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생생 e수첩> 또 뒤집어진 대한민국호(號)
[헤럴드경제=황해창 선임기자]이 땅에 어른의 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또 부끄러운 아침입니다. 밤새 TV를 켰다 껐다 했지만 별반 달라진 게 없습니다.

곤두박질친 채 흉물스럽게 꽁무니만 내놓은 ‘세월호’, 그리고 그 주변을 분주하게 움직이는 구조대 모습, 어둠에 갇힐 때나 동이 틀 무렵이나 비슷합니다. 추가로 구조된 사람이 없었다는 겁니다.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차디찬 바다 안에 갇혀있을 수백의 고귀한 생명들, 이젠 그들의 운명조차 알 길이 없어졌습니다. 두 눈 버젓이 뜨고 배가 가라앉기까지 두어 시간 허비하고 뒤늦게 허둥댄 결과입니다. 그렇더라도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곳에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쉽게 가라앉아 버린 세월호

이번 세월호 사고를 뉴스로 접한 16일 오전 9시 전후부터 거의 24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기자의 감정이 이상합니다. 툭하면 터지는 대형사고, 그 것도 번번이 인재에 가까운 그런 불행한 일을 접해 오면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고도 정상이냐”며 제 얼굴에 침을 뱉고 대한민국을 향해 삿대질과 쌍욕이라도 해대고 싶은 심정입니다.

사고 소식을 처음 뉴스로 접했을 때, 무슨 일인가 싶어 조용히 휴대폰 DMB를 켰습니다. 엄청난 크기의 여객선이 바다에 삐딱하게 기운 채 정지된 모습이었습니다. 주변에 크고 작은 섬도 보이고 해서 “덩치값도 못하는 구나” 그렇게 중얼댔습니다. 사무실 주변을 의식해 사운드 없이 화면만 켜놓고 상황을 살피는 데 구조의 손길도 그다지 없어 보였습니다. 주변에 있던 어선이 나타났고 헬기가 뜨면서 구조 장면이 나왔지만 긴박감은 그다지 없었습니다.

2000t급 여객선, 그리고 900여명 정원에 500명 가까이 탔으며,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수백 명이 제주 수학여행을 위해 승선했다는 사실 등이 자막으로 떴습니다. 그런데 뉴스가 거의 채널마다 차이가 납니다. 현장에 조금씩 이상기류가 흐른 때문인지 뉴스 톤이 높아지더니 내용마저 왔다갔다 하더군요.

대책본부가 꾸려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대책회의를 주재하는 장면도 보였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면서 승객 수부터 헷갈리더니 구조된 사람 수는 더 오락가락 갈팡질팡 이었습니다. 박 대통령도 그걸 따져 묻더군요. 답은 이렇습니다. 급하게 구조를 하다 보니 태우고 몇 명 또 내려놓고 몇 명 이렇게 중복돼 그렇게 된 것이랍니다. 사정 상 이해 못할 것도 아닙니다.

생존 또는 구조된 사람들의 명단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승선자 가족들

그즈음 학생들이 모두(325명)이 구조됐다는 긴급뉴스가 뜹니다. “그러면 그렇지. 잘하고 있어. 저렇게 큰 배가 저 정도 기울었는데 당연히 구조해야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점심시간이 되면서 하나 둘 씩 사무실을 빠져나갔습니다.

점심시간, TV는 켜졌지만 두 눈 동그랄 그런 상황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잘 해결되겠지 그 정도의 분위기?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 시간, 사고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 지옥이 펼쳐지고 있었던 겁니다.

오후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더 긴박해졌고 배는 급속히 물속으로 잠겨들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첫 사망자 소식까지 자막에 잡히더니 고인의 이름도 한동안 틀리게 나왔습니다. 더 큰 날벼락은 학생들 중 대다수가 구조되지 못했다는 겁니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덩치 큰 놈이 넘어지면 더 크게 다치는 법, 구조대가 현장에 제대로 진을 치기도 전에 세월호는 바닥 모퉁이 끝부분만 달랑 내놓고 야속하게 잠겨 들고 말았습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긴박했던 그 순간, 암흑천지 배안에 갇힌 채 두려움에 떨며 문자를 보낸 어린 학생들. 그 사연이 생가슴을 후벼팝니다. 엄마한테 혹시나 못할까봐 미리 사랑한다는 말을 보내놓고 소식이 끊긴 아들. 배가 너무 기울어져서 도저히 움직일 수 없다며 차분하라는 아빠에게 살아서 만나자던 딸.

더 황당한 것은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으라”는 선내 방송이 10여 차례 있었다는 겁니다. 배가 급격하게 기우는데는 겁니다. 그 때 이건 아니다 싶어 뛰쳐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극적으로 구조됐다고 합니다. 구조된 이의 증언입니다. 말 잘 듣는 녀석들과 거동이 느린 노인 또는 장년들 상당수가 고스란히 내부에 갇힌 것으로 판단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말 안 듣는 학생들이 살아났다는 건 아닙니다. 고분고분 따른 이들의 피해가 컸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우리 사회 한 단면을 보는 듯해 씁쓸합니다. 

어둠에 잠겨든 사고 현장을 비통하게 바라보는 승선자 가족들

그런데 말입니다. 여전히 의아한 것은 왜 그런 곳에서 사고가 났는가 입니다. 전날 계획보다 2시간 반 정도 늦게 출항한 것은 지독한 안개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도착시간 만회를 위해 막판 스퍼트를 무리하게 했을 가능성, 그리고 실족하듯 한 순간 루트를 벗어났을 가능성 등이 머리속에 남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해상안전을 책임진 해양경찰, 그리고 불철주야 영토를 수호한다는 해군 공군, 그들의 기동력입니다. 생각보다는 느림보였습니다. 혹시 기자처럼, 별일 아니겠지, 장소도 그렇고 바다도 조용하고 배 덩치도 그렇고... 그런 식으로 말입니다. 아니면 혹시 늠름하게 폼 잡고 오느라 굼뜬 것은 더 아니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렵니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선장(대리선장)과 승무원 대부분이 맨 먼저 사고 현장을 탈출했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선장은 한 병원에서 물에 젖은 오만원 만원 천원 권 지폐들을 꺼내 병실 난방기구에 펴놓고 말리며 태연해 하더라는 뉴스입니다. 그 중 한 승무원이 장난치듯 선장의 오만원 한 장을 가져가려하자 선장이 황급히 막는 등 휴식시간처럼 행동하더랍니다. 바로 옆에 단원고 학생들이 실려와 응급처치를 받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이런 걸 천인공노(天人共怒)라 합니다.

대한민국과 정부에 고함이라도 쳐야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하나의 목숨이라도 구해내라고. 마땅히 그러리라 믿습니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예외 없이 가던 길 멈춰 서서 두 손 들고 벌이라도 서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분이 풀릴 때까지 말입니다.

“창피하다. 이런 나라에 국민으로 산다는 게” 기자보다 더 열 받은 한 지인이 한 말입니다. 기자랍시고 냉정한 자세 잃지 않으려 애를 씁니다만, 이번만큼은 그렇게 잘 안 됩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자도 친구도 국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월호에 대한 이 끔찍한 기억을 어딘 엔가 쉽게 내다 버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11년 전 292명의 생명을 앗아간 최악의 해양사고, 서해 훼리호를 까맣게 잊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hchwang@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