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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란 선임기자의 art & 아트> 中 3040 작가들…은근함 속에 ‘칼날’을 품다
소격동 학고재갤러리 ‘유희적 저항’展
장샤오강·쩡판즈 등 50대 선배들
무뎌진 현실비판의식에 실망

개인의 삶까지 길들이려는
中정부에 대한 반감 표출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급격히 말을 갈아탄 중국 사회의 혼란상을 대형 인물 그림을 통해 신랄하게 풍자했던 중국의 현대미술, 이른바 ‘차이나 아방가르드’는 세계에 큰 파란을 일으켰다.

특히 톈안먼 사태를 직접 경험했던 장샤오강, 쩡판즈, 위에민준, 왕강이, 팡리준의 냉소적 그림들은 엄청난 이슈를 몰고 왔다. 그림 값 또한 2000년대 초반에 비해 수십, 수백배 올랐다.

‘차이나 아방가르드’의 핵심 주자로 ‘4대 천황’이라 불리는 쩡판즈, 장샤오강, 위에민준, 왕강이는 이제 세계 미술계를 그들의 발아래에 두고 있다. 중국의 거부와 각 지역 미술관이 그들의 그림을 구하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것. 그러나 스타 덤에 오른 후 이들의 작업은 ‘날이 무뎌졌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뒤를 이을 차세대 주자는 과연 누구일까?

중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소개하는 ‘유희적 저항(Cynical Resistance)전’이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개막됐다. 10여년 넘게 중국 미술 현장을 누벼온 큐레이터 윤재갑 씨가 기획한 이번 전시에는 예링한, 루쩡위엔, 마치우샤, 짱쿤쿤, 투홍타오, 판지엔, 하오량, 황징위엔 등이 참여했다.

이 8명은 작금의 중국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차세대 주자로 손꼽히는 작가들이다. 1970~80년대에 태어나 중국의 격변기에 유년기를 보낸 이들은 자신들이 흠모했던 ‘차이나 아방가르드’들이 거대자본과 매너리즘에 함몰되자 실망감을 느끼고, 역으로 중국의 정치ㆍ사회 이슈에 대해 거리를 두고 있다. 

예링한의 영상작업‘ Last Experimental Flying Object’. 직접 그린 수묵화와 사진을 합성해 관조하는 듯한 장중한 영상을 만들었다.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그런 까닭에 이들의 작업은 지극히 사변적이고 유약해 보인다. 그러나 기획자인 윤재갑 씨는 “문화평론가 왕샤오밍이 이들이 윗세대보다 덜 정치적이고, 덜 투쟁적이라 규정짓는 것에 대해 반기를 들었듯 이들은 겉으로 보기엔 진지함이 결여된 듯하나 사회와 인간에 대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절실하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주제가 좀 더 세분화되고 기법이 다양해졌으며 내적으로 절규하고 있는 게 차이점이라는 것.

학고재갤러리 본관 초입에 내걸린 판지엔의 어둡고 묵직한 그림이 그 좋은 예다. 인간의 내면과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건사고 장면을 ‘낯선 풍경화’로 담아낸 그의 회화는 더없이 직설적이었던 선배들에 비해 한 단계 침잠한 듯 조용하다. 그러나 고뇌의 깊이감이 만만찮다. 짱쿤쿤의 그림 또한 풍자의 묘미가 남다르다. 중국 정부가 설치한 10여종의 운동기구를 마치 고대 화석처럼 꽁꽁 묶어 표현했다. 운동기구 설치는 개인의 삶까지 길들이려는 정부의 고도 전략일 수 있다고 반문하고 있는 것.

‘쓰촨 표현주의’의 차세대 주자인 투홍타오는 아미산의 나무들을 성찰한 끝에 세련된 풍경화를 그려냈다. 또 젊은 여성 작가 마치우샤는 예리한 면도칼을 입에 물고, 마치 질풍노도처럼 달려가는 중국 사회 속 위태로운 개인 또는 약자의 삶을 영상으로 들려주고 있다.

결국 1970~80년대에 태어난 이 작가들은 직설적으로 세태를 비판하기보다는 한 바퀴 슬쩍 돌려 은근히 저항하고 있어 흥미롭다. 전시는 이달 25일까지. 출품작은 회화, 조각ㆍ설치, 영상 등 60여점. (02)724-1524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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