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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윤희의 현장에서] 민의의 전당의 민낯

# 다닥다닥 붙은 하원 본회의장 좌석이 가득 들어찼다. 2층 갤러리(방청석)에도 빈 자리는 드물었다. 500여명에 달하는 미 연방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본회의장에 들어선 후 연단에 설 때까지 4분여간 기립박수를 쳤다. 미 의회 상하원 재적이 535명임을 고려하면 의원 대부분이 참석한 셈이다. 당연직 상원의장인 캐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뿐만 아니라 여야 지도부가 모두 참석해 윤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날 44분간 이어진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 동안 터져 나온 박수는 모두 56차례다. 이 가운데 기립박수만 23번에 달했다. 불과 약 4주 전인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윤 대통령의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 풍경이다. 기대보다 유창했던 윤 대통령의 영어실력보다 놀라웠던 것은 예상을 뛰어넘는 미국 의원들의 뜨거운 반응이었다.

# 재적 300명 중에 본회의장을 채운 인원은 여야를 합쳐도 160여명. 절반을 넘겼다고 위안 삼기엔 부끄러운 장면이다. 지난 17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여의도 국회에서 연설하는 23분간 나온 박수는 15차례, 연설 전후에는 1분여간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단순히 박수의 횟수를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다. 외국 정상의 우리나라 국회 연설은 6년 만이었음에도 이를 대하는 의원들의 태도가 문제다.

이날 트뤼도 총리는 “감사합니다”라는 한국말로 운을 뗐다. 수교 60주년을 ‘환갑’에 빗대 “한국 문화에서 60세라는 나이는 또 다른 사이클 시작의 의미”라며 “‘환갑’이라는 관점에서 새로운 사이클을 가장 친한 친구로서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한국 문화를 세심하게 고려해 연설문을 쓴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진지하게 경청하는 의원들을 찾기 어려웠다. 트뤼도 총리의 연설 도중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사진을 찍고 옆자리 의원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도중에 자리를 뜨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심지어 집권여당 당대표는 이날 오전 언론사 행사 참석을 위해 트뤼도 총리 연설에 불참했다.

우리 국회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4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국회 화상연설 당시에는 불과 60여명의 의원만 자리를 지켰다.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침공을 받은 후 유럽연합(EU)을 시작으로 각국 의회에서 대면 또는 화상으로 연설을 했는데 우리나라가 24번째 국가였다. 앞선 23개 국가의 의원들은 대부분 참석해 연설을 경청했다. 일본 역시 재적 710명 중 500여명의 의원이 참석했다. 당시 ‘외교 결례’라며 질타가 쏟아졌지만 우리 국회는 1년 후에도 달라진 점이 없다. 때 되면 ‘의원 외교’를 부르짖으며 해외출장 나가기 바쁜 모습에 국민의 대표, 민의의 전당으로서의 최소한의 품격도 찾기 어렵다.

외국 정상의 국회 연설 때마다 반복되는 텅텅 빈 빈자리가 민망하다. 부끄러움은 왜 국민 몫이 돼야 하나.

yun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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