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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국 돌파위해 여야수장‘영수회담’어렵게 마련…전문가들“등록금 등 민생현안 풀‘통큰 리더십’발휘”주문

역대 정권 꽉 막힌 정국 돌파구로 활용

대부분 웃으며 만나 뒤돌아 서선 딴소리

MB·손학규 회담 날짜 조율 신경전 등 우여곡절

국익 우선 전제로 ‘그들만의 원칙’ 과감히 버려야






# 1. 지난 18일(현지시간) 한국 정가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 미 워싱턴 DC 외곽 앤드루스 공군기지 내 골프장에서 연출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공화당 원내대표인 존 베이너 연방 하원의장과 라운딩하며, 재정적자 감축 등 여야 간 벼랑 끝 승부의 긴장을 늦추는 망중한을 즐겼다. 베이너는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국빈 만찬에 세 번 초청받았지만 번번이 거절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굴하지 않고 골프 회동을 제안, 회동을 성사시켰다. 오바마 대통령은 경기 중간에 베이너의 등을 두드리는 등 친근감을 표시하며 이날 만남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정치는 타협의 산물이며 이를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먼저 인간적인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 2. 지난 2월 초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방송좌담회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게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그러나 회동은 보름여의 사전 조율이 진통 끝에 무산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청와대는 당시 “등원 전 회담하자는 조건을 걸어놓고 청와대가 성의를 보이지 않은 것처럼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민주당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손 대표는 “날치기 국회에 대한 대통령의 유감 표명 한마디라도 국민에게 들려 드리고자 했던 저희의 충정이 오히려 순진했다”며 청와대를 겨냥했다.

지난 13일 이번에는 손 대표가 먼저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민생을 논의하자는 명분이었고, 청와대도 일단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순조롭게 이뤄질 것처럼 보였던 영수회담은 이번에도 회담 시기와 의제 조율을 놓고 난항을 거듭하다 겨우 27일 개최로 결정됐다.



영수회담은 정치 파트너인 여와 야의 최고지도자가 국민을 대표하는 자격으로 만나 꽉 막힌 정치 현안을 풀어갈 해법을 찾는 적극적인 정치 행위다. 적어도 선진 정치국들에서는 그렇다. 오바마 대통령 사례에서 보듯 선진 정치국의 지도자들은 형식이나 시기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를 만난다.

대한민국 정치사에도 막전, 막후 정치를 거론할 때마다 등장하는 것이 영수회담이다. 서슬이 퍼렇던 3공화국 시절에도 영수회담은 정치 긴장을 이완시키는 윤활유 역할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3공화국 당시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와의 회담에서 눈물을 보였고, 이철승 대표와의 회담에서는 야당이 당사를 지을 수 있도록 행정 지원을 하기도 했다. 

비록 정치적 적이지만 통 큰 합의를 이끌어내고자 할 때마다 양측은 머리를 맞대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영수회담은 상호 비방의 정치쇼로 전락하고 있다.

가까운 예로 2005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만나 대연정을 논의했지만 의견 차이만 확인했고, 회담 이후 노 대통령은 대연정 제안을 사실상 접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김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일곱 차례나 영수회담을 가졌지만 상호 불신의 골만 키웠다. 한나라당 주변에선 ‘7번 만났으나 7번 뒤통수를 맞았다’는 뜻으로 ‘칠회칠배(七會七背)’란 말이 등장할 정도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정치권과의 소통이 주요 국정과제로 거론되고 있지만, 영수회담은 가뭄에 콩 나듯 임기 초 두 차례 열렸을 뿐이다. 2008년 5월 이 대통령과 손 대표(당시 통합민주당 대표)가 만났으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과 한ㆍ미 자유무역협정( FTA) 비준안 처리 등을 놓고 이견만 확인했다. 그해 9월 정세균 대표와의 만남에서도 회담은 성과없이 끝나 야당 내에서는 당의 선명성만 훼손당했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후 영수회담 제안이 오갈 때마다 청와대는 “야당이 정략적으로 회담을 활용하려 한다”고 지적했고, 야당은 야당대로 “대통령이 속이 좁다”고 비판하기에 바빴다.

청와대는 “청와대와 대통령은 (야당대표와의 회담에 대해) 항상 열려 있다”면서 “민생을 위한 길이라면 언제라도 회담을 열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손 대표가 제안해 오는 27일 열리는 민생회담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19일 오전 민주당 김동철 대표 비서실장과의 전화 접촉에서 29일 회담 개최를 목표로 의견을 조율하자는 뜻을 전했으나, 민주당은 내부 논의를 거쳐 “날짜를 앞당겨달라”며 청와대에 다시 공을 넘겼다.

이에 청와대 측은 “일방적으로 날짜를 공개하고 비난하면 이야기하지 말자는 것”이라면서 “상대방도 감정이 있어 대응을 하면 점점 삐걱댄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같은 청와대 측의 움직임을 감지한 손 대표도 “지금은 대통령이 느긋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쓴소리가 듣기 힘들겠지만 마음을 열고 함께 의논하면서 빨리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면서 “(회담을) 차일피일 미루는 동안 서민·중산층의 삶은 하루하루 더 어려워질 뿐”이라고 청와대를 압박했다.

회담 전에 이미 기싸움을 한판 벌인 터라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국민적 관심이 높아 회담은 열릴 가능성이 높지만 결과를 낙관하기 어렵다”면서 그 이유로 “회담에 임하는 당사자들이 국익 우선이라는 대원칙을 전제로 해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회담에 임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영수회담이 의미 있는 만남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정치적 손익계산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현재까지는 양측의 ‘통 큰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달중 서울대 교수는 “물가, 등록금 등 시급한 현안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영수회담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명박 대통령과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자신들의 원칙을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며 “그게 역설적 관용의 정치”라고 지적했다.

<양춘병 기자@madamr123>
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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