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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쪽지예산·날치기·몸싸움·외유… ‘부끄러운 1%들’
씁쓸한 대한민국 국회의 자화상
대한민국 국회에는 정치학 원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고유언어가 있다. 계수조정 중인 동료 의원에게 자신의 지역구 민원을 담은 쪽지를 문틈으로 전달, 예산에 반영시키는 ‘쪽지예산’, 주로 집권 여당이 주도하곤 했던 ‘날치기’ 그리고 여당의 날치기를 막으려는 야당 의원들의 필사적인 ‘몸싸움’ 등은 대표적인 대한민국 국회만의 고유언어다.

‘쪽지예산’은 지난해 말과 새해 첫날 사이 벌어진 2013년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부각된 단어다. 국회 예결위 산하 계수소위가 여야 간사들이 국회가 아닌 시내 모 특급 호텔의 한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비공개로 4조 원을 증액하는 과정에서 동료 의원들의 민원을 담은 ‘쪽지’를 건네받고, 이를 사이좋게 나눠 반영한 것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과정에서 ‘쪽지예산’도 모자라 ‘종이비행기 예산’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예결위 민주당 간사인 최재성 의원은 지난 25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예산 6조원을 증액한다고 하니 ‘종이비행기’까지도 들어와 질서가 교란된다”고 19대 국회 예산 신풍속도를 자백했다. 문틈에 끼워 둔 쪽지도 못 미더워 비행기를 접어 간사 코앞으로 던지고자 하는 지역구 의원들의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정치개혁은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이 가장 열망하던 시대적 과제였다. 선거 때만 국민 운운하다가, 막상 당선이 되고 나면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바쁜 국회는‘ 제왕적 청와대’와 함께 정치개혁이 가장 필요한 곳으로 꼽힌다. 사진은 국회 본회의에서 김황식 국무총리에게 대정부 질문을 하는 모습.                                                                                                 [헤럴드경제DB]

‘날치기’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었다. 여야가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스스로를 쇄신하겠다며 날치기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 ‘국회선진화법’까지 만들었지만, 야당 의원들은 여전히 “날치기”라고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국회 국방위원회가 제주해군기지 예산을 야당 의원들의 불참 속에 여당이 단독으로 처리한 것을 비토한 것이다.

다만 ‘날치기’의 구현 방법은 다소 달랐다. 과거 ‘날치기’에는 이를 막고자 하는 ‘몸싸움’이 짝으로 붙어다녔다면, 이번에는 몸싸움이 사라진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 여론에 떠밀려 대놓고 반대하기 힘들었던 야당 의원들과, 안보 측면 선명성 부각을 위해 강행이 필요했던 여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짜고치는 ‘날치기’였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대한민국 국회 사전의 고유언어 중 대표격인 ‘몸싸움’은 19대 국회에서는 다행히도 아직 출연 기회를 잡지 못했다.

국회의장석을 둘러싼 여당 의원들과 이를 허물어 의장의 의사봉을 강탈하려는 야당 의원들의 ‘공성전’이 17대 국회까지 이어져 온 ‘몸싸움’의 원조였다면, 지난 18대 국회에서는 ‘의사진행 발언 중 최루탄 투척’이라는 새로운 몸싸움 전술이 등장하기도 했다.

‘외유’도 다른 나라 정치사전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말이다. 날치기와 몸싸움, 장외투쟁에 축난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자, 의원들이 나랏돈을 써 가며 비행기를 타고 바다 건너 나서는 관행이 ‘외유’다. 올해의 경우 ‘쪽지예산’을 마무리한 예결위 소속 의원 9명이 아프리카 케냐 등으로 단체 외유에 나섰다. 명분은 “예산심사시스템 연구”였다.

케냐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 아버지의 조국으로 “내 아버지가 케냐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왔을 때 케냐는 한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이 케냐보다 공업화되고 부유해졌다”고 말하면서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나라다.

최정호ㆍ조민선 기자/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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