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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구와 문학, 오페라, 그리고 ‘가난한 자’를 사랑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지난 2013년 3월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 회의 콘클라베에서 최다득표를 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레스 대교구장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은 바티칸의 새 교황 선출 발표 직전 두 가지의 제언을 들었다. 한 추기경이 교황명을 클레멘스로 지으라고 추천했다. ‘예수회를 해체한 클레멘스 14세 교황에 대한 복수’의 의미라고 했다. 1773년 프란치스코회 출신 클레멘스 14세 교황은 예수회를 해체했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은 예수회 소속이었다.

또 다른 말은 프란치스코회의 클라우디오 우메스 추기경으로부터 들었다. 교황 선출 직후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말아 주세요!”라는 당부를 베르골료에게 남겼다. 그리고 베르골료 추기경은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선택한 첫 교황이자 예수회출신 사제가 됐다. 분열과 대립보다는 조화와 균형, 개방을 추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일화다.

방한(8월 14일)을 두 달 앞두고 한국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의 신앙과 신념, 인간됨과 삶의 궤적을 조명한 평전이 번역 출간됐다. 독일 출신으로 바티칸에 정통한 교황청 출입 기자 위르겐 에어바허가 지은 ‘프란치스코 교황’(신동환 옮김, 가톨릭출판사)이다.

이 책을 통해 본 교황 프란스치코는 무엇보다 균형과 중용, 조화의 사제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해방 신학의 혈통이 강한 예수회 출신으로 교회는 거리로 나가 가난한 자들의 삶에 복무해야 함을 누구보다 강조하지만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된 급진적 사상은 거부한다. 사회참여에 적극적이지만 영성의 회복을 근본에 둔다. 교회는 세계 변화에 능동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낙태 및 동성애, 여성사제를 금하는 교리에 대해선 추호의 양보도 없다. 개혁을 추구하지만 전통 및 권위의 존중에 대해서만큼은 비타협적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불과 36세이던 1973년 아르헨티나 예수회의 최고 수장인 예수회의 관구장으로 임명됐다. 이 때는 후안 카를로스 온가니아 군부독재와 도밍고 페론-이사벨 페론 집권,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의 군사쿠데타 등이 이어지던 격변의 시기였다. 당시 베르골료 관구장은 아르헨티나 예수회의 최고 수장으로서 군부독재에 협력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군부정권이 예수회 를 납치한 사건과 수감 여성 아이들을 친정부 성향 가정에 강제 입양시킨 일련의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군부 독재에 협력은 아니더라도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부 사제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시기의 의혹에 대해선 후일 대부분 진실이 아님이 밝혀졌으며, 당시 베르골료 관구장은 자신의 자리에서 핍박받는 반정부 인사나 사제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도 아울러 드러났다. 갖가지 비난과 의혹제기에도 불구하고 굳이 해명하려고 들지 않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정의를 실천했던 당시의 행적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이에 대해서 저자 위르겐 에어바허는 아르헨티나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 아돌포 페레즈 에스키벨 교수의 말을 인용한다.

“그분은 군부 정권에 협력한 분도 아니었지만 인권을 위해 몸을 바친 분도 아닙니다. 베르골료 신부님은 관구장 시절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그분은 강제연행되어 구금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조용한 외교를 펼쳤습니다.”

갈등과 분열, 탐욕과 양극화의 시대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균형과 조화, 개방, 중용의 덕은 오히려 강렬한 하나의 메시지가 돼 세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인을 감동시키는 이유는 ’세상 속으로‘ ’민중 속으로‘라는 신념이다. 허례와 아집, 권위를 멀리하고 몸소 땅에 발을 딛고 검약하며 약자들과 핍박받는 자들을 위해 사는 삶이다.
그는 추기경 시절 부에노스 아이레스 디스코텍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10대가 대부분인 194명의 희생자를 낳았을 때 현장을 찾아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일일이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줬다. 2012년 12월 대형 기차 사고가 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한국민들이 그를 더욱 기다리는 이유다.

평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프란치스코의 신념과 신학사상 뿐 아니라 다양한 뒷얘기와 일화들을 통해 인간적인 모습을 담아냈다. 아르헨티나 프로팀 산 로렌조 데 알마그로를 응원하는 열광적인 축구팬, 휠덜린의 시와 보르헤스, 도스토옙스키를 즐겨 인용하는 문학애호가, ’반지의 제왕‘과 ’바베트의 만찬‘을 제일로 꼽는 영화팬으로서의 면모도 만날 수 있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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