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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하루 30만배럴 석유제품 선적…“수출 걱정에 새해 첫날도 부두서…”
수출 최전선부대…SK에너지 울산콤플렉스 석유출하2팀
연간 유조선 1200여척 분 물량 처리
평균연차 20여년 베테랑 ‘수출 개척자’




지난 21일 울산 남구 고사동 SK에너지 울산콤플렉스 제8부두. 참으로 맑아 유난히 높아 보이는 가을 하늘과 맞닿은 눈부시게 푸른 미포만 바다에는 길이가 275m나 되는 육중한 노르웨이 선적 유조선 ‘토릴 크누첸(Torill Knutsen)’호가 정박해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유조선에서는 말레이시아로 수출될 디젤(경유)을 싣기 위한 선적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12만t급으로 총 78만7000배럴의 석유제품을 실을 수 있는 이 유조선은 송유관과 연결된 로딩 암(Loading Arm) 두 개를 통해 디젤을 공급받고 있었다. 컨테이너 크레인 모양의 로딩 암은 송유관과 선박을 이어주는 일종의 ‘도킹장치’로, 시간당 평균 1만3000배럴의 석유제품을 주유할 수 있다. 유조선을 접안시켜 디젤로 다 채울 때까지 하루 하고도 한나절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SK에너지 울산콤플렉스 석유출하2팀 직원들은 이 시간에 4조 3교대로 근무했다. 작업이 종료될 때까지 밤을 새워가며 유비무환의 태세로 모든 작업을 꼼꼼하게 지켜봤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수출의 날 기념식’에서 SK에너지(200억달러)를 비롯해 SK종합화학(60억달러), SK루브리컨츠(10억달러) 등 자회사 세 곳을 합쳐 모두 ‘270억달러 수출탑’을 받았다. 이 같은 눈부신 실적에는 야근을 마다하지 않는 석유출하2팀 직원들의 노고가 있었다.

석유출하2팀 직원들은 SK이노베이션의 전체 수출물량 중 95% 이상을, SK그룹 전체 수출물량 중 60%가량을 책임지고 있는 SK의 ‘수출 선봉장’들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원유를 수입, 부가가치가 높은 석유제품으로 가공하는 ‘수출 전선’의 최일선에 서 있는 이들이 바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출역군인 셈이다.

▶국내 하루 석유 소비량 15% ‘해외 수출’=석유출하2팀이 소속된 SK에너지는 현재 전 세계 110여개 나라를 대상으로 수출하고 있다. 1964년 SK이노베이션 전신 대한석유공사 시절 울산콤플렉스에 3만5000배럴 규모의 제1상압증류시설을 건설ㆍ가동했을 당시, 필리핀에 휘발유 3만배럴을 공급하면서 시작된 수출의 성과는 놀라울 정도로 급성장했다.

지난해에만 휘발유ㆍ등유ㆍ경유 등 경질유제품 1억2000만배럴을 포함, 석유제품만 총 1억8400만배럴 분량을 수출했다. 약 50년 전과 비교해 6133배 늘어난 수치다. 액수만 20조원을 넘는다. 올해에도 이 같은 수출 호조세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올 3분기까지 석유제품 수출물량은 1억3000만배럴에 이르러, 지난해 실적을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 21일 울산 남구 고사동 SK에너지 울산콤플렉스 제8부두에 노르웨이 선적 유조선‘ 토릴 크누첸(Torill Knutsen)’호가 디젤(경유)을 싣기 위해 정박해 있다. 이 배는 12만t급으로, 총 78만7000배럴의 석유제품을 선적할 수 있다. SK에너지는 연평균 오가는 배 1200여척을 통해 원유를 수입해 석유제품으로 가공, 수출해 수익을 올리며 우리나라 수출에 기여하고 있다. [사진제공=SK이노베이션]

SK에너지가 수출하는 석유제품은 휘발유ㆍ경유ㆍ항공유ㆍ나프타(납사) 등 50여가지나 된다. 수입된 원유는 각 나라가 요구하는 기준(스펙ㆍspecification)에 맞추는 블렌딩(blending) 작업을 거쳐 석유제품으로 탈바꿈한 뒤 저장 탱크와 송유관을 거쳐 유조선으로 옮겨져 수출된다.

울산콤플렉스는 원유 수입과 석유제품 수출을 위해 선박 22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부두 8곳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원유 기준으로 최대 석유제품 100만배럴을 실을 수 있는 대형 유조선(17만t급) 접안도 가능하다. 이 부두에는 연평균과 월평균 각각 배 1200여척, 100여척이 SK에너지가 수입하는 원유와 수출하는 각종 석유제품을 싣고 드나들고 있다. SK에너지는 날마다 국내 하루 석유 소비량(200만배럴)의 15%에 해당하는 30만배럴의 석유제품을 이곳을 통해 수출한다. 말 그대로 SK에너지가, 울산콤플렉스가, 석유출하2팀이 우리나라의 ‘수출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최영식 석유출하2팀 총반장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이 없어 부두를 불필요하게 크게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다”며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처리물량이 너무 많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평균 연차 20여년 베테랑… “수출 차질 걱정에 부두에서 새해 맞아”=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석유출하2팀 직원들의 고생이 만만찮다. 공장 불이 꺼지지 않고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전 세계 정유업계 특성상 수출 시장도 1년 365일 내내 돌아가기 때문에 석유출하2팀 사무실을 밝히는 전등도 꺼지는 날이 없다. 4조 3교대로 근무하며 만반의 준비를 한다지만, 위기상황은 돌발적으로 찾아온다.

석유제품을 수출할 때 가장 큰 적은 강한 비바람이다. 특히 강한 바람은 한창 유조선에 주유 중인 로딩 암을 흔들어 배에서 빠질 뻔하게 만들기도 하고, 배 상판 자체를 흔들어 석유제품 선적 작업을 방해하기도 한다. 때문에 비바람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여름철 태풍은 석유출하2팀 직원들에게 두려우면서도 극복해야 하는 존재다.

하지만 석유출하2팀 직원 42명은 평균 연차 21.5년, 평균 연령 46세의 ‘베테랑’들이다. 오랜 경험을 지닌 이들은 ‘수출 전진기지’를 든든하게 지키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석유제품 수출은 현장 작업도 있지만 대부분이 자동화돼 사무실에서 저장 탱크부터 제품 선적까지 모든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이들은 현장과 사무실을 오가며 제품은 원하는 규격에 맞게 제대로 블렌딩이 됐는지, 송유관과 로딩 암을 통해 제대로 석유제품이 선적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한다.

김대영 석유출하2팀 실무반장은 몇 해 전 태풍 ‘매미’가 왔을 때 섰던 근무를 회고했다. 김 반장은 “태풍 소식에 나가 보니 바람이 심해졌고, 기름찌꺼기를 담아 놓은 ‘섬프 박스(sump box)’에 물이 들어가 자칫 다음 선적 때 화재 등 사고가 걱정되더라”며 “비바람이 거세지기 전 아예 박스를 물로 채워 사고를 막았다. 작은 사고 때문에 수출에 차질이 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쉬지 않고 스케줄이 이뤄지다 보니 석유출하2팀 직원들은 집안은 물론 지인들과 각종 행사를 치르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수출을 담당하는 역군으로서의 보람이 더 크다고 직원들은 전한다.

김 반장은 “우리가 할 수밖에 없는,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올해 우리 나이로 열여덟 된 고등학생 딸이 몇 년 전 (내가) 일하는 부두로 찾아와 유조선을 보며 ‘아빠, 대단한 일을 하네’라고 했을 때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며 웃었다.

때로는 부두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새해를 맞을 때도 있다. 김 반장은 “언제인지 정확히는 생각이 안 나는데, 그 해 마지막 날 야간근무를 서고 있었다”며 “마침 새해 첫날 첫 해가 멀리 미포만 바다에서 솟아올랐다. 힘들었지만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전했다.

울산=신상윤 기자/k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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