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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퍼렇게 날이 선 중국미술..가오 레이 서울전

[헤럴드경제=이영란선임기자] ‘중국 현대미술’ 하면 인물이 화폭을 터질 듯 커다랗게 그려진 그림들만 떠올린다면 이제 오산이다. 한 때 전세계를 풍미하며 ‘시니컬한 인물화들의 성찬’으로 이뤄졌던 ‘차이나 아방가르드’와는 전혀 궤를 달리 하는, 새로운 현대미술들이 다각도로 시도되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가오 레이라는 젊은 작가의 작업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보는 이를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시퍼렇게 날이 서 있다. 거대 서사에서 이제 현대인의 내면으로 깊고 예리하게 들어간 그의 시선은 남다르다. 주목할만한 작가 가오 레이의 서울 전시가 청담동 아라리오갤러리(대표 김창일)에서 개막됐다.

바람이 잔뜩 들어간 고무침대 위에서 독수리(박제)가 먹이를 쪼아 먹고 있다. 고무침대에는 찌그러진 방독면이 연결돼 있다. 도대체 무슨 작품일까?
‘F-09151’이라는 이 설치작업은 티베트, 몽골 등 불교권 국가에서 성행했던 ‘조수장’을 소재로 한 가오 레이(32)의 작품이다. ‘조수장’은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천으로 덮은 다음 새들이 쪼아 먹게하는 풍습을 가리킨다. 길조인 독수리가 시신을 먹음으로써 죽은 자가 환생한다는 신앙에서 유래한 풍습이다. 


작가는 그러나 공기(생명을 상징)가 가득 찬 고무침대를 커다란 독수리가 뾰족한 부리로 쪼고 있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고도화된 문명사회에서 살아가느라 거의 혼을 빼앗기다시피 한 도시인의 삶이 이런 형국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듯하다. 

중국 현대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신예작가 가오 레이의 작품들이 한국에 왔다. 본질과 외형, 허구와 실재, 개인과 권력 등이 이원화된 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하며 병치와 비의인화 등의 기법으로 독특한 작업을 선보여온 그의 작품은 미래 중국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가오 레이는 중국 정부가 1가구 1자녀 정책을 편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 ‘바링허우(八零後) 세대’에 속하는 작가. 중국의 급격한 경제성장의 수혜자로, 물질적 풍요 속에서 자란 바링허우 세대 작가들은 이전 세대와는 달리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이며 소비지향적인 동시에 개방성과 합리적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

특히 전 세대 작가들이 회화와 조각 등에 주력했다면 이들은 설치, 미디어, 회화, 사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들의 주제를 펼치고 있다. 가오 레이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현실 공간에서의 조각, 설치작업에 그런 장면을 그린 회화를 연결시키는가 하면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거침없이 넘나들며 기발하면서도 예리한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 3m가 넘는 거대한 설치작품에서부터 사진까지 총 22점의 신작이 나왔다. 작품 ‘T-3217’은 알루미늄 봉에 매달린 4개의 그네로 이뤄졌다. 각각의 그네는 여성의 골반 형상으로, 그 뒤에는 신생아의 머리를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그 자신 제왕절개로 태어난 작가는 출생부터 인공적 시술에 의존해야 했던 자신의 내밀한 스토리를 통해 인간의 출생과 죽음, 그리고 윤회 등을 형상화하고 있다. 


힘차게 달려야 하는 기린의 다리에 금속체인을 칭칭 감고, 몸통에는 삼각형의 견고한 철제집을 만들어 씌운 작품 ’M-275’도 눈길을 끈다. 욕망을 철저하게 거세당한 동물을 통해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 또한 비슷한 신세가 아닐런지 반문하게 하는, 섬뜩한 작품이다.


이처럼 가오 레이의 작업은 동시대의 사회ㆍ문화적 상황과 현실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상현실, 또는 역설적 세계를 빚어내 관람자에게 인식의 틀을 넓힐 것을 주문하고 있다. 8월19일까지. 02) 541-5701 사진제공=아라리오갤러리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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