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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컵, 화려한 축제 뒤의 검은 손, ‘피파 마피아’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월드컵 개막전을 하루 앞둔 지난 12일 개최지인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총회에서 제프 블래터(78·스위스) 회장은 “임기가 내년에 끝나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말했다. 사실상의 피파 회장 5선 도전 선언이었다. 16년 장기 집권도 모자라 ’한번 더‘의 의중을 내비친 것이며, 이러다간 ’종신 권력‘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축구관계자들과 팬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그는 이튿날인 13일 브라질-크로아티아간 월드컵 개막전에서 여지없이 야유를 받았다. 브라질 국민들의 생활고와 국가경제의 파탄을 외면한 정부의 무리한 월드컵 개최에 대한 비난 뿐 아니라 피파가 개최국에 나눠주는 월드컵 수익금을 점점 줄여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보는 팬들의 불만이 섞인 것이었다. 블래터 회장은 지난 2012년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여자축구 시상식에서도 관중 8만여명의 야유를 받았다. 그때 야유의 이유는 FIFA의 폐쇄적 행정, 2018년, 2022년 월드컵 본선 개최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비리 의혹에 대한 미온적 대처 등이었다. 블래터가 받은 야유는 2006년 독일월드컵 우승국의 시상식 때 가장 극적이었다.

”2006 월드컵에서 관중은 게임이 거듭될수록 블라터(블래터)에게 더욱더 강렬한 야유를 보냈다. 그는 베를린에서 열린 결승전이 끝나자 그라운드로 내려가 우승팀을 축하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였다. 그가 우승컵을 둘러싼 선수들을 망연히 바라보며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난감해하는 장면은 참으로 기괴한 그림이었다. 독일 대통령 호르스트 퀼러와 피파위원들, 독일월드컵조직위원회 위원장 프란츠 베켄바워 등 축구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회장이 내려오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블라터는 내려오지 않았다. 그는 관중이 두려운 나머지 숨어버렸다. 경기에서 아무런 물질적 이득을 보지 않으며 오로지 순수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축구를 지구상 최대의 사건으로 만들어준 관중이, 팬들이 두려워서? 〔…〕관중은 블라터에게 굴욕을 안겼다. 관중은 블라터와 그 일당을 비난할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비즈니스나 권력 혹은 신분상승을 꾀하지 않으며 오로지 즐거움으로 축구를 사랑하는 팬은 당연히 그럴 권리를 누려야 마땅하다.“(’피파 마피아‘ 중)

2006년 독일월드컵은 역대 최악 중 하나였다고 해도 될만큼 ’재미없는 대회‘였다. 선수들은 상대 진영으로 돌진하기보다는 골문을 틀어막기에 바빴으며, 그 결과 경기당 평균 2.29골이라는 역대 월드컵 중 두번째로 낮은 기록을 낳았다. 오심은 지겹도록 반복됐으며, 기적도 없었고 깜짝 스타는 나오지 않았다. 우루과이의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글(’축구 그 빛과 그림자‘)을 떠올리게 하는 대회였다.

“축구의 역사는 아름다움에서 의무로의 슬픈 여정이다. 스포츠가 산업이 되자, 놀이의 즐거움로부터꽃피웠던 아름다움은 뿌리로부터 산산히 찢겨졌다. 세기말의 시대에 프로축구는 불필요한 모든 것들을 저주한다. 여기서 불필요하다는 의미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극소수의 주인공들과 대다수의 구경꾼이 나뉘며 놀이는 스펙터클이 됐으며, 축구는 단지 구경거리가 됐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돈이 되는 비즈니스가 된 스펙터클로서의 축구는 놀이로서의 활력을 잃어버려왔다. 프로스포츠의 기술관료체제는 야수같은 힘과 번개같은 속도를 강요함으로써 축구로부터 즐거움을 빼앗고 환상을 깨뜨리며, 대담함을 제거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왔다.“

프로축구와 피파, 월드컵을 둘러싼 ’검은 손들‘과 추악한 뒷거래, 부정부패의 커넥션을 폭로한 책 ’피파 마피아‘(김희상 옮김, 돌베개)가 최근 출간됐다. 독일 ’쥐트도이체 차이퉁‘의 스포츠 정치 담당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토마스 키스트너의 탐사취재 결과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2006년 ’올해의 스포츠저널리스트‘로 선정됐으며 스포츠 정치와 스포츠의 조직범죄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탐사전문 기자다.

이 책의 요지는 한 마디로 정리된다. ”스포츠는 음험한 악당의 손에 너무 오래 방치되었다.“ 저자는 ’모든 것을 지배하면서 어떤 것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단 한 명의 보스가 군림하는 패밀리‘, ’돈과 더불어 부패의 악취가 진동하는 철권통치조직‘으로서의 피파의 이면을 샅샅히 파헤쳐간다. 그 중심에는 현 피파 회장인 제프 블래터 체제가 놓임은 물론이다.

부정부패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으며, 최근에도 2022년 카타르월드컵 선정과정에서의 뇌물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피파의 수장 제프 블래터의 연봉은 자신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4년마다 치러지는 월드컵으로 피파가 벌어들이는 40억 유로의 지출내역도 투명하게 밝혀지는 일이 결코 없다. 그럼에도 피파 회장은 ’세계 축구의 교황‘으로 숭상되고, 각국 정상 이상의 무소불위 권력과 막대한 부를 누린다. 저자는 지난 20년간 피파를 움직인 인물들과 그들의 암투, 커넥션, 검은 거래를 추적하고 폭로하는 동시에 축구의 즐거움을 망가뜨리는 과도한 민족주의 및 상업주의를 비판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 대한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다뤄졌으며, 서울시장선거 유세에서 한국의 월드컵 4강을 빌어 세계축구계에서의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발언으로 논란이 됐던 정몽준 피파 부회장 관련 대목도 있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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