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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성 송전탑 현장 르포>법 위의 군림공사, 생태계는 피눈물 흘렸다
-한전, 정부 허락도 없이 송전탑  공사

-고목 고사 등 현장 무참…멸종위기종 서식지 파괴 논란



[헤럴드경제=이지웅(횡성) 기자] 지난 13일 오전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소재 한국전력공사(한전) 둔내변전소. 변전소 뒤쪽 산자락을 깎아 만든 비포장 오르막길을 3분 정도 올라갔다. 3분 뒤 초록색 페인트 칠을 말끔하게 한 거대한 송전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도 저곳처럼 소나무가 빽빽했어요. 그걸 다 밀어버리고 송전탑을 세운 겁니다.”

이강운(56) 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교수가 주변 숲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교수의 한숨이 찬공기와 섞여 하얀 입김으로 뿜어나왔다. 송전탑 주변엔 소나무들이 강추위에 얼어 딱딱해진 땅에 간신히 뿌리를 박고 있었다. 분위기는 황폐했다. 인기척에 놀란 고라니가 산 밑으로 도망쳤다. “이런 송전탑이 불과 1년만에 50개 넘게 박혔어요. 소나무 수 천그루가 잘려나갔을 겁니다.”

한전이 2012년 말부터 강원 둔내변전소~횡성변전소 구간에 154kV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추진하는 현장이다. 강원도 횡성군에 속한 둔내면ㆍ갑천면ㆍ우천면ㆍ횡성읍 일대에 송전탑 54기를 건설하고 선로를 잇는 공사다. 이 교수는 “한전이 인근 주민과 제대로 된 협의도 없이 ‘도둑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제2의 밀양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라고 했다.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소재의 한전 송전탑 불법공사 현장. 정부 허가 없이 무단으로 건설된 송전탑 현장은 피폐하다. 고목들은 참혹하게 쓰러져 있고, 멸종위기종을 벼랑 끝으로 내몰면서 생태계는 파괴 직전이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이곳을 관할하는 원주지방환경청은 지난해 12월19일 환경영향평가법 위반 혐의로 조환익 한전 사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지역 주민들은 “공기업인 한전이 막무가내로 ‘일단 송전탑을 박아놓고 보자’는 식으로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대체 이곳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으며, 또 벌어지고 있는 걸까.

한전 공사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생태계 파괴 우려다. 공사장 주변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로 평가되는 곳이다. 붉은점모시나비ㆍ물장군ㆍ깊은산부전나비ㆍ 삵ㆍ하늘다람쥐 등 곤충과 동물을 포함해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10종의 멸종위기종이 인근에 서식하고 있다. 지난 1997년 이곳에 연구소(홀로세생태학교)를 세운 이 교수는 “멸종위기종은 그야말로 서식지가 좁고 작은 환경 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는데, 지난 1년간 계속 공사중이어서 생태계가 얼마나 파괴됐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고 했다.

갑천면에는 멸종위기 야생생물인 독미나리 자생지가 국내 최대 규모로 보존돼 있다. 바로 옆에는 물장군 복원사업지가 조성돼 있다. 원주지방환경청이 보호막까지 두르고 보호하고 있지만 이곳과 불과 100m 떨어진 거리에 산을 깎아 송전탑이 세워졌다. 이 교수는 “토사물이 흘러내리는 등 서식지가 완전 파괴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생태 파괴가 일어난 까닭은 한전이 이렇다 할 협의없이 공사를 강행한 때문이다. 이 교수는 최근 원주지방환경청으로부터 한전이 2012년 10월 환경부에 제출한 ‘사전환경성검토서’를 입수했다고 한다. 그는 “검토서 자체도 부실하지만 한전은 그마저도 이행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 예로 검토서 62페이지 ‘제 5장 의견 수렴 및 중점 검토 항목의 설정’의 ‘검토의견’란에 ‘주변 법정보호종 서식 여부 및 대상 지역 내외 생태자연도 등을 제시하고 공사ㆍ운영 시 내외에 미치는 영향 예측 및 저감 방안을 제시하라’고 돼 있지만, 한전은 ‘영향 예측 및 저감 방안을 강구하였음’이라고만 나와 있다. 구체적인 사항이 없을 뿐더러 사실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았다고 이 교수는 주장했다. 또 74페이지에는 ‘생태계보전지역, 습지보전지역, 야생동식물보호지역 등 각종 심대한 영향이 예상되는가?’라는 세부 검토 항목의 ‘검토 결과’로 ‘각종 보호지역 존재하지 않음’이라고 기술돼 있는데, 엄연히 멸종위기종 서식지가 있기 때문에 명백한 거짓 기술이라는 것이다.

이에 연경화 환경부 국토환경평가과 주무관은 “법률적으로는 검토서에 이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한전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변전소 위치가 당초 예정지에서 변경되는 과정에서 환경평가 등 부분에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고 잘못을 시인했다. 정작 당사자인 한전은 문제를 인정하는데, 이를 감시하는 환경부는 오히려 문제가 없다고 발뺌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전이 지식경제부에 보낸 실시계획 변경 공문.

공사의 더 큰 문제점은 추가로 건설된 송전탑이 정부의 허가도 없이 불법적으로 강행됐다는 점이다. 둔내~횡성 154kV 송전선로 건설사업은 당초 이곳에 49기의 송전탑을 설치할 계획이었지만, 이후 개수를 더 늘렸다. 정부 허가 없이 공사된 송전탑은 당초 5개로 알려져 있었지만, 이날 둔내변전소에서 만난 김병진 한전 중부건설처 충북강원건설지사 토건팀 팀장은 “추가된 송전탑 변전소 바로 뒤에 설치된 1호 송전탑을 포함, 모두 6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의 허가도 없이 무단으로 건설된 송전탑이 5개라는 한전 설명조차 숫자를 축소한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문제가 된 추가 송전탑은 둔내변전소 바로 뒤편 1호부터 6호까지 400미터 간격으로 대략 2km 넘게 이어져 건설된 것으로 파악된다. 공사는 거의 완료됐고 복구 작업만 남겨두고 있는 상태다.

한전의 막무가내식 공사는 ‘원주~강릉 철도건설’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사례와 극명하게 비교된다. 공단은 지난해 환경영향평가 진행 결과, 계획된 선로 중 일부 구간이 홀로세생태학교와 거리가 117m에 불과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 지난해 11월께 50여억원의 비용을 추가로 들여 선로 코스를 일부 변경하고 바깥이 아닌 지하에 선로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생태계 파괴의 위험성을 알려주고 있는 이강운 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교수.

이번에 새로 송전탑 8개가 세워진 하대 2리의 주민 김학렬(51) 씨는 “당초 한전 측은 송접탑 3개에 대한 보상을 해준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8개가 세워졌다”며 “주민들과 제대로 공청회도 열지 않고 이곳 주민들도 잘 모르는 몇몇 외지인과 얘기해서 세워지게 됐다”고 했다. 실제 한전이 만든 ‘사전환경성 검토서’의 ‘주민설명회 참석자 명부’에는 총 20명의 이름과 서명만이 기입돼 있다. 공사 지역인 둔내면ㆍ갑천면ㆍ우천면ㆍ횡성읍 주민은 현재 3만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배(63) 하대2리 이장은 “원래 우리 동네는 송전탑이 지나가는 구간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8개나 지나가게 됐다. 그래도 기존 설계대로 갔으면 큰 문제가 없었는데, 송전탑이 여러 개 무단으로 추가돼 건강 등 주민들의 걱정이 크다”고 했다.

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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