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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김훈을 사로잡았던 비틀즈,그 꿈은 유효하니..
[헤럴드경제=이영란 기자] “나는 1948년에 한반도 남쪽에서 태어났다. 내가 세 살 때 전쟁이 터졌다. 엄마는 나에게 젖꼭지를 빨리면서 부산으로 피난 갔다. 싸우던 양 쪽이 모두 지쳐서 전쟁은 멎었다. 서울에 돌아오니, 마을과 학교는 부서져서 가루가 되었고 먹을 것이 없었다.

박정희 소장이 한강을 건너왔다. 그 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박소장은 중학생들의 머리카락을 박박 깎도록 명령했다. 아침 조회시간에는 전교생이 운동장에 도열했다. 무릎팍같은 머리 통에 아침햇살이 튕겨졌다. 


군사정권의 혁명공약과 교육헌장이 온 나라를 쾅쾅 울렸다. 파괴와 야만의 잔해는 곳곳에 널려있었다. 군가와 망향가, 삼팔선, 철조망, 피난열차, 북진통일, 끌려간 남편, 두고 온 어머니, 헤어진 누이를 노래하는 전쟁가요가 내 어린 날의 노래였다. 나를 길러준 것은 팔할이 뽕짝이다(서정주 쪼로). 트로트와 지루박, 곡마단의 트럼펫, 유랑악사의 아코디온, 소풍 가는 날의 하모니카, 바람난 여자들의 블루스가 그 시대 대중의 정서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 때, 비틀즈가 나타났다. 비틀즈의 출현은 천지개벽과 같았다. 리버풀의 어린 영웅들은 더벅머리를 흔들고 기타를 치면서 ‘I wanna hold your hand’, ‘Love me do’를 노래했다. 나와 내 친구들은 미친 듯이 비틀즈를 따라서 노래했다. 학교에서, 집에서, 골목에서, 빵집에서, 방과 후의 공터에서…… 


그 노래는 자유이며 희망이었고 저항이며 그리움이었다. 비틀즈는 여기가 아닌, 또 다른 세상이 있어야 한다는 꿈을 나에게 심어주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그 꿈은 아직도 유효하다. 아직도 미완성이다. 미완성이기 때문에 꿈은 유효하다. 비틀즈에 이끌려서, 내 청소년 시절은 군가와 찬송가와 뽕짝의 정서로부터 해방되었고, 나는 사춘기에서 청년기로 나아갔다. 짓밟히고 배고프고 억울하고, 그리고 신바람이 나던 시절이었다”. <김훈 ‘비틀즈와 나’ 전문>


소설가 김훈(64)이 비틀즈에 대해 쓴 글이다. 연신 귓전을 울리는 전쟁가요와 트로트 선율을 듣고 자라던 김훈은 ‘비틀즈의 등장은 천지개벽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어디 김훈 뿐이랴.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비틀즈는 단지 서양의 팝가수 이상이었다. 그들의 음악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은 젊은이가 과연 있었을까?.


록그룹 ‘비틀즈(The Beatles)’는 해체된지 40년이 지났음에도 전세계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비틀즈 결성 50주년을 맞아 서울 롯데갤러리에서 ‘비틀즈 50년-한국의 비틀즈 마니아’전이 10일 개막됐다.

오는 8월 5일까지 롯데백화점 본점 12층의 롯데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에는 비틀즈가 발표했던 오리지널 앨범과 국내에서 발매됐던 앨범, 불법 복제앨범 등이 모두 모였다. 또 비틀즈의 사진, 영화자료, 잡지, 포스터 등 국내에 전해지는 비틀즈 관련자료들이 망라됐다. 



아울러 고근호, 김선두, 김형관, 서상익, 이기일, 이동재, 이호진, 홍경택 등의 작가들이 비틀즈로부터 영감을 얻어 제작한 다양한 현대미술품을 출품했다. 출품작들에서 미술가들이 얼마나 오랜 시절 비틀즈와 비틀즈의 음악을 흠모해왔는지, 얼마나 절실했는지 느낄 수 있다. 전시에는 앞서 소개한 소설가 김훈의 ‘비틀즈와 나’ 육필원고도 나왔다.

지난 1962년 영국 리버풀에서 더벅머리 네 청년(존 레넌, 폴 매카트니,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이 결성한 록그룹 비틀즈는 1970년 해체될 때까지 무려 280여 곡의 음악을 발표하며 세계 팝음악계에, 아니 문화계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음악은 신화를 넘어 영원한 ‘클래식’의 반열에 올랐다.


이번 전시는 롯데갤러리 영등포점(10일부터 8월6일까지), 부산 광복점(8월8일부터 9월2일까지), 광주점(9월19일부터 10월4일까지)에서도 열린다. 전시기간 중 비틀즈 트리뷰트 밴드인 ‘더 멘틀즈(The Mentles)’와 기타 신동 정성하 군의 특별공연도 마련된다. 사진제공=롯데갤러리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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