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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껍질 두꺼운 바나나를 왜 굳이…한국은 플라스틱 후진국? [지구, 뭐래?]
한 대형마트 매대에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바나나가 진열돼 있다. [최준선 기자]

[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껍질 두꺼운 바나나, 아보카도를 왜 굳이 플라스틱 안에 넣어 팔지?”

일상 속에서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려는 ‘제로 웨이스트’ 활동가들에게, 대형마트에 가는 것은 스트레스다.

바나나 하나를 사려 해도 무늬까지 인쇄된 플라스틱 통에 종이 띠지까지 딸려 온다. 어디 바나나뿐인가. 오렌지, 사과, 배, 키위 등 과일이 플라스틱 통 혹은 비닐에 포장돼있고, 특히 딸기는 층층이 스티로폼까지 깔린다. 가지와 버섯은 스티로폼과 비닐랩으로 꽁꽁 싸매져 있으며, 대파와 부추는 길쭉하고 두꺼운 비닐에 담겼다.

각종 과일이 스티로폼과 비닐랩으로 포장돼 있는 모습. [123RF]

남들 손 닿지 않은 식품을 사려는 게 뭐가 그렇게 잘못됐냐고?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고? 개인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불편감을 드러낸 곳이 있으니, 바로 프랑스다.

플라스틱을 가장 미워하는 나라, 프랑스

지난 1일부터 프랑스에선 대다수 과일과 채소의 플라스틱 포장이 금지됐다. 부추·당근·토마토·감자·양파·가지·호박·고추 등 채소와 바나나·사과·배·레몬·오렌지·키위·멜론 등 과일 총 30개 품목을 더 이상 플라스틱으로 포장해 판매할 수 없게 됐다.

지난 1월 1일부터 플라스틱 비닐 포장이 금지되는 과일과 야채 종류 안내 그림. [일간지 Le Parisien 캡처]

크기가 작거나 손상되기 쉬운 채소와 과일에 대해서도 단계적으로 플라스틱 포장을 금지해 나갈 방침이다. 내년 6월부터 방울토마토와 강낭콩, 복숭아가 금지 품목에 추가되며, 가장 마지막 단계가 적용되는 2026년 말 이후로는 산딸기, 딸기 등 베리 종류도 플라스틱 포장이 불가능해진다.

프랑스의 플라스틱 사용 규제는 하루아침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프랑스는 지난 2016년, 플라스틱 봉투의 무상 제공을 금지한 것부터 시작해 규제를 단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2040년까지 모든 일회용 플라스틱의 사용·판매를 금지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2020년에는 플라스틱 그릇, 컵, 면봉, 컵 등의 판매를 금지했으며, 작년에는 과도한 플라스틱 포장에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올해는 과일·채소의 플라스틱 포장 규제를 시작한 데 이어, 아래와 같은 규제가 적용된다.

-언론 간행물 및 광고는 반드시 플라스틱 포장 없이 발송

-배달 서비스에 사용되는 음식 용기는 반드시 재사용되거나 수거

-레스토랑 및 술집에서는 일회용 플라스틱 물 판매를 금하고 무료로 식수 제공

-생분해가 되지 않는 플라스틱 비닐로 포장된 티백 판매 금지

-과일과 야채 표면에 퇴비화될 수 없는 원료, 또는 친환경 소재가 아닌 원료로 만든 스티커 직접 부착 금지

-정부기관의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구매 전면 금지

내년 이후로는 프랑스는 ▷패스트푸드점에서 현장 식사 시 일회용 접시 사용 금지(2023년) ▷미세플라스틱을 포함하는 의료용품 판매 금지(2024년) ▷신형 세탁기에 플라스틱 미세섬유 필터 장치 장착 의무화(2025년) ▷물로 씻어내는 화장품(샴푸, 클렌저 등) 중 미세플라스틱 함유 제품 판매 금지(2026년) ▷중대형 마트는 전체 진열 공간의 20% 이상을 리필 혹은 소비자가 가져오는 용기에 따라 판매하는 형식으로 설계(2030년까지) 등 규제를 적용할 예정이다.

‘권고’ 혹은 ‘검토’…플라스틱에 관대한 한국

우리나라가 탈(脫) 플라스틱 기조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것은 지난 2018년, 전 세계 쓰레기의 절반을 처리하던 중국이 폐플라스틱 수입을 막은 이후 국내에서 ‘쓰레기 대란’이 일어나면서다. 이때 정부는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2030년까지 플라스틱 발생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코로나19로 일회용품 사용량이 급증한 2020년 말에는 ‘생활폐기물 탈 플라스틱 대책’을 추가로 발표했다. 핵심은 ▷2030년까지 플라스틱으로 인한 온실가스를 30% 줄이고 ▷바이오플라스틱으로 전환해 2050년까지는 온실가스를 100%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8년, 2020년 대책 모두 플라스틱 생산량 자체를 감축하기보다는 재활용률 높이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고 환경단체들은 지적한다.

실제 탈 플라스틱 대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생산량 감축과 관련된 내용은 ▷전체 용기류 중 플라스틱 용기류의 비중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권고’ ▷0.8~1.2㎜ 수준인 배달용기의 두께를 1.0㎜로 제한 ▷1회용컵 보증금 제도 시행(2022년 6월) ▷1회용 비닐봉투·쇼핑백 사용 금지 정책을 2030년까지 모든 업종(현재는 대형마트와 대규모점포에서만)에 적용 정도다.

지난해 말에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가 공동으로 ‘한국형 순환경제 이행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역시 재생원료를 통해 순환성(재활용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을 뿐 폐기물 감량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그나마 오는 2023년까지 유통사업자에게 포장재 감량과 재사용 의무를 부과할 것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이 주목을 받았다.

물론 우리 정부도 1회용품을 원칙적으로 생산, 사용하지 못하도록 정책을 다듬어 나가겠다는 원칙은 세운 상태다. 실제 지난해에는 국무총리 훈령으로 ‘공공기관 1회용품 등 사용 줄이기 실천지침’을 제정해 시행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정부기관의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구매를 전면 금지한 프랑스와 비교하면 여전히 느슨하다는 아쉬움이 나온다.

hum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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