [사진 제공=서울옥션]

▶도난품이 버젓이 경매 도록에…“검증 어떻게 했길래”=고미술 시장의 활기와 함께 적지 않은 문제점도 노출됐다. 가장 심각한 것이도난품 문제다. 마이아트옥션은 지난달 말 도난문화재를 도록에 내놨다가 곤욕을 치렀다. ‘조선시대 불교 미술 특별경매’에 출품한 작품 18점 중 5점이 도난품 의혹을 받고 압수된 것이다. 조계종 문화부의 신고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나서 영산회상도 2점, 칠성도, 신중도와 목조관음보살좌상까지 총 5점을 압수했다. 최근 옥션 측은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았고 현재 위탁자에 대한 조사가 진행중이다.

이같은 사태가 일어난 것은 국내에 고미술을 검증할 수 있는 공인된 기관과 절차가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미술품을 감정받을 수 있는 기관으로는 한국미술품감정협회, 한국고미술협회, 한국미술감정원 등이 있으나 이들의 업무는 도난품 확인이 아니라 진위 여부 검증과 가격 평가에만 맞춰져 있다. 게다가 이들 모두 사단법인으로 공신력이 약한 편이다. 결국 미술품의 도난 여부 확인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경매사에 있다. 그런데 경매사가 도난품 확인을 위해 의존할 수있는 방법은 두 가지 뿐이다. 조계종의 도난백서와 문화재청 홈페이지의 도난품 리스트를 보고 도난품 여부를 검증하는 것이다.

경매사로서도 억울하다. 김정민 마이아트옥션 경매사는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게재된 도난품 사진들이 대부분 1990년대 말에 찍은 것이어서 해상도가 낮고 구분이 어려웠다. 특히 불화의 경우 연도와 사이즈가 다르게 기재된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비교 검증작업을 거쳤지만 어쩔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옥션 측은 “도난품인줄 알았다면 도록을 냈겠나. 앞으로는 불교미술을 아예 하지 말까 생각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서울옥션 역시 고미술품을 경매에 다루는 것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최윤석 이사는 “불교미술 작품은 거의 대부분이 도난품이라는 가정 하에 철저히 감정한다”면서 “지난 경매에 나온 작품들은 과거에 이미 전시가 됐던 작품들로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 서문을 쓰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잡음의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는데 주력했다는 것이다. 지난 경매에 출품됐던 고미술품들은 예금보험공사가 위탁한 작품들로 저축은행들이 파산하면서 예보로 귀속됐다.

▶고미술품 진위ㆍ도난품 실태 파악 시급…허술한 문화재 관리도 여전히 과제=대한불교조계종이 불교미술품 도난 백서를 낸 건 1999년 7월 단 한번. 지금은 절판돼서 구할 수도 없고 조계종 내에서도 제본 1권 정도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다. 유대호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 문화재팀 주임은 “2006년 사찰문화재 일제조사 이후 도난 건수가 매년 10~20건으로 줄어들어 도난 백서를 따로 증보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조계종 문화부(부장 혜일스님)는 최근 전ㆍ현직 사찰 주지들을 대상으로 재직시 신고하지 않은 도난 성보에 대해 자진신고를 받는다는 안내문을 보냈다. 뒤늦게 도난문화재에 대한 실태파악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또 15년 가까이 업데이트가 안됐던 도난 백서를 증보 발간해 홍보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동천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특빙연구원이자 미술품감정전문가는 여전히 가짜가 판치는 고미술품에 대한 실태 파악이 전혀 안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가짜 미술품이 가장 많았던 중국은 1983년부터 1990년까지 8년에 걸쳐 정부가 감정 전문팀을 꾸려 전국을 돌며 6만여건의 고미술품에 대한 검증 작업을 마치고 중국고대서화도목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가짜 많은 중국 미술시장이 살아날 수 있었던 비결”이라면서 국가가 나서서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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