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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재환 교수의 ‘인문’의 창으로 바라본 ‘과학’
생명연장을 꿈꾸는 인간, 딜레마에 빠지다

종교철학박사이자, 고려대학교의료법학연구소 노재환(51) 연구교수와 인터뷰 선약 후, 인터넷을 통해 그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를 조사할 수 있었다. 먼저 알아보는 과정에서 유수의 언론을 통해 기고된 칼럼들이 눈길을 끌었다. 30여 편이 넘는 칼럼들 속에서 명리학의 심오와 불교학의 심해를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가 어떤 인물이고, 왜 주목받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여의도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의료법학’이라면 매우 광범위 하다고 여겨지는데요. 그렇다면 현재 의료법학 중에서도 어떠한 분야를 연구 중이신지요?”라고 조심스럽게 첫 질문을 던졌다.

“우선 의료법학 중에서도 생명윤리가 제 연구에 핵심입니다. 간단명료하게 설명하자면, ‘생명연장을 꿈꾸는 인간, 그리고 거기서 얻어지는 득과 실’ 이로써 딜레마에 빠진 인간들에 대해 연구 중입니다.”




그의 답변을 들으며 몇 번이고 ‘잠시만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 이유는 철학과 과학 그 중 어느 한 분야의 기초지식이 없는 기자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답변이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더 이상 그를 인터뷰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대학새내기가 첫날 수강하는 것처럼 일단 노 교수의 길고 긴 설명을 녹취하고 메모해 가면서 열심히 들었다.

“좀 상투적이긴 합니다만, 과학기술 발달과 함께 기술의 윤리성 찬반논란은 늘 있어 왔지 않습니까. 그러나 인간복제로 대변되는 유전공학의 파괴력은 윤리성 논쟁이라기보다는 인간성 논란이라는 점에서 윤리학자보다는 철학자 그 중에서도 종교철학자가 깊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죠. 그로인해 세계 유수의 철학자들이 종교적인 관점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고 다양한 형태로 논쟁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저는 ‘인류는 어떻게 시작됐고, 어떻게 진화했으며, 현재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앞으로의 행보는?’ 이에 대한 근원적이고도 철학적인 답을 종교적인 측면에서 찾고자 합니다. 우선 과학과 철학의 뿌리는 같다고 봅니다. 

과학을 통해 기본원리를 규명하고 이를 철학적 테마를 놓고 풀어낸 것. 즉 생명 순환의 고리로 엮여진 지구, 이로써 환경과 생명의 가치에 대한 틀을 종교적인 측면에서 철학적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제 연구의 핵심입니다.”
여기까지 경청한 후, 기자가 끼어들었다.


“교수님 그러니까 건강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에 의해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면서 예측의학에 의한 맞춤치료의 시대가 도래 했고, 이로 인해 삶의 질 향상과 생명연장이라는 꿈은 실현됐지만 여러 측면에서 적지 않은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죠?”

노 교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네 그렇습니다”라며 말을 이었다.
“인간게놈지도 완성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읽어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그의 저서에서 ‘우리는 벌레에서 인간으로의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우리 중 많은 부분이 여전히 벌레이다’라고 금언을 남겼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이성이 발달하면서 신의 존재는 실존적 자아를 찾아가려는 인간의 노력 앞에 죽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의 예언이 적중했습니다. 지난 1990년 시작된 인간게놈 프로젝트(HGP)에 이어 1996년 영국에서 탄생한 복제양 돌리가 그 것입니다. 그 후 유전자 연구는 동물 실험을 넘어 인간에 대한 연구로 진행되면서 인류사에 엄청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파장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인간게놈 지도의 완성은 여러 면에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볼까요. 먼저 의학적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파급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됩니다. 각종 유전성 질환의 보고인 기형 유전자를 보다 쉽게 발견하고, 이를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는 방법론을 보다 효율적으로 제시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죠. 경제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게놈 지도의 완성은 신약 개발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생명공학산업 및 제약 산업을 급속히 성장시킬 것입니다. 질환의 예방이나 치료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약물을 예전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로 찾게 될 것이고, 그 성공확률도 매우 높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윤리적 측면에서 보면, 인간게놈지도가 완성된 후, 인간의 성격을 판단할 수 있는 유전자나 약물중독 관련 유전자, 암 관련 유전자, 기타 질환관련 유전자 등에 관한 개인적인 유전정보가 노출될 것이고, 이로 인해 보험•고용 결혼 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침으로써 개인의 존엄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죠. 이러한 문제들이 앞으로 새로운 사회적 갈등이 될 소지가 크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서야 노 교수가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실질적으로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노 교수가 다시 한 번 환한 미소를 지으며 “모든 과학의 발전이 그러했듯이 인간게놈 지도 완성은 다방면에 걸쳐 우리의 미래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 영향이 인류의 행복에 긍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인간 본래 가치에 중심을 두고 얼마나 현명하게 이를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달라진다는 것에 괄목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어 “이제 더 이상 자연에서 좋은 것만 얻으려는 시대는 지났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가 환경을 살려가지 않으면 그 무너짐에 첫 번째 희생양은 바로 인간이 될 것이고, 앞선 세대가 우리에게 누리고 즐길 수 있는 오늘의 깨끗한 환경과 생명의 가치를 엮을 틀을 물려주었듯이, 우리도 내일의 세대에게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과 생명의 가치를 엮을 만한 튼실한 틀을 물려줄 책무가 있다고 봅니다”라며 경고의 메시지를 남기며 인터뷰를 마쳤다.


이정환 기자/lee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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