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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파게티 면발? 1315억에 팔린 '이 그림', 충격적 이유[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잭슨 폴록 편]
액션페인팅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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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작품,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 결국에는 가장 유명해진 작품을 함께 살펴봅니다.
잭슨 폴록, no.5(일부 확대)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피카소, 이 개자식!"

1947년 미국 뉴욕의 작업실. 한 화가가 그림을 그리다 말고 갑자기 욕설을 퍼붓습니다. 붓을 내팽개칩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습니다. "이따위 그림으론 그놈을 못 이겨. 이마저도 그 자식이 휘젓고 간 양식이야. 젠장, 혼자서 다 해 처먹고 있어!" 화가의 눈이 새빨갛습니다. 며칠 밤을 지새운 듯합니다. 분을 못 이기고 이젤을 걷어찹니다. 캔버스가 땅에 뚝 떨어집니다. 야심 차게 선보인 첫 전시회의 악몽이 다시 밀려옵니다. "이 사람도 피카소 따라쟁이야? 그 인간 기법을 베낀 느낌인데?" "피카소의 영향력이 엄청나군. 먼 미국 땅에서도 피카소 흉내를 내는 이가 있어!" 피카소, 피카소, 그놈의 피카소! 이 화가는 자기 말고 피카소만 찾는 목소리에 피가 역류했습니다. "이 자식아. 그놈이 잡배처럼 안 건든 게 없어서 그렇게 보이는 거야!" 귀를 잡아당겨 외치고 싶었습니다. 나름 성과도 있었지만,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넌 발버둥 쳐봐야 피카소 손바닥 안이야." 그날 이후 꿈만 꾸면 누군가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잭슨 폴록이 '드리핑(흘리기·dripping)'을 하고 있는 모습.

"또 망쳤어."

그는 휘청거립니다. 이젤에서 떨어져 바닥 위로 드러누운 캔버스를 봅니다. 우스웠습니다. 땅에 내리깔린 그림은 이제 뭘 뜻하는지 알아볼 수도 없었습니다. 얼룩덜룩한 장판 같았습니다. 씩씩대는 이 화가의 손끝에 맺힌 묽은 페인트 한 방울이 캔버스로 떨어집니다. 그렇게 두 방울, 세 방울…. 내려앉은 페인트는 제멋대로 찍힙니다. 어…? 그의 표정이 묘해집니다. "어디 갔어. 어디 갔냐고!" 이 화가가 내던졌던 붓을 찾아 거칠게 쥡니다. 붓을 페인트 통에 푹 담근 뒤 건져 올립니다. 색을 가득 품은 붓을 캔버스에 댑니다. 붓끝에 맺힌 페인트가 소나기처럼 후드득 쏟아집니다. 그의 동공이 커집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섭니다. 무언가에 홀려 춤을 추듯 캔버스 주변을 뜁니다. 내키는 대로 페인트를 마구 끼얹습니다. 이마저도 부족한지, 페인트 통을 훅 듭니다. 캔버스에 들이붓습니다. 땀으로 푹 젖은 이 화가는 캔버스를 멍하게 봅니다. 숨이 가빠집니다. "여보!" 잃어버린 결혼반지를 찾은 마냥 고함칩니다. 아내가 허둥지둥 들어옵니다. 그는 아내의 두 어깨를 쥡니다. "이런 거, 이런 건 본 적 없지? 이것도 그림 맞지?"

화가 잭슨 폴록(1912~1956)은 절망에 젖어있던 그때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을 봅니다.

이날 눈 뜬 '액션 페인팅'은 미술계에 회복할 수 없는 충격을 줍니다. 그렇게 미술은 돌아올 수 있는 지도를 불태운 채 현대의 땅으로 갑니다. 미술의 무대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집니다.

1315억원에 팔렸다, 미술계 ‘충격과 공포’
잭슨 폴록, no.5

어지럽습니다.

회색과 노란색, 갈색과 검은색 등 페인트가 온통 뿌려졌습니다. 모델은커녕 외곽선도 없습니다. 형형색색 거미줄이 한 소쿠리 쏟아진 듯도 하고, 인공위성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우주의 단면 같기도 합니다. 물감을 가득 채운 그림판도 떠오릅니다. 째려보면 화가의 거친 숨소리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잭슨 폴록의 1948년 작품 '넘버 5(No. 5)'입니다. 이게 그림이야? 어린애가 휘갈긴 낙서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 법하지요. 실제로 1949년 예술가 오소리오가 이 작품을 1500달러를 주고 사 왔을 때 "왜 이런 걸 사는 데 돈을 써?"라는 잔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2006년 11월, 멕시코 출신의 금융인 마르티네즈가 이 스파게티 면발 뭉치 같은 그림을 1억4000만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1315억원)를 내고 삽니다. 같은 해 6월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이 1억3500만달러에 팔렸는데요. 5개월 만에 미술품 최고가를 찍은 겁니다. 미술계는 충격과 공포에 빠졌습니다. 폴록이 이런 파란을 일으키기 전에는요. 고전주의부터 인상주의, 혹은 클림트의 그림처럼 직업에 긴 시간이 걸렸고, 한눈에 봐도 "예쁘다!"는 작품만 비싸게 팔리는 게 당연했거든요.

"미술은 making 아닌 doing" 이미 예술은 시작됐다
잭슨 폴록이 '드리핑(흘리기·dripping)'을 하고 있는 모습.

폴록은 액션 페인팅선구자입니다.

액션 페인팅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액션)에서부터 예술적 의미를 두는 경향입니다. 그간 작품 활동에서 화가의 손짓 등 동작, 캔버스를 차츰 채워가는 드로잉과 채색은 완성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습니다. 액션 페인팅은 그 순간까지 예술의 한 범주로 보겠다는 겁니다. 예술의 범위를 파격적으로 넓힌 셈입니다. '건초 더미' 연작을 작업하는 모네를 상상해봅니다. 빛에 미친 화가였잖아요. 해가 제일 잘 드는 곳에 캔버스를 들고 왔겠지요. 빛 때문에 얼굴을 오만상 찡그리며 붓을 죽죽 그을 겁니다. 빛이 아주 마음에 들 때는 춤추듯 기분 좋게 휘갈길 겁니다. 그 결과 언뜻 보면 건초 더미는커녕 뭘 그렸는지 짐작도 할 수 없는 특이한 무언가가 담기기도 합니다.

클로드 모네, 건초더미(잭슨 폴록과 함께 추상회화의 길을 간 바실리 칸딘스키는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건초더미인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 시절부터 액션 페인팅이 있었으면 어땠을지요.

모네가 빛에 끌려 범상치 않은 붓질을 하는 그 행위, 즉 그 '액션'부터 예술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봤을 겁니다. 누군가 모네의 열정적인 움직임을 비디오카메라에 담았다면 그 영상도 예술품이 됐을 테지요. 액션 페인팅의 시선으로 보면 끝내 캔버스에 담기는 그림은 그간 선보인 액션의 마지막 퍼포먼스일 뿐, 이 자체가 예술의 전부는 아닌 겁니다. 그간에는 화가가 들고 온 결과물만 주목하고, 화가가 그사이 무슨 짓(?)을 벌여 이 결과물을 뽑아냈는지는 별 관심이 없었지요. 액션 페인팅이 "미술은 제작(making)이 아니야. 행동(doing)이야!"라며 고정관념을 깨뜨린 겁니다. 이런 점에서 액션 페인팅은 개념 미술, 행위 예술에도 영향을 줬다는 말이 나옵니다.

잭슨 폴록이 '드리핑(흘리기·dripping)'을 하고 있는 모습.

그렇다면 액션 페인팅을 벌일 때 예술성을 더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액션의 독창성입니다. 폴록은 미술사에 남을 만큼 참신하고, 추종자를 이끌 만큼 파격적인 액션을 보인 덕에 액션 페인팅의 창시자가 된 겁니다. 사실 폴록 이전에도 액션 페인팅의 가능성을 본 화가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캔버스를 눕히고 그 위에서 춤을 추는 등 폴록 같은 대담함을 보이지 못한 탓에 역사에 남을 기회를 놓쳤습니다. 폴록이 선보인 액션은 '드리핑(흘리기·dripping)'입니다. 먼저 벽화만큼 큰 캔버스를 땅에 둡니다. 캔버스 위를 날뛰며 색채를 마구 떨어뜨립니다. 을 '물감을 칠하는 도구'가 아닌 '물감을 옮기는 도구'로 쓴 겁니다. 아예 붓을 내려놓고 나무 막대기를 듭니다. 공업용 페인트 통을 질질 끌고 옵니다. 모래, 유리 조각 따위가 담긴 바구니도 옆에 둡니다. 막대기를 페인트 통과 바구니에 푹 담근 후 캔버스 위에서 난리 부르스를 춥니다. 신발로 미친 듯 밟고, 농구공도 튀겨봅니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요.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입니다.

잭슨 폴록, 수렴

스타 비평가 로젠버그가 액션 페인팅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었습니다.

폴록이 하는 짓을 보고 감동해서 지은 말입니다. "폴록의 고민과 행동, 그 안에서 발현되는 힘을 봐! 그가 완성한 그림은 이런 '액션' 끝에 생겨나는 흔적에 불과해"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폴록 편에 선 비평가들은 그가 미술사상 최초로 캔버스를 땅바닥과 평평하게 두고 작업한 점에 의미를 둡니다. 처음으로 캔버스를 이젤에서 해방했으며, 작업에 중력을 끌어들였다고 극찬합니다. 폴록으로 인해 예쁜 그림, 뜻은 알 수 없지만 왠지 고결해 보이는 그림만 살아남는 시대는 끝장납니다. 1956년 타임(Time)지는 19세기 말 영국을 충격에 빠뜨린 연쇄 살인범 '살인마 잭(잭 더 리퍼·Jack the Ripper)'에서 따온 '추락자 잭(잭 더 드리퍼·Jack the Dripper)'이란 별명을 폴록에게 답니다. 그간의 미술을 싹 다 죽였다는 뜻입니다. 폴록에게 대고 "유치한 관심종자"라고 조롱하는 이도 당연히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폴록이 변화를 향해 꿈틀대는 미술계에 우뚝 선 혁명가란 점에서는 부정하지 못했습니다.

‘돈만 많은 졸부’ 미국, 드디어 문화예술 중심지로
잭슨 폴록, 열기 속의 눈

폴록은 미국현대 미술 중심지로 만든 주인공입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1939~1945) 이후 명실상부 최강국에 오릅니다. 경제력, 군사력에서 압도적 1위를 찍은 미국에도 딱 하나 약점이 있었습니다. 문화력입니다. 당시 유럽은 미국을 '돈만 많은 졸부' 정도로 봅니다. 나치의 핍박 탓에 뒤샹, 샤갈, 달리, 칸딘스키 등 유럽 거장들이 미국 땅을 밟지만요. 이들에겐 '미국의 피'가 없었습니다. 돈을 쏟아부어 유럽의 온갖 명화들을 사온들 잠깐의 만족일 뿐이었습니다. 1886년 미국 뉴욕에서 최초로 인상파 전시를 한 화상 뤼엘은 친구에게 쓴 편지에 "미국인을 야만인이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게"라고 당부할 정도였습니다. 미국은 유럽의 조소에 부들부들합니다. 무엇보다 스페인 출신 그놈, 피카소높은 콧대를 누르고 싶었습니다. 미국은 때마침 생태처럼 펄떡대는 폴록을 봅니다. 미국 태생, 근육질의 애주가, 직설적인 입과 거침없는 행동 등 카우보이 기질을 갖는 폴록야심 가득한 미국의 정신 같았습니다.

1949년 8월호 라이프지에 실린 잭슨 폴록 관련 기사.

미국은 폴록의 액션 페인팅에서 희망을 품습니다.

미국은 폴록이 끄집어낸 이 경향을 미국발(發) 독자적인 양식으로 둡니다. 미국은 폴록을 밀어줍니다. 미국 출신의 전설적 미술품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도 폴록 편에 섭니다. 폴록은 이들의 기대에 부응합니다. 그렇게 동행합니다. 일각에서 폴록을 놓고 '미국의 기획 화가'라고 말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날개를 단 폴록은 액션페인팅을 거듭 선보이며 미술계를 계속 흔듭니다. 폴록의 액션 페인팅에 논란이 끊이질 않았지만, 마니아도 늘어납니다. 특히 미국 갑부들이 좋아했습니다. 우후죽순 세워지는 고층 빌딩 벽에 걸어둘 '크고 무언가 심오해보이는 그림'으로 딱 맞았습니다. 실제로 요동치는 힘도 느껴지고, 나름 철학적이기도 했지요. 미국은 폴록의 활약을 등에 업은 채 드디어 신흥 문화강국이 됩니다. 1949년 라이프(Life) 지는 아예 '잭슨 폴록, 그는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생존 화가인가'라는 헤드라인을 뽑아 한껏 띄웠습니다. 한 예술가에 대해 여러 장을 할애해 보도하는 전례 없는 일을 벌인 겁니다. 지각변동을 이끈 혁명가가 된 폴록은 피카소에 견줄 만큼 대스타로 뜹니다. 폴록의 액션 페인팅은 이 자체로도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겁니다.

폴록 "혼돈이 아니라고, 빌어먹을!"
잭슨 폴록, 가을의 리듬

폴록의 또 다른 대표작 '가을의 리듬'입니다.

가을 분위기가 느껴지는지요. 흰색과 갈색, 회색과 검은색 등 가을을 떠올리게 하는 색이 잔뜩 칠해졌습니다. 선들이 만났다고 흩어지고, 달리다가 멈추고, 곧게 뻗어가다가 무너집니다. 가을의 리듬을 타는 선들 사이에서 길을 찾고 잃고 헤매면서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폴록이 이 그림을 그릴 때도 얼마나 휘적댔을지는 쉽게 상상이 갑니다. 폴록은 다만 "아무 생각 없이 그린 그림"이라는 식의 지적만큼은 참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우연을 부정한다. 따라서 우연에 기대지도 않는다"며 억울해합니다. 언뜻 보면 무지성으로 캔버스에 올라 촐랑댄 듯하지만, 사실은 매 순간 영감직관을 받들어 움직였다는 뜻입니다. 진짜 짐승처럼 뛰어다녔다면 캔버스가 온전하겠느냐는 겁니다. 폴록은 "그림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고 있다. 나는 이를 드러나게 도와주는 일을 할 뿐"이라고 강조합니다.

"혼돈. 조화의 결여. 구조적 조직화의 전적인 결여. 기법의 완벽한 부재. 그리고 다시 한번 혼돈."

폴록의 액션 페인팅이 195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모습을 보였을 때, 타임지는 한 평론가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보도합니다. 이를 본 폴록은 타임지 편집자에게 짜증이 가득 담긴 전문을 씁니다. "혼돈이 아니라고, 빌어먹을(No chaos, Damn it)!"

‘촌놈’ 폴록, 그도 한때 ‘피카소 키즈’였지만…
잭슨 폴록(어린 시절).

폴록은 1912년, 미국 서부 와이오밍주(州)에서 태어났습니다.

와이오밍은 야생의 냄새가 물씬 나는 곳이었습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품을 만큼 자연도 수려합니다. 이곳에서 산 옛 서부 인디언은 다채로운 빛깔의 모래로 여러 추상 이미지를 만들었는데요. 폴록이 어릴 적 와이오밍에서 본 이들 작품과 대자연은 훗날 그의 작품 활동에 큰 영향을 줍니다. 폴록은 1929년 뉴욕에서 그림을 배웁니다. 폴록은 멕시코에서 벽화 운동을 이끈 화가 시케이로스의 조수가 됩니다. 종종 시케이로스는 깡통에 담은 물감을 이젤에 걸린 캔버스에 붓곤 했는데요. 폴록은 이 장면도 머릿속에 꾹꾹 담아둡니다. 그 시절 폴록은 피카소 키즈 중 한 명이었습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고 변형된 사람이나 동물의 그림을 그리는 데 주력했습니다. 하지만 무비판적 모방의 결과가 그렇듯 큰 성과를 내지 못합니다.

잭슨 폴록, 암늑대 [MoMA]

그런 폴록의 잠재력을 극대화해준 이가 미국 정부, 그리고 20세기 대표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입니다.

미국은 대공황기 중 뉴딜사업 일환으로 '연방 미술 프로젝트'를 벌입니다. 1935~1943년, 일 없는 미술인을 대거 뽑아 전국 20만여개에 이르는 공공미술품을 만들게 합니다. 폴록도 일자리를 얻어 벽화를 그립니다. 벽화의 대가에게 벽화를 배운 사람입니다. 괜찮은 평을 얻습니다. 차츰 이름을 오르내립니다. 폴록은 단순했습니다. 그림이 한두 점 팔리니 자신감이 뿜뿜 솟습니다. 더 대담하게 그립니다. 그 결과 피카소를 잡을 스타 탄생에 목마른 미국 눈에 들고, 구겐하임의 레이더에도 잡힌 겁니다. 폴록은 1943년 구겐하임의 도움으로 첫 개인전을 엽니다. 구겐하임의 후광 덕에 나름대로 주목받았지만, 그림은 한 점도 못 팝니다. 기대를 한껏 품은 폴록은 크게 실망합니다. 자신을 몰라주는 세상, 항상 앞서가는 피카소를 원망하고 저주합니다. 1947년 작업실에서 우연히 액션 페인팅의 단서를 보기 전까지는.

잭슨 폴록, Mural on Indian Red Ground

액션 페인팅을 선보인 후부터 폴록의 삶은 요동칩니다.

논란이 폭발적으로 일었지만, 전례 없는 파격성 덕에 제대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때부터 미술계에서는 폴록과 액션 페인팅 이야기만 나왔습니다. 예술계의 지각 변동을 꿈꾸고 있던 스타 평론가들이 그의 편에 섭니다. 폴록은 단숨에 미국을 대표하는 젊은 화가가 됩니다.

짧은 영광, 긴 불안감…끝은 음주운전 사고였다
잭슨 폴록, 심연

폴록의 시대는 길지 않습니다.

폴록은 긴 영광을 누리기에 불안정한 화가였습니다. '큰 손' 구겐하임과 폴록의 첫 만남 당시 일화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구겐하임은 약속 시간에 맞춰 폴록의 작업실에 옵니다. 폴록이 없습니다. 한참 기다려도 오지 않습니다. 구겐하임이 자리를 박차고 나설 무렵, 폴록은 술에 잔뜩 취한 채 들어옵니다. 술 냄새를 폴폴 풍깁니다. 딸꾹질을 하고 흐느적댑니다. 격분한 구겐하임은 "이 애송이가 나를 기다리게 해!"라고 욕을 퍼부었습니다. 구겐하임은 뒤샹(변기통을 들고 온 그 뒤샹 맞습니다)의 끈질긴 설득 끝에 폴록에게 마음을 엽니다. 폴록의 무례함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폴록은 늘 그런 인간이었습니다. 수시로 싸움을 벌였습니다. 술에 취하면 길가에 잠들기 일쑤였습니다. 아무 데나 노상 방뇨를 했습니다. 배를 쫄쫄 굶어가며 공부하던 어릴 때는 빵도 훔쳐먹고, 차에 기름을 넣고 도망쳤습니다. 폴록은 이런 혼미함으로 진작부터 모든 걸 망칠 뻔했습니다.

잭슨 폴록, 파란 막대기들-넘버 11

그런 폴록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가 된 후에도 피폐한 삶을 이어갑니다.

피카소의 벽을 마주했던 그는 이제 스스로 쌓아 올린 벽을 마주합니다. 미술계는 그가 또 다른 충격을 보여주길 원합니다. 이를 의식하고 있던 폴록은 1951년에 캔버스를 다시 세워봅니다. 붓과 나이프를 든 채 전통적 방식을 뿌리에 둔 새로운 시도를 해봅니다. 반응은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폴록 자신이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그려도 과거의 액션 페인팅을 넘어서는 감격이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폴록은 절망합니다. 술을 더 퍼마십니다. 인기를 얻은 후 억눌러온 조울증과 강박증, 폭력성이 다시 눈을 뜹니다. 그림을 아예 그릴 수 없는 상태로 망가집니다. 폴록은 1956년 8월 11일, 음주운전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44살. 젊은 나이였습니다. 그날도 아무 일도 못하고 술만 마신 그는 무기력하게 운전대를 쥐었습니다. 뉴욕 교외를 달리던 차는 가로수를 힘껏 들이받습니다. 차가 뒤집힐 때 폴록은 한때 피카소와 나란히 선 그 영광을 떠올렸을 겁니다. 눈을 감기 직전에는 그 영광마저 집어삼킨 절망감에 젖었을 테지요. '그래도, 최소한 해야 할 땐 최선을 다했다.' 폴록은 생의 끝 순간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했을지도요.

〈후암동 미술관 이론 편 읽는 순서〉

1)천사가 이렇게까지 운다고? 무섭게 왜 그래[후암동 미술관-조토 편] - 르네상스 선구자(2022. 7. 2.)

2)뻥 아냐, 600년전인데 이 정도 ‘입체 그림’ 있었다[후암동 미술관-마사초 편] - 원근법 선구자(2022. 8. 27.)

3)세계서 가장 유명한 이 ‘레이저 눈빛’, 그것은 사랑?[후암동 미술관-얀 반 에이크 편] - 유화 선구자 (2022.5.21.)

4)‘레드벨벳’도 춤추게 한 이 화가의 정체…"악마의 아들? 나 원 참" [후암동 미술관-보스 편] -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5.28.)

5)아리따운 금발 여인, 외간남자 목을 베고 있는거야?[후암동 미술관-카라바조 편] - 바로크 선구자 (2022.6.11.)

6)아름다운 여인, 끌어안고 난리난 옆 커플이 부러워[후암동 미술관-와토 편] - 로코코 선구자(2022.10.8.)

7)맨몸 여인들, 전쟁 뛰어들어 “그만!” 사자후…싸움 막았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다비드 편] - 신고전주의 선구자 (2022.10.15.)

8)표류 D+13, 왜 몰랐지? 뗏목 위 널린 게 먹을건데[후암동 미술관-테오도르 제리코 편] - 낭만주의 선구자 (2022.5.14.)

9)“천사요? 데려오면 그려드리죠” 이놈의 똥고집[후암동 미술관-귀스타브 쿠르베 편] - 사실주의 선구자 (2022.5.7.)

10)벌거벗은 이 여자, 뭐 때문에 빤히 쳐다보나[후암동 미술관-에두아르 마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2022. 4. 23.)

11)“못 그렸는데 폼만 잡아” 욕먹던 이 그림, 3300억이요? [후암동 미술관-클로드 모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⑵ (2022.4.30.)

12)‘점투성이’ 수상한 커플 정체는? [후암동 미술관-조르주 쇠라 편] - 신인상주의 선구자 (2022. 6. 25.)

13)반 고흐 최애작, 별밤·해바라기 아닌 ‘이 사람들’ [후암동 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편] - 표현주의 선구자 (2022.6.4.)

14)이 ‘사과’ 때문에 세상이 뒤집혔다, 도대체 왜?[후암동 미술관-폴 세잔 편] - 근대 회화 선구자(2022. 7.9.)

15)‘생각하는 사람’ 진짜 정체, 남모를 사정도 있었다[후암동 미술관-오귀스트 로댕 편] - 근대 조각 선구자 (2022. 10. 22)

16)화끈한 키스, ‘이 여성’ 사르르 녹아내리다[후암동 미술관-구스타프 클림트 편] - 빈 분리파 선구자 (2022. 8. 13.)

17)나체 여인, 어쩌다 사자 득실대는 정글 한복판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루소 편] - 근대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 7. 30.)

18)당신은 모르실거야, 키스하는 두 사람 왜 이 꼴인지[후암동 미술관-르네 마그리트 편] - 근대 초현실주의 심화편 (2022. 9. 3.)

19)헐크색 피부 갖게 된 ‘이 여성’…이 놈의 ‘남편’ 때문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마티스 편] - 야수주의 선구자 (2022. 7. 16.)

20)피카소도 ‘이 그림’에 “대박!” 감탄, 각성했다는데[후암동 미술관-피카소·마티스 편] - 야수주의·입체주의 심화 편 (2022. 9. 10.)

21)잘생긴 법학 교수님, ‘이것’ 그렸더니 미술계 '발칵'[후암동 미술관-바실리 칸딘스키 편] - 추상회화 선구자 (2022.7. 23.)

22)“이건 나도 그리겠다!” 1순위 그림, 그 놀라운 비밀[후암동 미술관-몬드리안 편] - 추상회화 선구자⑵ (2022. 8. 6.)

23)스파게티 면발? 1315억에 팔린 그림, 충격적 이유[후암동 미술관-잭슨 폴록 편] - 액션페인팅 선구자

24)권총도 채찍도 버텼는데, ‘이 남자’ 행동에 무너졌다[후암동 미술관-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편] - 행위예술 대모 (2022. 8. 20.)

〈후암동 미술관 현장 편 읽는 순서〉

1)이건희 컬렉션, 이 ‘다섯 작품’ 놓치지 마시라[후암동 미술관-‘어느 수집가의 초대’ 출장 편] - 전시 특집 (2022. 6. 18.)

2)알코올 중독 ‘이 남자’, ‘파리’에 미치자 놀라운 일 터졌다[후암동 미술관-몽마르트 언덕 편] - 동행자 : 모리스 위트릴로 (2022. 9. 17.)

3)고흐 “슬픔은 왜 나한테만” 펑펑 울었다, 고작 2평 다락방에서[후암동 미술관-오베르 편] - 동행자 : 빈센트 반 고흐 (2022 9. 24.)

4)모네 “앞이 안 보여도 상관없어”…백내장도 못 막은 그의 ‘최후작’[후암동 미술관-지베르니 편] - 동행자 : 클로드 모네 (2022. 10.1.)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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