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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김수자 등 유명작가의 ‘올림픽 미디어아트’, 런던밤 수놓다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19일 오후 6시(현지시각). 영국 런던의 버킹검궁 옆에 위치한 18세기 저택 스펜서 하우스(Spencer House)에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및 LOCOG(런던올림픽위원회) 관계자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IOC의 Executive Director인 티모 루멘(Timmo Lummen)과 LOCOG의 Director 크리스 타운젠드(Chris Townsend) 등과 미디어및 재계인사 등 100명은 이날 밤 최초로 공개되는 ‘삼성 올림픽게임 미디어아트 컬렉션(Samsung Olympic Games Media Art Collection)’을 감상하기 위해 유서 깊은 스펜서 하우스를 찾은 것.

‘스펜서 하우스’는 영국의 전(全) 왕세자비 다이아나 스펜서의 부친인 스펜서 백작 가문의 저택으로, 런던에서도 보기 드물게 18세기 건축의 내외부가 온전히 보존된 곳이다. 이 대저택의 아름답고 화려한 9개의 방에서는 55인치 스크린이 설치돼 세계적 작가 9명의 미디어 작품(9점)이 제각기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삼성 올림픽 게임 미디어아트 컬렉션, 블루 크리스탈 볼(Blue Crystal Ball)’이란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올림픽 공식스펀서인 한국의 삼성전자가 후원을 맡고, 런던을 무대로 활동 중인 독립 큐레이터 이지윤 씨(SUUM프로젝트 대표)가 큐레이팅했다. 각국의 쟁쟁한 아티스트들이 세계인의 스포츠제전인 올림픽을 테마로 총 9점의 미디어 작품을 만들어낸 것. 따라서 모두 신작이다.

참여작가는 한국의 미디어아티스트 김수자(Kimsooja), 천경우(Kyungwoo Chun), 정연두(Yeondoo Jung)를 비롯해, 일본의 코타 에자와(Kota Ezawa)와 히라키 사와(Hiraki Sawa), 중국의 수잔 푸이 산 록(susan pui san lok)과 차오 페이(Cao Fei), 영국의 에밀리 워디올(Emily Wardill), 독일의 토스텐 라후시먼(Torsten Lauschmann) 등이다. 

 


전세계에서 203개국이 참가하는 2012 런던올림픽은 ‘문화올림픽’을 지향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제전을 치르면서 문화예술을 스포츠에 살짝 얹어, ‘Cultural Olympiad’로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블루 크리스탈 볼(Blue Crystal Ball)’이라는 현대미술 프로젝트이다.

눈부신 빛을 발하며 끝없이 돌아가는 크리스탈 볼처럼 현대의 올림픽을 다채롭게 해석해, 이를 빙글빙글 돌려가며(미디어아트의 특성은 일정 길이의 영상을 계속 돌려가며 실내외에 투사하는 것) 전세계에 보여주는 프로젝트다. 

 


그런데 이 아트프로젝트는 ‘메이드 인 코리아’, 즉 한국 작품이다. 한국 큐레이터가 기획하고, 한국 작가가 다수 참여했으며 한국 기업이 후원했으니 말이다. 과거 이같은 참신한 문화이벤트를 펼치는 선진국을 바라보며 부러워만 했던 우리가, 컬처 올림피아드의 주요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한 것을 보면 한국도 이제 문화예술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스포츠에서만 금메달을 따는 게 아니라, 문화예술에서도 이제 한층 성숙해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블루 크리스탈 볼’ 프로젝트에 참여한 각국의 아티스트들은 저마다 역량을 인정받아온 작가들. 이들은 자신만의 시각으로 스포츠축전을 재조명해 일반의 통념을 깬 새로운 영상 작품들을 만들었다.

이를테면 뉴욕과 파리를 오가며 활동 중인 한국작가 김수자(Kimsooja)는 올림픽에 참여하는 203개국의 국기를 부드럽게 연결한 35분짜리 영상작품 ‘To Breathe-Olympics’를 만들었다, 오륜기의 둥근고리에서 착안해 각 나라 국기의 디지털 이미지를 시작과 끝이 없는 싸이클로 전환시킨 것. 이 작품은 이미지가 반투명이기 때문에 여러 나라 국기의 색과 무늬가 서로 서로 잘 섞인다. 이는 올림픽이 추구하는 ‘공존의 정신’을 드러내며, 이상적인 세상에 대한 인류의 오랜 소망을 보여준다.
 

런던을 무대로 작업 중인 천경우(Kyungwoo Chun)는 10분 길이의 영상작품 ‘Perfect Relay:Citius, Altius, Fortius(더 빨리,더 높이,더 힘차게)’를 만들었다. 작가는 ‘더 빨리,더 높이,더 힘차게’라는 올림픽의 모토를 ‘불완전함, 실수’라는 역설로 재조명해 올림픽 정신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환기시키고 있다.

천경우는 각기 다른 모국어를 쓰는 여러 나라 어린이들에게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 중 자신이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골라 쓰게 했다. 그런데 글씨를 모두 왼손으로(왼손잡이는 오른손으로) 쓰도록 해 한결같이 비뚤비뚤 엉성한 글씨들이 이어진다. 그리곤 그 펜을 올림픽 계주 경기처럼 다음 사람에게 넘기게 했다. 결과적으로 불완전한 요소들이 연결된 이 글쓰기 퍼포먼스는 완전함을 지향하는 고리, 화합과 일맥 상통한다.

작가는 인간한계에 도전하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예기치않은 실수나 사고가 오히려 ‘창조와 긍정의 인식’을 증폭시켜 주는 것임을 이 단순한 ‘텍스트 쓰기’를 통해 암시하고 있다.

 


정연두(Yeondoo Jung)의 영상작품도 독특하다. 정연두는 11분 길이의 신작 ‘러브 룰렛(Love Roulette)’에서 사랑의 개념을 다루고 있다. 화면은 펜싱, 복싱, 레슬링, 유도, 태권도 등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싸우는’종목의 선수들을 슬로우모드 비디오처럼 보여준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 관중들의 시간은 완전히 멈춰 있다. 오직 두명의 선수만이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대결을 펼칠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너무너무 느려서 ‘사랑의 감정’이라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서로에게 닿지조차 않는다. 이 낯선 화면은 운동선수들이 공공장소에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대신 영상을 보는 관중과 함께 있는 듯한 야릇한 느낌을 주며 기이한 불일치를 드러낸다. 


일본 작가 코타 에자와(Kota Ezawa)는 올림픽 출전선수의 경기 장면을 공원이나 숲속,공장지대 등 엉뚱한 풍경에 얹어 이색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Here, There and Everywhere’라는 타이틀의 작품은 대단히 사색적이고 미학적이다.

또 중국의 챠오 페이(Cho Fei)는 가상도시 RMB시티에서 펼쳐지는 마라톤을, 영국의 에밀리 워디올(Emily Wardill)은 리듬체조 및 당구게임에 등장하는 구(球)에 촛점을 맞춘 색다른 영상을 만들었다. 

이번 ‘블루 크리스탈 볼’은 큐레이터 이지윤 씨가 올림픽 공식후원사인 삼성전자로부터 ‘뉴 미디어시대에 맞는 첨단 미디어아트 전시를 마련해보자’는 제안을 받으면서 비롯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미디어아트 전시 ‘꿈,백야’를 대구 도심에서 개최해 주목을 받았고, 이를 발전시켜 올림픽 기간 중 보다 심화된 미디어아트쇼를 계획했던 것.

그런데 IOC에서 “올림픽을 주제로 한 미디어아트 컬렉션은 세계 최초다. 매우 참신하고 시대와도 잘 맞는다”며 공식 프로그램으로 채택하겠다고 제안해왔다. 이에 런던올림픽 기간(7월28~ 8월13일) 중 영국 전역 22개소의 BBC 초대형 스크린에서의 상영이 추진되고 있다. 올림픽 개폐회식과 경기장면이 상영될 영국 각 도시 대형스크린을 통해 (스포츠중계 중간중간에) 상영됨으로써 ‘열린 미술’로 세계인과 만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이번 올림픽 미디어아트 컬렉션은 IOC 주관 아래 영국 두곳의 뮤지엄에서도 상영된다. 영국 남서부 서섹의 De La Warr Pavilion Marina(8월 11일~12월)와 맨체스터 A.N.D페스티벌 기간 중 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8월 29일~9월 2일)에서 특별전 형식으로 전시가 열린다.

이어 스위스의 로잔 IOC본부의 올림픽 박물관에 영구히 소장된다. 세계적 작가들의 독특한 작품 9점을 모은 이 작품집은 다음 세대들에게 올림픽의 가치와 이상을 예술을 통해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19일 밤 스펜서 하우스에서의 프리뷰 시사회에서는 이 영상작품을 IOC에 헌정하는 기념식도 함께 열렸다. 사진제공=SUUM프로젝트, 삼성전자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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