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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이 곧 음악이자 스토리”…‘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훌리오 몽헤 인터뷰
“춤으로 캐릭터 서사 보여줘야”
장르 초월 음악에 어우러진 안무
66년이 지나도 여전히 ‘혁신적’
“변화를 위한 외침ㆍ인간성의 회복”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공연 장면. [쇼노트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태양도 달빛도 뜨겁게 춤추며 빛나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넘버 ‘투나이트’ 중) 바로 오늘 밤, ‘춤의 전쟁’이 시작된다.

1950년 여름, 이민자 집단이 거주하는 미국 뉴욕 뒷골목. 다닥다닥 붙은, 낡고 허름한 공동주택을 층층이 연결하는 아슬아슬한 비상계단 마저 오브제가 되는 무대. 혐오와 갈등을 온몸으로 살아낸 두 이민자 청년 집단 ‘제트’(폴란드계 청년 갱단)와 ‘샤크’(푸에르토리코 이민자 청년 갱단)의 대결이 시작된다.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의 ‘프롤로그’(1막 첫 번째 신) 장면. 한 사람씩 무대 위로 미끄러지듯 긴 팔과 다리를 쭉쭉 뻗고, 발레와 현대무용이 어우러진 몸짓으로 대결을 시작한다. 대사 한 마디 없이 보여주는 ‘몸의 대화’는 이 작품의 줄거리를 상징적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춤 좀 그만 춰! 당신들은 극 속 인물들(캐릭터)이야. 당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히 알아야 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2월 26일까지·충무아트센터)의 안무와 협력 연출을 맡은 푸에르토리코계 안무가 훌리오 몽헤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장면을 리허설하는 동안 제롬 로빈스는 끊임없이 이렇게 말했다”고 말했다.

몽헤 “춤으로 캐릭터의 서사 보여줘야”

195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레너드 번스타인(작곡), 스티븐 손드하임(작사), 제롬 로빈스 뉴욕시립발레단 예술감독(안무), 아서 로렌츠(극작) 등 이른바 ‘어벤저스’가 뭉친 작품이다. 훌리오 몽헤는 제롬 로빈스의 오리지널 안무 계승자로, 지난 2007년 이후 15년 만에 재연한 한국 공연이 무사히 막을 올릴 수 있도록 진두지휘한 주인공이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안무와 협력연출을 맡은 푸에르토리코계 안무가 훌리오 몽헤가 배우들을 지도하고 있다. [쇼노트 제공]

“‘프롤로그’ 장면의 과제는 배우들의 움직임 하나 하나가 연기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프롤로그를 통해 관객들이 작품의 전반적인 스타일이나 톤을 감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죠. 뿐만 아니라 이 장면을 통해 관객들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안무는 ‘아름다운 움직임’ 자체에 목적을 두기 보다, 각각의 인물들의 삶을 보여주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무대를 가로지르며 미끄러지는 두 팔, 꿈을 꾸듯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다리, 위협하듯 쏘아보는 눈빛… 동작에 연기가 더해지자 춤은 이야기가 됐다. ‘안무에 메소드 연기의 개념을 적용했다’는 것은 이 작품의 중요한 특징이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쇼노트 제공]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뮤지컬 계의 고전이다. 원작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 두 가문의 갈등을 1950년 미국 뉴욕으로 옮겨 두 이민자 집단에 속한 토니와 마리아의 사랑 이야기로 치환했다.

비극적 사랑은 뻔하고, 갈등은 불편하다. 혐오와 편견으로 얼룩진 이민사회의 갈등은 ‘언어 폭력’에 가까운 대사로 쏟아진다. 마음의 불편함을 지워내는 것은 황홀한 춤과 음악의 세계다. 번스타인은 클래식과 팝, 재즈 등 장르를 넘나드는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고, 그 음악 위로 발레와 현대무용, 재즈, 스윙, 맘보, 플라멩코 등 다양한 춤사위들이 총출동한다. 1957년에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6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혁신적이다.

노래와 춤이 서로 결합…몽헤가 안무·연출 겸하는 이유

“당대의 천재들로 불린 로빈스와 번스타인은 몇 개의 발레 작품을 통해 협업, 서로를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어요. 제롬 로빈스는 작곡에도 재능이 있어 음악적 언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었죠. 번스타인은 훌륭한 이야기꾼이기도 했고요. 그래서인지 모든 것이 아름답게 어우러지고, 움직임과 음악이 서로에게 속한 것처럼 느껴져요. 이 작품이 지금도 반향을 일으키고, 전 세계 어느 곳의 관객이든 작품의 빼어남과 정교함을 알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돼요.”

무대에서 안무는 단지 춤에 그치지 않는다. 제롬 로빈스 안무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춤이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데에 있다.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하고, 자신들이 누구인지가 작품 전반에 걸쳐 언제나 춤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기존 뮤지컬에서 춤은 ‘장식적인 장치’이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선 춤이 곧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서사다. 그는 “이 작품에서 춤은 음악이자 대사이며 노래 가사와 동등한 자격을 지닌 내레이션 도구”라고 말했다. 춤이 ‘스토리텔링의 요소’가 된다는 점도 못지 않게, 그것을 차원이 다른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것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특별한 지점이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쇼노트 제공]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작품 전체가 하나의 발레처럼 움직여요. 제롬 로빈스는 안무가이자 연출자로서 모든 서사적 요소들 사이의 결합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연속적인 방식으로 만들어냈어요. 이 작품이 오늘날 콘셉트 뮤지컬(이야기가 아닌 관계와 설정, 묘사 혹은 우화나 상징을 중심으로 극이 진행되는 뮤지컬)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이유죠.”

몽헤가 안무와 연출을 겸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 작품은 다른 뮤지컬과 달리 춤, 음악, 연기 등 모든 것이 상호 연결돼 있다. 특히 안무가 작품의 중요한 스토리를 관통하고 있기에 안무와 연출의 역할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그는 “이 쇼는 규모와 범위로 치면 대규모 오페라를 올리는 것과 같은 작업”이라며 “모든 팀원이 항상 작업 현장에 있으면서, 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배우 오디션 직접 참여…‘춤·노래·연기’ 3종세트 강조

이 무대를 완성하기 위해 몽헤는 개막 전 배우 오디션에 직접 참여했다. 무려 1000여 명이 몰린 오디션에선 ‘춤, 연기, 노래를 모두 할 수 있는 배우’를 선발했다.

“이 작품은 애초 노래를 위한 싱어 코러스와 춤을 위한 댄서 앙상블을 따로 두는 것이 아니라 한 배우가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쇼를 구상했어요. 뮤지컬 공연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모든 배우들이 춤, 노래, 연기의 ‘3종 세트’(triple threat)가 돼야 한다는 점을 의미했죠.”

2007년 한국 초연 이후, 15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오디션에서 훌리오 몽헤는 오래, 춤, 연기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배우들을 선발했다. [쇼노트 제공]

한국 공연에서도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배우’들을 찾았다. 더불어 퍼포먼스나 스타일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유연하게 해내는 배우들에게 높은 점수를 줬다. 그 결과 그는 “훌륭하고 탄탄한 3종 세트의 배우 그룹을 찾았다”고 했다. “발견의 과정을 목격하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지만, 어려운 점도 있었다.

그는 “한국의 뮤지컬 산업은 대부분 노래 위주 뮤지컬 (singing musical)을 제작한다”며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배우들도 있고, 뛰어난 댄서들도 있지만 한 작품에서 배우들에게 세 분야의 퍼포먼스(노래, 춤, 연기)를 모두 수행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춤, 연기, 노래 등의 3종 세트는 함께 개발되고 키워져야 하는 ‘퍼포먼스 근육’이에요. 이번 공연을 계기로 한국 뮤지컬 산업에서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같은 배우를 요구하는 더 많은 쇼를 위한 문을 열어주면 좋겠어요.”

‘웨스트…’는 무대 공연의 ‘진정한 축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음악과 춤, 1950년대로 데려가는 무대까지 공연예술이 담아낼 수 있는 많은 혁신을 보여준다. 고전의 사랑 이야기의 이면엔 도시의 슬럼화와 이민사회의 갈등, 일자리 경쟁 등 당대 미국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았다. 이를 통해 화해와 치유의 메시지로 나아간다. 뮤지컬은 물론 스티븐 스틸버그의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컨설턴트로도 참여한 몽헤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좋은 무대공연이 무엇인 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쇼노트 제공]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씨어터(무대 공연)의 진정한 축제예요. 멋진 음악, 숨 막히는 춤이 있고, 증오와 편견 속에서 죽지 않는 위대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요. 여전히 집단으로 가르기를 고집하는 세상과 싸우고 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울려 퍼지는 메시지입니다. 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변화를 위한 외침이자, 놓지 말아야 할 보편적 인간성을 일깨워주는 예술 작품이라고 믿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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