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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호연의 현장에서] CJ대한통운 파업, 사회적합의 지키고 있나

연말 연초, 명절 연휴가 다가오면 택배물류업계에선 연례행사가 치러진다. 바로 다름 아닌 택배노조의 파업이다. 각 택배사는 택배노조 파업이 당연히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대체 인력을 구한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들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연말 택배 성수기에 업계 1위 CJ대한통운 내 택배노조가 파업에 불씨를 댕겼다. 파업은 해를 넘겨 20일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이미 많은 지역의 택배 배송이 수일간 지연되고 있고 신선식품을 주문했던 소비자들은 내용물이 상할까 우려해 아예 배송을 취소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최근 몇 년간 택배노조의 파업은 사회적 지지를 얻기도 했다. 수년 전부터 이어진 택배원들의 연이은 과로사가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격히 늘어난 이커머스 배송 물량으로 택배원들이 물리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업무량을 배정받고 거기에 배송해야 할 소형 화물을 직접 분류해야 하는 고충까지 겹쳤다. 하루 서너 시간 잠잘 틈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 소비자들도 공감을 표했다.

결국 정치권과 정부까지 나서 지난해 사회적 합의를 통해 택배사들이 택배 분류 작업에 필요한 투자를 단행하는 대신 택배 단가를 인상할 수 있도록 하면서 택배업계 노사관계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러나 이번 파업은 이런 기대감을 무너뜨리고 있다. CJ대한통운 택배노조가 파업을 시작하면서 내놓은 요구안이 사회적 합의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 측은 사측이 지난해와 올해 각각 170원과 100원씩 단가를 인상하면서 3000억원을 부당하게 이익으로 챙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이익을 택배원들에게 되돌려주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얼핏 들으면 CJ대한통운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얻은 택배비 인상 기회를 자기 잇속 챙기기에만 활용한 것으로 들린다. 그러나 실제 사회적 합의의 본래 목적과 CJ대한통운의 최근 행보를 살펴본다면 택배노조의 주장은 무리가 있다.

CJ대한통운은 택배 분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투자를 진행해 왔다. 2016년부터 각 물류센터에 약 1400여억원을 들여 배송분류 자동화장치인 휠소터와 첨단 지능형 스캐너(ITS)를 도입했다. 또한 지난해까지 소형 상품 자동분류기인 멀티포인트(MP)도 1600억원을 들여 설치했다.

결국 택배 단가 인상분 중 회사가 이익으로 가져간 3000억원은 동종 업계보다 발 빠르게 설치한 택배 분류 시스템 투자금액을 회수한 것이다.

이같은 투자 덕분에 기존에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택배상자 중 자신이 배송해야 할 물량을 육안으로 구별해 골라내야 했지만, 이제는 자동으로 분류된다. 사회적 합의의 정신인 택배원 작업환경 개선에 부합하는 것이다.

작업환경 개선에도 불구하고 택배원의 처우가 충분하냐는 논란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임금 문제는 따로 협상할 일이다. 노사정이 어렵게 끌어낸 사회적 합의를 억지로 끌어와 무리한 파업의 명분으로 삼는 것은 합의의 정신을 훼손하는 일이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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