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모텔 살던 ‘유령 형제’, 뒤늦게 초등학교 입학했지만…[유령아이 353명 리포트] 
지난해 대전서 발견된 ‘유령형제’
모텔서 생활…취학아동서 빠져
교육청 나서서, 뒤늦게 입학
출생신고까진 시간 더 필요할 듯
〈1부 : 기록되지 않았던 아동 353명〉 ③ 학교 못갔던 형제의 이야기
[일러스트=권해원 디자이너]

‘위 아동은 취학시기에 달하였으므로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17조의 규정에 의거 통지하오니 아래와 같이 취학토록 하시기 바랍니다.’

인성(가명)이는 몇년 전 이런 문구가 적힌 취학통지서를 받지 못했다. 지자체, 교육청 모두 인성이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아이가 태어나던 해에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서다. 그 사이 또래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나이가 됐다. 3살 터울의 동생 승민(가명)도 마찬가지 처지였다. 엄마 아빠는 아이들에게 이름을 붙여줬지만, 공식적으로 기록되진 않은 글자였다.

읍·면·동 주민센터는 매년 10월 1일을 기준으로 이듬해 초등학교 입학 대상 아동(만 6세)을 조사해 취학아동명부를 작성한다. 이를 토대로 각 가정과 교육청에 취학을 알린다. 태어난 직후 출생신고가 되지 않았던 인성과 승민의 이름이 애초에 올라갈 수 없었다.

이 형제의 존재는 지난해 대전에서 드러났다. 부모는 형제를 데리고 모텔을 옮겨 다니며 지냈다. 모텔은 형제들의 집이자 놀이터, 학교였다. 작은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어린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모텔을 떠돌며 생활한다”는 신고가 형제를 그들만의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당시 언론은 아이들을 두고 ‘유령형제’라고 적었다.

엄마, 아빠가 아이들을 물리적으로 학대한 흔적은 없었다. 오히려 이 사례에 관여했던 이들은 가족의 유대감은 끈끈해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른들의 복잡한 이유는 아이들이 기록될 기회를 놓치게 했다. 생모와 생부는 혼외관계였다. 엄마는 기존의 결혼관계를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빠를 만났고 형제를 낳았다. 혼외관계 상태서 낳은 자녀는 생모만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상태에서 출생신고를 하면 아이들은 친아빠의 자녀(친생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민법(844조)에 따라 엄마의 기존 남편의 자식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친부가 출생신고하는 방법이 있으나 소송을 내는 등 다단계 법률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부모에겐 법률비용도 부담이었다. 그렇게 시간만 흘려보냈다.

수사를 맡았던 대전서부경찰서 최은희 여성청소년과장은 “부모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없던 건 아니다”라며 “워낙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출생신고를 위한) 법적인 절차를 밟지 못하고 시간이 흘렀던 것”이라고 말했다. 형제의 부모에겐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고 검찰로 송치됐다.

한 초등학교 입합식의 모습.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
일단 학교 다니는 형제, 출생신고는 시간 필요해

헤럴드경제는 형제의 출생신고 여부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일가족이 대전을 떠나 다른 도시에 터를 잡은 것을 확인했다. 상황은 나아졌다. 가족은 새집을 구했고 아빠는 일자리를 찾았다. 검찰 수사는 대전에서 이곳 검찰청으로 넘겨졌다. 지자체와 경찰, 교육청 등 관계기관은 취재팀에 일가족이 새로 터전을 잡은 지역을 특정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출생신고는 어떻게 해결할지 방법을 찾고 있다. 다만 형제는 초등학교에 입학해 태어나 처음 가족 울타리 밖에서 생활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대전서부서와 대전교육청은 형제들이 옮겨간 지역의 교육지청에 “학교에 다닐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교육청은 자문변호사와 머리를 맞댔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19조(‘귀국 학생 및 다문화학생 등의 입학 및 전학’)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관건이었다. 변호사들은 “19조를 근거로 형제들을 입학시킬 수 있다”고 확인했다. 도교육청도 이를 이렇게 입학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도교육청 담당 주무관은 “가족관계증명서에 아직 이름이 없는 아이들도 전입 왔다는 거주확인서와, 형제의 발육상태를 근거로 나이를 따지는 의사의 진단서를 받아서 입학절차를 밟았다”고 말했다.

다만 형제의 출생신고까진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엄마·아빠가 ‘혼외’ 상태에서 낳은 아이들인 까닭에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우선 소송(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해 형제가 생면부지의 남성(엄마의 법률적 남편)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아이들을 친모, 친부의 자녀로 등록할 수 있다. 아빠는 지자체와 경찰의 도움을 받아 유전자 검사를 받았고 아이들과 친자관계가 성립한다는 결과를 받았다.

최근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은 형제 부모와 법률구조공단 변호사와의 상담을 주선했다. 아보전 관장은 “소를 제기하는 과정이 길게는 1년까지 걸리기도 한다”면서 “다만 다행인건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며 건강히 지낸다. 엄마, 아빠도 아이들을 격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nyang@heraldcorp.com / dodo@heraldcorp.com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궁금했습니다. 왜 출생 사실이 기록되지 않은 아이들이 끊임없이 등장할까. 출생신고는 하나의 행정적 절차이지만, 동시에 세상에 난 존재가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누릴 아동의 권리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최소의 권리에서 비껴난 아이들은 존재합니다. 우린 그들을 ‘유령아이’, ‘투명아동’, ‘그림자 아이들’ 이라고 부릅니다.
헤럴드경제는 전국 곳곳에서 발견된 출생 미등록 아동의 사례를 수집했습니다. 온통 ‘어른들의 이유’들로 아이의 출생신고는 미뤄지거나 무시된 걸 확인했습니다. 취재팀은 개별 사례의 특수성에 매몰되기보다는, 보편적인 배경과 제도적 모순을 발견하려 애썼습니다. 그간의 취재 결과를 바탕으로 4부에 걸쳐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기획보도는 ‘누락 없는 출생등록, 모든 아동의 출생등록’을 목표로 활동하는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UBR Network)와 함께 조사하고,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합니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