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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켈란젤로 키운 伊조각도시,한국작가를 품다
[헤럴드경제=이영란 기자]‘르네상스의 천재조각가’ 미켈란젤로(1475-1564)를 키워냈던 세계적인 조각의 메카가 한국작가의 작품을 품었다. 한국 출신의 조각가 박은선(Park,Eun Sun)은 이탈리아 북서부 토스카나 주(州)의 포르테 데이 마르미 시(市) 초청으로 7월 14일(현지시각)부터 8월 12일까지 약 한달간 조각전을 연다.


경희대 미대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라 토스카나 지역에서 활동 중인 박은선(47)은 올해로 이탈리아에서 작업한지 꼭 20주년을 맞는다. 이에 포르테 데이 마르미(Forte dei Marmi) 시는 박은선의 이탈리아 활동 20년을 축하하는 대규모 조각전을 열어준 것.

박은선은 포르테 데이 마르미 시(市) 해변의 유서 깊은 별장인 ‘파운데이션 빌라 베르텔리’의 야외정원과 실내에 총 75점의 조각을 전시했다. 너른 야외정원에 15점의 대작을 설치하고, 내부 전시실에 60여점의 조각을 내걸었다. 통상적으로 이같은 전시는 작가 자신이 공간을 빌려 개최하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박은선은 시(市)가 나서서 이탈리아 활동 20주년 기념전을 열어줌으로써 이탈리아에서 작가로서의 위치와 명성을 가늠케 하고 있다. 전시에 출품된 작품은 박은선이 1990년대에 제작한 초기작품에서부터 최근작까지 망라돼 작가의 지난 20년 궤적을 살필 수 있다. 



박은선은 현재 이탈리아 중서부 토스카나 주(州)의 해변도시 피에트라 산타(Pietra Santa)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도시는 세계적인 조각의 도시다. ‘피에트라 산타’라는 이름조차 ‘성스러운 돌’이라는 뜻이며, 바로 인근에는 산(山) 자체가 몽땅 대리석덩어리인 까라라(Carrara)가 위치해 있다.

질 좋은 대리석이며 온갖 작업용 석재들이 모여드는 곳이 이탈리아의 피에트라 산타여서 이 지역은 ‘조각의 메카’로 불린다. 헨리 무어, 마리노 마리니,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등이 이 곳에서 작업했다. 요즘도 페르난도 보테로, 줄리아노 반지 등의 유명 조각가들이 이곳에서 작업하고 있으며,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마크 퀸같은 작가들도 석조작업은 이곳 공방에서 한다.



바다를 끼고 있는 이 풍광 좋은 도시는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1475~1564)가 작업했던 도시라는 점에서 더 유명하다. 피렌체 근교 카프레제 출신인 미켈란젤로는 좋은 돌을 찾아 해변도시 피에트라 산타까지 찾아들었고, 그가 살았던 집 1층에는 요즘도 카페가 성업 중이다. 포르테 데이 마르미 시는 피에트라 산타 바로 옆의 작은 위성도시로, 피에트라 산타에 공방을 두고 있는 유명작가들이 대부분 이 지역에 살고 있어 사실상 명품 조각도시와 같은 권역인 셈이다.



조각가 박은선의 이번 20주년 기념전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현대미술 중 조각 분야에선 특별히 자부심이 높은 이탈리아의 조각 메카에서 시(市)정부가 외국 작가의 대규모 작품전을 주최했다는 점이 우선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로서도 영광이며, 한국현대미술, 즉 ‘K-Art’의 독창성과 완성도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더구나 전시가 열리는 포르테 데이 마르미 시의 빌라 베르텔리는 유럽 각국의 부호들이 여름 휴가를 위해 찾는 휴양도시여서 이곳에서의 전시는 유럽 작가들도 서로 탐내는 전시다. 따라서 이번 박은선의 전시는 이탈리아 뿐 아니라 스위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에도 고정 팬을 두고 있는 박은선의 이름을 더욱 널리 각인시킬수 있는 좋은 기회다.



박은선을 초청한 움베르토 부라티(Umberto Buratti) 포르테 데이 마르미 시장은 “우리(이탈리아)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존하고 전시하는 것과 함께, 국제적 명성의 작가 작품을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선보이는 것도 중요해 박은선을 초청했다"며 “박은선의 작품은 지역 전통과 국제미술의 이질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우리 시가 추구하는 ‘융합’의 정신에 잘 부합된다”고 평했다.

빌라 베르텔리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은 건축물인 빌라와 야외공간과의 긴밀한 관계를 이루며 실내외에 조화롭게 배치됐다. 대리석과 화강암을 섬세하면서도 열정적으로 다뤄온 박은선의 이탈리아에서의 20년 작업을 집대성한 이번 전시는 안과 밖, 내부와 외부, 형상과 개념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잘 보여준다. 이를 통해 작가는 감상자와 진솔하게 소통하길 원하고 있다.



까라라국립아카데미를 졸업한 이래 조각도시 피에트라 산타에서 작업해온 박은선은 두 가지 색의 대리석판을 번갈아 쌓아 올려 둥근 탑을 이루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조각은 기하학적인 세련미와 함께 음과 양, 직선과 곡선이 한 작품 안에 살아숨쉬고 있어 ‘동양적 추상조각’으로 평가되곤 한다. 특히 작품 중간 중간에 의도적으로 만든 균열(틈)은 일종의 ‘숨통’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작가는 "켜켜이 높게 쌓아올린 대리석판을 일부러 바닥에 내던져 균열을 만드는데, 꽉 막힌 것에 숨통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며 "말끔한 서양의 조각과는 달리, 살짝 벌어진 그 틈에서 동양적 여유와 생명력을 읽는다는 평을 많이 받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들어 그의 작업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하나의 작품에 곡선과 직선을 함께 어우리게 한 작업들은 그 조화로운 기하학적 선들이 남다른 완결성을 지니며 또다른 조형적 미감을 전해준다. 또 하나의 창문처럼 이뤄진 조각들은 그 창을 통해 안과 밖, 나와 타자, 현실과 이상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엮어지는 듯해 신선한 하모니를 듣는 것만 같다.



박은선은 지난 2007년에도 한국인 최초로 피에트라 산타 시 초청으로 해변공원에서 대규모 전시를 가진바 있다. 또 2009년에는 이탈리아의 유명 조각미술관인 마리노마리니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작가는 "피에트라 산타 지역은 좋은 돌을 원없이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조각도시여서 작가로선 늘 끊임없이 자극을 받곤 한다. 조각가로선 가장 치열한 작업의 무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세계 각국에서 너무나 많은 작가들이 몰려들어 끝까지 살아남기란 더없이 힘든데 어느새 20년을 맞았다"며 "그 20년을 기념하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전시를 시(市) 주최로 열게 돼 너무 기쁘다"고 밝혔다.


그의 작업에 대해 이탈리아의 미술평론가 엔리코 마테이(Enrico Mattei)는 "박은선은 우리가 현존하는 형상에서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을 추구한다. 그의 작품 뒤에는 항상 인간이 있다. 시선을 내부로 돌려, 인간 내면의 영혼을 표현하고자 한 개념은 박은선의 예술적 탐구의 주요맥락"이라고 평했다.


또다른 미술평론가인 루치아노 카프릴레(Luciano Caprile)는 "박은선의 작품은 곡선에서 생긴 긴장감이 일시적 감각을 강조하는 얇은 틈을 따라 널리 퍼지며 작은 구체들의 집합을 이룬다. 작품은 작가 내면의 물적 형상, 철학적 의미로부터 출발해 동양과 서양이 결합된다"며 "저 머나먼 우주의 숨결, 인간의 모험에 대한 위로와 설명을 박은선의 조각은 눈과 가슴으로 느끼게 한다"고 평하고 있다.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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