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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화식열전] 검사 출신 금감원장 이복현의 ‘솜씨’
취임후 23일 만에 업권 순회
이해력·문제파악능력 돋보여
내부통제 등 금융혁신 기대↑
금감원 역량혁신 성패가 관건

검객·의사·요리사. 모두 칼을 쓰는 직업들이다. 적·환자·재료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진단이 틀리면 처방이 옳을 수 없다. 검사·감독기관도 그렇다. 공인회계사 자격을 갖고, 굵직한 경제 사건들에 ‘법의 칼’을 휘둘렀던 검사 출신 금융감독원장의 행보에 눈이 가는 이유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취임사에서 현재의 복합위기를 정확히 읽어낸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후 23일만에 주요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들을 거의 다 만났다. 덕담이나 두루뭉술한 말이 오가는 인사 자리가 아니었다. 이 원장은 업의 본질과 수익구조, 취약점과 문제점을 신랄하게 짚었다.

증권사들은 금리가 낮은 단기로 차입해서 수익률이 더 높은 장기채에 투자하는 차익거래로 큰 돈을 벌어왔다. 장단기금리가 역전되고 시장 유동성이 경색되면 만기 불일치로 문제가 발생한다. 이 원장은 이 점을 간파하고 대비를 주문했다. 증권사와 보험사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부동산 대출 부실 우려도 전했다. 금리가 올라 부동산과 건설 시장이 타격 받는 경로를 읽고 있다는 뜻이다.

보험사들이 크게 늘린 해외채권 투자의 위험도 놓치지 않았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하락한다. 원화 약세는 환 위험을 높인다. 헤지는 원래 100%까지는 안된다. 이 원장은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헤지 전략으로의 전환을 주문했다. 모두 업을 잘 이해해야 가능한 지적들이다.

땜질식 위험관리 관행도 질타했다. 은행이 과거의 낮은 부도율 자료를 바탕으로 대손충당금을 덜 쌓은 점을 짚어냈다. 이 원장은 위험의 과소평가를 경계하며 보수적인 미래 전망과 잠재 신용위험까지 고려한 충당금 적립을 주문했다.

금융회사 대주주를 직접 겨냥한 처방도 주목할 만하다. 은행과 보험사는 자본 규제를 받는다. 영업을 확장하거나 위험 부담을 높이면 자본도 늘려야 한다. 보통주 자본 확충은 주가 희석을 불러오고, 대주주도 자금 부담을 져야 한다. 이 때문에 은행과 보험사는 일반 채권보다 더 높은 이자를 지급하는자본성증권을 주로 발행한다. 회사에는 부담이다. 이 원장은 대주주 등이 참여하는 유상증자를 하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대주주와 계열회사와의 거래나 특수목적법인(SPC) 등을 이용한 우회거래가 유발할 수 있는 이해상충과 투자자 피해를 언급한 대목도 평가할 만하다. 대주주들이 회사 사업 기회와 수익의 사익 편취에 사용하는 대표적인 유형이다. 우리 증시의 고질적 할인 요인인 지배구조 문제다.

특히 병원의 도덕적 해이로 접근하던 실손보험 문제를 소비자 입장에서 접근한 부분은 평가할 만하다. 병원 탓을 하며 보험금 지급을 잘 하지 않으려는 보험사들에 일침을 날린 셈이다.

이 원장의 지적들을 하나로 압축하면 내부통제 문제다. 그간 금융회사들이 소홀한 잘못도 있지만 금감원의 단속에도 부족함이 많았다. 금감원에 대한 금융권과 소비자의 불만도 여기에 있다. 아무리 처방을 잘 해도 처리하는 솜씨가 받쳐주지 못하면 제대로 된 효과를 얻을 수 없다. 아마 이 원장이 다음에 내놓을 진단과 처방은 금감원의 역량에 대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의 진짜 솜씨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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