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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화 아티스트’ 지후트리, 노랫말을 수어로…“장벽 없는 소통 꿈꾼다”
수어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손 소리꾼
래퍼 비와이ㆍ악단광칠부터 삼성ㆍSK 협업
노랫말 풀어낸 수어 퍼포먼스
“수어는 비수지 기호, 중요한 것은 감정 표현”
선입견 넘어 ‘장벽 없는 소통’ 꿈꿔…
지후트리는 ‘수어’로 음악이나 노래 가사에 맞춰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그것을 이미지로 만들어 그림을 그리는 ‘수화 아티스트’다. 그는 자신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청인과 농인이 장벽 없이 소통하는 삶”을 꿈꾼다.[지후트리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생황 소리 뒤로 대금이 어우러지고, 타악기가 장단을 맞춘다. 같은 박자로 서로 다른 악기가 소리를 더하면, 세 명의 보컬은 먼 길 떠난 생(生)을 위로하듯 가만히 노래한다. 주술을 외듯 온 마음을 다해 전한 말, ‘육로로 환생하옵소서’. ‘수화 아티스트’ 지후트리는 간절한 염원을 이어받아 하늘 끝으로 시선을 옮긴다. 이달 초 열린 악단광칠의 콘서트에서 선보인 신곡 ‘바람, 환생’의 무대다.

악단광칠과 지후트리의 만남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앞서 삼성전자 광고에서 악단광칠의 노래 ‘사랑 폈구나’를 통해 지후트리가 수어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바람 따라 흩날리는 사랑의 꽃잎이 됐던 길쭉한 손가락은 이내 기도의 손짓으로 달라졌다.

지후트리는 ‘수어’로 음악이나 노래 가사에 맞춰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그것을 이미지로 만들어 그림을 그리는 ‘수화 아티스트’다. 그가 정의하는 ‘수화 아티스트’는 ‘수어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예술가’다. 2013년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내외에서 전시를 열었고, 많은 뮤지션과 협업 무대를 통해 수어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한다. 스스로는 ‘손 소리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삼성전자 광고 속 지후트리의 수어 퍼포먼스 [지후트리 제공]

‘청인’인 그가 농인의 언어를 표현의 수단으로 삼은 것은 장애를 가진 가족들과의 삶이 이유가 됐다. “갑작스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가 충격으로 한 쪽 청력을 상실했고, 아버지처럼 곁에서 돌봐주시던 삼촌이 화재로 사고로 오른팔을 잃으셨어요.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이었어요. 그런데도 장애를 받아들이고 사회 구성원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에게 받은 사랑을 수어로 표현해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후트리가 함께 하는 무대는 그의 존재 자체로 색다른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무대 위 그는 ‘스토리텔러’다. 아름다운 동화 한 편을 쓰기도 하고, 누군가의 바람을 대신 전달하는 연결자가 되기도 한다.

수어 퍼포먼스를 선보일 때 지후트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감정과 메시지의 전달이다. 난해한 안무가 아닌 손과 표정으로 전달하는 퍼포먼스다. 그는 “수어는 단어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의 변화, 눈썹의 모양, 턱의 움직임 등 다양한 표정으로 감정을 보여주는 비수지 기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후트리 제공]

악단광칠과 함께 한 ‘바람, 환생’도 노랫말과 감정을 수어로 표현했다. ‘바람, 환생’은 악단광칠이 동해안별신굿 수망오구굿의 ‘청혼’의 현장 녹음을 듣고 영감을 받아 태어났다. 세월호로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과 남겨진 어머니의 애타는 마음을 담았다. “어린 자식들을 삼킨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 애타게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들, 혼이라도 돌아오길 바라는 간절한 외침에 화랭이의 장단과 파도 소리에 섞어 만들었다”는 것이 악단광칠의 설명이다.

래퍼 비와이와 협업한 무대 [지후트리 제공]

‘남겨진 자’들의 애타는 마음은 지후트리의 몸짓 하나 하나로 표현했다. “살아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안타까운 이별이 있잖아요. 제가 듣기에 이 곡은 누군가 생을 마감했을 때 그 이별들이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는지 물음을 던지는 곡이었어요. 가사를 기반으로 수어 퍼포먼스를 만들기도 하지만, 간주나 허밍처럼 의미를 담지 않은 구절에선 시선과 손끝 처리, 호흡 등을 통해 감정의 형태를 덩어리로 만드는 작업을 해요.” ‘바람, 환생’에서 격정적인 감정을 보여줄 땐 손을 통해 강력한 떨림을 표현했고, ‘하옵소서’와 같은 염원하는 말은 하늘에 기도하는 느낌을 시선으로 올렸다.

시적인 표현을 랩으로 전달하는 비와이와 함께 한 ‘주인공’ 무대에선 또 다른 스토리를 써내려갔다. 당당한 주체성을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루브르아트페어에서 전시된 지후트리의 ‘꽃’ [지후트리 제공]

무대 위 지후트리는 청인과 농인의 경계 없는 어울림을 만든다. “농인들도 청인들처럼 음악을 즐기고 좋아해요. 특히 베이스가 많이 들어간 음악을 좋아하고요. 음악은 들을 수도 있지만,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농인들은 잘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시각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있어 감정표현을 더 많이 하고요. 그래서 수어 퍼포먼스를 할 때도 곡 전체의 감정을 읽고 파악해 전달하는 것이 중요해요.”

아버지의 부재, 가족의 장애로 이어진 개인적인 경험은 ‘수어’를 매개로 예술세계를 펴나가는 활동의 시작이었다. 지금의 지후트리는 더 넓은 세계로 걸어가고 있다. 자기 안에서 시작한 예술은 사람들에게로 가닿으며, 장애 인식 개선의 계기가 되고 숱한 선입견과 편견을 깨부수는 역할을 한다. 삼성전자, SK 등 기업과의 협업도 지후트리의 감각적인 활동과 선한 영향력이 이유가 됐다.

“이전엔 수어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어요. 인식 전환의 기폭제가 된 것은 코로나19가 오면서였어요. 수어를 할 때 손만 가지고 하지 않아요. 입 모양, 얼굴 표정, 손의 방향 등이 모두 포함된 언어인데, 마스크로 인해 수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어요. 마스크로 인해 농인들의 알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고요. 이것이 투명 마스크가 나온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지후트리의 수어 그림 ‘아빠’ [지후트리 제공]

한국에서 수화가 하나의 언어로 인정받은 것은 지난 2016년 8월이었지만, 수어와 농인에 대한 관심은 무뎠다. 지후트리는 “음성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은 손으로 언어를 표현하지 않아도 되니 수어의 존재와 개념 자체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수어 역시 ‘하나의 언어’”라고 강조한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무대에 올라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것을 통해 농인과 수어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장벽 없이 소통하는 것을 꿈꿔요. 천천히 스며들어 사람들에게 제가 전하고 싶은 것들을 알려주고 싶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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